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온 Oct 19. 2021

일탈아닌 일탈

학창 시절 노래방에 가면 자우림의 노래 ‘일탈’을 자주 부르곤 했다.

“매일 똑같이 굴러가는 하루. 지루해 난 하품이나 해. 뭐 화끈한 일 뭐 신나는 일 없을까. 할 일이 쌓였을 때 훌쩍 여행을, 아파트 옥상에서 번지 점프를, 신도림역 안에서 스트립쇼를.”

아마도 그때는 어떤 일탈도 하지 못하고 일탈하고 싶은 마음을 노래로 위로했던 것 같다.      


일탈의 사전적 의미는 ‘정해진 영역 또는 본디의 목적이나 길, 사상, 규범, 조직 따위로부터 빠져 벗어남’이라고 한다. 어린 시절 나와는 사실 거리가 먼 단어였다. 고등학교 등굣길에 하루는 화가 머리끝까지 난 학생주임이 나를 멈춰 세웠다. 와 보라고 하는 그를 향해 걸어가며 아무리 생각해봐도 걸릴 만한 것이 없었다. 교복 치마는 펄럭이는 행주치마처럼 넉넉한 품에 무릎을 덮는 길이였다. 흰 양말도 두 번 고이 접어 신었고, 머리도 귀밑 7센티를 넘지 않았다. 학생 주임은 나를 뒤로 돌아서게 하더니 등교하는 아이들을 향해 소리쳤다. "얘처럼 하고 다니란 말이야!!!"      


성인이 되고부터는 할 일이 쌓였을 때 훌쩍 여행을 가는 등 나 역시 일상에서 크고 작은 일탈을 해오기는 했다. 그렇지만 아마도 지금이 내 인생 최대의 일탈을 하는 중이 아닐까 싶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회사를 때려치우고, 갑자기 연고도 없는 강릉에 와서 살고 있는 것이 말이다. 어렸을 때 하지 못했던 일탈을 지금 다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일탈의 사전적 의미를 다시 읽어보며 나는 지금 일탈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나의 정해진 영역이나 본디의 목적이 남들이 부러워하는 회사에 다니는 것이 아니니까. 분명 누군가의 눈에는 지금 나의 모습이 일탈로 비칠 수 있지만, 그 사람에게 말하고 싶다. 나는 이제야 비로소 나의 길을 찾으려 노력하는 중이라고. 



이전 10화 하얀 밤도 밤이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