사진을 찍다 보니 문득 이전에 찍었던 사진들이 궁금했다. 그 속에 내가 무엇에 흥미를 느꼈고, 어떤 추억을 간직했으며, 무엇이 나를 힘들게 했는지가 담겨 있을 것 같았다. 평소에 사진을 자주 찍는 편은 아니지만, 기억하고 싶은 중요한 순간들은 어김없이 사진으로 남겨 두곤 했다. 그래서일까, 사진을 들여다보며 미세하게나마 기억이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사진을 보기 전까지는 힘들었던 순간들이나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일들만 내 기억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사진을 꺼내어 보니, 즐거웠던 순간들, 행복했던 기억들, 그리고 다시 돌아가고 싶은 시간들이 그보다 훨씬 더 많았다. 특히, 그중에서 가장 많은 사진과 추억을 차지한 것은 바로 여행의 순간들이었다.
나는 여행을 참 좋아한다. 특히 일상과는 전혀 다른 문화와 삶의 방식을 경험할 수 있는 로컬 여행을 선호하는 편이다. 그래서 내가 찍은 대부분의 여행 사진은 유명한 관광지보다는 낯선 길거리나 도로 위에서 찍은 것들이 많다. 배낭여행을 다니던 시기 만난 인연들이게 건네었던 인사 중 가장 좋아했던 인사가 있다.
“길 위에서 멋진 모습으로 다시 만나요.”
이 인사 속의 '길'은 단순히 여행 중 걷는 길을 의미하지 않았다. 여행을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가서도 마주하는 모든 순간을 ‘길’이라 생각하며, 그 모든 길을 멋진 모습으로 걸어가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여행 중 만난 모든 인연에게 이 인사를 건네며, 혹여나 일상에서 우연히라도 다시 만나게 되면 내가 했던 그 말을 지키고 싶었다. 하지만 그 인사를 지키지 못한 채 많은 시간이 흘렀다.
나의 모습이 왜 그랬는지, 무엇이 부족했는지를 깊이 고민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앞으로 그때 건넸던 인사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기로 했다. 스스로 가장 진정성 있게 살아갈 수 있는 ‘길’의 모습을 찾아야 했다. 그러기 위해선 당시의 나처럼, 꾸밈없이 솔직한 마음가짐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삶의 모든 방면에서 나만의 규칙과 정의를 세워가는 과정 중, 마음가짐에도 규칙과 정의가 필요함을 깨닫게 된 것은 다행이었다.
그러나 마음가짐에 대한 규칙과 정의를 세우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마음가짐은 눈에 보이지 않기에, 내가 세운 규칙이 많은 상황을 마주하며 흔들릴 것 같다는 두려움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변하지 않을 기본적인 원칙 하나를 세우기로 했다. 그 기본은 바로 ‘용기’다.
돌이켜보면, 그 시절의 나는 참 용감했다. 특별한 용기라기보다는, 그저 매 순간 가장 나다운 선택을 했던 용기가 있었다. 마주한 상황과 타인의 시선이 아닌, 오로지 나의 판단으로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하며, 내게 주어진 순간들을 최선으로 채웠다. 다시 똑같은 선택의 순간이 온다 해도 변하지 않을 선택을 했고, 그 과정에서 나다움을 잃지 않았다. 설령 그 선택이 실수가 되고 좋지 않은 결과로 이어졌다고 하더라도, 나는 내 모습 그대로였다. 그래서 후회보다는 모든 과정에 최선을 다했고, 나타나는 결과에 책임을 지며 한층 더 나은 내가 되어갔다.
반드시 지키고 싶은 마음가짐, 그것은 가면이나 거짓된 행위가 필요 없는 것을 선택하는 용기다. 때로는 좋은 상황을 포기해야 하고, 좋은 사람을 떠나보내야 할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언제나 나다움을 유지할 수 있는 선택을 하려 한다. 물론 그 과정이 쉽지는 않겠지만, 불가능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눈앞의 좋은 것을 얻기 위해 잠시 타협하기보다는, 그것이 나에게 진정 맞는지를 고민하고, 냉철하게 판단하며 선택할 것이다. 나다움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타협하지 않는 용기가 필요하다.
'나다움'을 지켜가는 것, 나다움을 지키는 용기야말로 나에게는 꼭 지키고 관리해야 할 마음가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