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정몽구 재단 미래 지식 포럼 2회
현대자동차는 3가지 미래혁신 플랫폼을 운영하며, 미래세대와 함께 지속가능한 미래를 만들어가고 있다.
1. 인재 플랫폼: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해 미래 인재 발굴
2. 공간 플랫폼: 미래 인재와 협력하고 소통하는 공간 - on dream society
3. 지식 플랫폼: 미래 사회를 대비한 지식 공유 생태계
이번 포럼은 미래 사회를 대비한 지식 공유 생태계인 지식 플랫폼의 일환으로 진행된 포럼이다.
선택은 확률과 가치가 합쳐진 것이다.
불확실한 상태는 인간이 가장 싫어하는 상태인 '불안'을 야기한다.
고통,슬픔,외로움도 있지만 불안을 가장 싫어하는 이유는 불안할 때 안 좋은게 오면 그게 더 안 좋아지기 때문이다.
불안이 가장 커지는 때는 확률과 가치가 불확실한 상황이다.
ellsberg's paradox: 확실함과 불확실함이 공존하는 공간에서, 사람들의 선택이 잘못 작용하는 것
pseudo certainty: 우리는 확실한 것에 선택을 쫓아가는 경향
평가 가능함의 효과: 내가 가치판단할 수 있는 잣대가 있을 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want'와 'like'의 괴리가 클 수 있다.
'우리'는 가지고 있는데 '나'만 안가지고 있을 때 불안함은 'want'를 불러 일으키지만 'like'와는 관련이 없을 수도 있다.
이럴 땐,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걸 가지고 있지 않는 사람인데 행복한 사람을 만나야 한다.
나보다 못사는 사람을 만나야한다. 봉사하는 사람. 이타적인 사람이 오히려 스스로를 더 잘 안다.
좋아하는거에만 집중할 수 있어서 더 행복할 수도 있다.
선택에 정당한 도구를 쓸 수 있느냐도 중요하다. 정당한 도구가 좋은 결과를 내기 때문이다.
사후확증편향: '내가 그럴줄 알았어' 인간은 선택의 결과를 모르고 있었다! 근데 왜 알고 있었던 것처럼 거짓말할까?
나이가 들수록 입에 달고 사는데, 정말 안좋은 행동이다. 모르는건 모른다고 해야 정보가 흐른다.
선택보다 중요한 것은 선택 후의 자세이다.
예상외로 좋은 결과를 낸 것도 치밀하게 복기해라.
나이가 들면서 많은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 선택하는 이유는 직전에 거둔 성공 때문이다.
세상이 변하면 자신이 거둔 성공의 유효기간이 짧아지기 때문..
성공하지 않은 사람이 미래를 더 볼 수 있고, 미래에 더 잘 적응할 수 있는 사람일 수 있다.
프랑스의 문학가 폴 부루제 '정오의 악마' 中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살게 된다."
AI와 공존하는 시대에, a+b=>ab 가 아니라 c를 낼 줄 알아야 한다.
좋은 선택은 내가 결정하는, 내가 결정하는 선택이다.
언어 감수성: 언어에 대한 이해와 지식을 갖추어 일상 언어 속에 담긴 차별, 불평등, 반인권, 반민주주의를 판별할 수 있는 감수성
서로에게 관련되느냐에 따라 민감도에 차이가 있다. 자신과 관련있을때 민감,관련없는건 둔감하다.
말할 때와 들을 때도 민감도에 차이가 있다. 말할 땐 바쁘고 여유가 없는데, 들을 때 여유가 있어 감수성이 높아짐
소통을 해야하는 이유는 행복해지기 위해서이다.
하버드의 성인발달연구소에서, 70년동안 연구해서 종합보고서를 낸 것이 '행복의 조건'이라는 책이다.
연구팀이 가장 주목한 것은 '관계'다.
따뜻한 관계를 가진 사람들이 가장 행복했다.
관계에 중심에 무엇이 있을까? 바로 '말'이다.
모든 인간관계는 다 말로 시작하게 된다. 관계의 시작인 것이다. 인사를 던지는 것이 관계의 시작이다.
관계에서 말은 용수철이 되기도 하고 자석이 되기도 한다.
행복이란, 좋은 관계를 맺는 것이다.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말이 중요하기 때문에 소통을 잘 해야 한다.
소통을 잘 하기 위해서는 언어 감수성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언어 감수성이 중요하다.
말을 하는 것은 들리기 위해 하기 때문에, 상대의 언어 감수성을 이해해야 한다.
언어는 사회에 의해서 획득된다. 아주 일상적인 것이다. 일상을 탐험으로 만드는 것이 언어학자이다.
언어는 아주 일상적인 것이기 때문에 학습한 다음 습관이 되어 버리기 때문에 언어감수성을 가지기엔 아주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내 말이 어떻게 들리는지 생각하는게 정말 중요하다.
