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카가 말을 시작했다. 말이 느린 것 같다는 걱정이 허무하게도 우리는 아이를 보며 ‘벌써 이런 말도 해?’라는 말을 매일같이 반복했다.
숫자로 시작된 아이의 말문은 자동차 번호를 읽고 핸드폰 번호를 외우고 그 번호로 아빠를 기억하고 할머니를 기억했다.
우리는 그 아이의 입에서 자신을 표현하는 숫자가 불리기만을 기다렸다.
아이가 글을 제법 읽기 시작하자 이제 핸드폰에 저장된 우리의 이름을 읽어냈다.
엄마의 이름도 아빠의 이름도 이모의 이름도 할머니의 이름도 잊지 않고 불렀다.
다정하게 이름을 불리는 일이 귀해진 나이가 되어서 어린아이의 소리로 불리는 이름이 어색하다가도 이어서 외치는 ‘사랑해’라는 말에 마냥 좋았다.
그리고 아직 아이가 외우지 못한 아이의 할아버지 이름이 물끄러미 떠오른다.
이미 오래전에 이름이 사라진 나의 아버지
저 목소리로 불릴 일 없는 그 이름을 생각하면
어느 시인이 말했던 그 말이 떠오른다.
이름으로 불리지 못하는 글자가 슬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