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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 Oct 11. 2022

크루즈가 출항하기 전까지만 돌아가면 돼!

스타 프린세스호와 함께하는 시애틀 여행


크루즈 승무원에게 모항이란?


부산→At Sea→여수→At Sea→제주도→At Sea→부산


여기 이렇게 1주일 일정의 크루즈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일정이 시작되는 첫날, 크루즈는 부산에서 출항을 한다. 그렇게 망망대해를 항해하다 여수와 제주도를 기항하고 돌아와 일주일째 되는 날 부산에서 일정을 마무리한다.


여기서 크루즈의 첫날인 부산을 모항(母港)이라고 하며, 영어로는 홈 포트(=home port)라고 한다. 1주일 일정의 크루즈로 승선하는 승객들은 모항을 단 두 번만 경험하겠지만, 대게 반년 이상 한 선박에서 근무하게 되는 승무원들에게 이 모항은 특별할 것 하나 없는 도시일 뿐이다. 우리 집 앞마당, 딱 그 정도의 느낌이랄까.


나는 스타 프린세스호에 승선하기 전까지 홍콩, 대만(지룽), 일본(요코하마, 오사카), 캐나다 밴쿠버 등의 홈 포트를 경험했다. 대부분 아시아 포트에다 똑같은 포트를 다른 선박에서 경험하기도 수차례라 승선을 앞둔 시점에서 홈 포트의 로망을 품어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여긴 아시아가 아닌 미국.


사실 휴가 중 스타 프린세스호가 아닌 마제스틱 프린세스호를 배정받았는데 세 번 연속 아시아 노선은 도저히 무리라 마이애미 본사로 스케줄을 재요청하였고 덕분에 이곳으로 올 수 있게 되었다. 어렵게 받게 된 노선이라 더 반가웠던 걸지도.


같은 알래스카 크루즈이지만 캐나다 밴쿠버와는 사뭇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던 시애틀. 승선 초기 우락부락한 근육에 약간은 험악한 표정을 짓고 있는 시큐러티들이 가득한 CIQ*의 압도되는 분위기는 물론, 크루즈 밖에서 만난 모든 사람들의 친절함, 달러를 환전할 필요가 없었던 편리성 등. 포트에서 봉고차를 타고 번화가까지 나가는 그 길마저도 설렜던 걸 보면 그냥 시애틀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

*C.I.Q: 항공이나 배를 이용하여 공항 또는 항만으로 출입국 할 때 반드시 거쳐야 하는 3대 수속으로 세관 검사(customs), 출입국 관리(immigration), 검역(quarantine) 등을 가리킴.



나를 제외한 우리 부서 동료들은 시애틀 방문이 처음이 아니라 그들로부터 기항지 관광에 대한 꿀팁을 쉽게 얻을 수 있었다. 친구들이 IPM(=In Port Maning; 당직)을 바꿔주면 더 좋았겠지만 홈 포트에는 갱웨이 듀티, 페어웰 듀티 등 다양한 사이드 듀티가 있어 그 일을 선뜻해 줄 사람이 없다는 걸 알기에 그저 내 차례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렇게 손꼽아 맞이한 나의 첫 시애틀, 룸메이트인 IDA와 함께했다. 봉고차에 올라탄 우리는 둘이 합쳐서 교통비를 지불하고 그렇게 한참 동안 유리창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시애틀 거리 한가운데에 내린 우리는 가져온 구두가 높은 것뿐이라 메이시스(Macy's)에서 구두를 쇼핑하고, 타겟(Target)에서 간단하게 필요한 생필품을 사고, 어떤 맛집이 있나 둘러보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요리조리 길거리를 누볐다.




스타벅스 1호점

1912년에 만들어진 스타벅스 1호점

언젠가 커피와 핫쵸코를 구분하지 못하던 시절, 엄마가 매일같이 마시는 음료가 너무 궁금한 나머지 커피를 마셔본 적이 있는데 그것은 어린 내게 미각을 마비시킬 만큼 쓰디쓴 까만 물이었다. 이런 게 왜 맛있을까 싶었지만 어른들은 조금 더 크면 그 이유를 알게 될 거라며 그저 웃음을 지어 보였다.


커피를 마시고 인상을 찌푸렸던 나는 어른이 되면 자연스레 커피가 좋아지겠거니 했지만 의외로 다 자란 지금도 커피는 내 선호 대상이 아니다. 느끼한 음식을 먹었을 때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두 모금 마셔주면 속이 풀린다는 거에 어느 정도 공감하나, 반 잔만 마셔도 밤에 잠을 잘 이루지 못해 그저 몇 달에 한 번 마시는 정도이다.


그런 나와는 다르게 내 주변에는 커피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 그들에게 여기 시애틀 스타벅스는 꼭 한 번 방문해보고 싶은 시애틀 여행의 필수 코스가 아닐까. 언제나 사람이 붐비고 때로는 웨이팅까지 존재한다는 이곳. 커피 마니아가 아닌 내가 스타벅스 1호점을 보러 굳이 시애틀에 오진 않을 테니 덕분에 공짜 경험을 한 셈이다.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 & 껌 벽 & 워터 프런트


오른쪽 위) 피어스 마켓 근처 식당, 왼쪽 아래) 워터프런트 근처 식당

다음 시애틀부터는 포트 근처에 위치한 핫플레이스부터 점령하기로 했다. 이번에는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Pike Place Market)을 위주로 돌아보기로 결정!


시애틀 최고 명소로 꼽히는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은 1907년에 8명의 상인들이 문을 열었던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재래시장으로 늘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단순한 동네 재래시장일 줄 알았는데 어마어마한 역사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시장과 골목 사이 볼거리 즐길거리가 가득해 시애틀 여행을 오신 분들이 꼭 들리게 되는 이곳은 꽃 가게, 핸드메이드 제품 가게, 해산물 가게, 오래된 소품 가게, 제과점, LP 판 가게, 오락실, 식당, 카페 등 활기 넘치는 다양한 상점이 가득하다.


실제로 보고 너무 기이했던 껌 벽(The Market Theater Gum Wall). 말 그대로 씹던 껌을 벽에 붙여놓은 곳인데 놀랍게도 시애틀의 명물이라고 한다. 껌 벽은 1993년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 아래 포스트 앨리(Post Alley)에 있는 마켓 극장 시애틀 희극 회사 UP의 후원자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다가 티켓 판매소 벽에 껌을 붙이면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씹던 껌이 어떻게 랜드마크가 되냐며 손사례를 쳤지만 막상 가보니 궁금해서 좀 더 가까이서 보고 싶어졌다. 이런 게 예술이 될 수도 있구나 하며 조금 독특했던 경험을 했던 날 중 하나로 손꼽힌다.


시애틀 대관람차가 훤히 보이는 워터프런트(Waterfront Seattle). 이곳에는 해산물 레스토랑, 기념품점 등 관광명소로 가득한 밝고 활기찬 분위기의 부두가 모여 있다. 부두 근처에 모여있는 레스토랑들이 인상적이었던 건 뷰를 보며 식사가 가능하게 야외석을 많이 만들어두었다는 점. 이게 바로 항구도시만이 가진 매력이 아닐까 싶었다. 날씨 좋은 날 한 번쯤 이 뷰를 배경으로 식사를 한 끼 하면 좋겠다 싶은 곳이었다.




퍼시픽 사이언스 센터 & 스페이스 니들


Pacific Science Center(퍼시픽 사이언스 센터)에 들렸다가 Space needle(스페이스 니들)까지 관람하는 게 이날의 목표였다.


시애틀 퍼시픽 사이언스 센터는 1962년 세계 박람회 당시 박람회를 개최하는 장소로 처음 지어졌다고 한다. 어린아이가 가족 구성원에 포함되어 있다면 방문을 적극 추천드린다. 박물관 내부에는 아이들의 상상력을 증폭시켜 줄 다양한 작품과 전시, 조형물 등을 관람할 수 있고 외부에는 여러 기구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 넓게 마련되어 있다.


박물관에서 충분히 시간을 보내고 서둘러 근처 스페이스 니들로 발걸음을 옮겼다. 스페이스 니들은 시애틀 센터에 있는 605피트 높이의 상징적인 첨탑으로 이곳 역시 많은 관광객들로 붐빈다. 시애틀 필수 코스는 아니지만 나는 이곳이 크루즈가 정박해있는 포트와 얼마나 먼지, 또 어떤 다운타운 뷰를 보여주고 있을지 궁금했기에 한 번 방문해 보았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41초 만에 정상에 올라가 보게 된 뻥 뚫린 푸르른 뷰는 내 기분을 한층 더 상쾌하게 만들어 주었다.






크루즈 승무원을 꿈꾸던 열아홉 때부터 언제쯤 미국 본토에 갈 수 있을까 싶었는데 마침내 이곳 시애틀에서 그 꿈을 이루게 되었다.


크루즈 승무원은 대륙을 건너는 크로싱 크루즈(Crossing Cruise), 혹은 일정 기간 동안 평소와는 다른 나라를 크루징하는 스페셜 크루즈(Special Cruise)를 제외하고는 보통 승선해서 하선할 때까지 같은 홈 포트를 갖는다. 직접 비행기 티켓을 끊어서 미국 여행을 오지 않는 이상 짧은 시간에 이런 다양한 경험을 해보기란 쉽지 않은데, 그래서 더 소중했던 주어진 단 몇 시간. 출항 전까지 시애틀 구석구석을 누비고 싶어 아등바등거렸던 내 모습이 눈 앞에 아른거린다.

조금만 더 머물래.. 크루즈가 출항하기 전까지만 돌아가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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