언어 감수성을 갖추는 일은 '왜 내 말이 그렇게 이해됐을까?'라고 곰곰히 생각해 보는 일이다.
우리는 매순간 어떤 언어를 선택할까 고민하면서 말을 이어간다.
한국어는 선량한 연령차별주의자를 만든다.
평등함을 추구하면서 언어에는 차별이 존재한다.
반말vs존댓말. 왜 존재하는 걸까? 사람위에 사람있고, 사람밑에 사람있다는 생각이 있는건 아닐까?
어떤 사람들은 언어감수성이 높은 사람들을 보고 '프로불편러'라는 이름을 붙이며 그들을 조롱하기도 한다.
사실 프로불편러가 되기는 어려운 일이고, 동시에 가치있는 일이다.
익숙한 것으로부터 탈피하고 주류의 관점에서 벗어나서 다른 관점으로 바라봐야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따라서, 조롱의 이름표가 아니라 영예로운 이름표이다.
왜 조롱이 되었을까?
집단적 방어기제의 발현
사회적 약속인 언어
배운대로 해야만 하는 속성
언어는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다. 사회적 약속의 수준이 언어 사용자들, 우리 사회의 수준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우리 언어의 방향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가 우리의 수준을 보여주고, 우리 사용자들로 인해 결정된다.
그래서 언어의 문제는 우리의 문제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언어가 우리의 생각을 담지 못한다면 언어를 바꿔야 할까, 우리의 생각을 바꿔야 할까?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어떤 선택을 할지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기를..
"기계의 판단은 불완전하다."_쿠르트 괴델, 엘런 튜링
이때 자기언급이라는 아이디어가 핵심적으로 사용된다.
이 한 문장을 가장 충격적인 발견이라 일컫는다.
고트프리트 라이프니츠는 독일의 17세기 중반에 활동하던 수학자이다.
뉴턴과의 미적분학이 유명하다.
이 사람의 꿈은 보편기관이란 기계를 만드는 것이었다.
인간의 모든 지식,능력,철학,음악 모든 것을 하나의 기계에 담는 것을 말한다.
1947년도에 애니악이라는 컴퓨터가 등장하고, 2022년 인텔사의 auroraA12는 인간의 뉴런과는 비교도 안되는 초당 200개의 연산이 가능한 것이 등장할 예정이다.
수학이 증명하는 게 아닌 새로운 추측을 컴퓨터가 추측하고 증명의 실마리를 준다.
전혀 새로운 접근이다.
컴퓨터가 사람의 통찰을 대신한다는 실마리를 준 것이다.
라이프니츠의 꿈이 현실로 이뤄지고 있는 중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언젠가는 우리의 판단을 컴퓨터에 맡기는 날이 올까?
20세기 초 수학자들은, 적어도 수학에 한해서는 기계가 인간을 대체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다비트 힐베르트가 '기계의 판단이 인간을 대체할 수 있을까'라는 관심을 가졌고, 쿠르트 괴델이 <불안정성> 을 정리하여 발표했다.
"참이지만 증명할 수 없는 명제가 있다."_ 괴델의 불안전성 정리(1931)
괴델은 정리의 시작을 자기언급에서 찾았다.
ex) 스마트폰을 거울앞에 가져갔을 때, 내 모습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모양과 같은 것.
대표적은 예로 '이 문장은 거짓이다'라는 역설이 있다.
괴델의 자기 언급 명제:
G: 이 문장은 증명할 수 없다.
자기언급이 왜 문제일까?
'나는 증명할 수 없다'라는 명제가 있다.
우리가 만약 괴델의 문장을 증명했다고 가정해보자.
증명했다는 것은 그 문장이 참이라는 뜻이다.
G: 이 문장은 증명할 수 없다.
괴델을 증명한 사람은 엘렌 튜링이다.
"모든 기계는 튜링기계이다"
수학적인 주장이 아니라 가설이라 볼 수 있다.
그래서 괴델의 발견, '참이지만 증명할 수 없는 명제가 있다.'라는 논제를, 튜링은 튜링기계로 증명했다.
증명이라는 것은 기호를 나열해서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기호의 나열은 튜링기계가 하는 일이다.
"기계가 대답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_튜링(1937)
결국, 기계의 판단은 완전할 수 없다.
"진리는 (문법으로)정의할 수 없다."_괴델,타르스키
그러니까 진리(맞고 틀림)은 기호의 나열과 규칙만으로 증명할 수 없다.
"인간에게는 진리를 알 수 있는 능력이 있다"_괴델
기계=증명<<진리=인간
르네마그리트의 '인간의 조건'이란 그림에서 생각해볼 수 있다.
내가 바라 보는 풍경과 그 풍경을 바라보는 나의 마음이 함께 그려져있다.
기계는 기호를 규칙에 따라 나열하고, 자기언급에 부딪히게 되고, 기계는 시키는 일을 하기 때문에 자신을 바라볼 수 없다. 무한루프에 빠지게 된다.
인간은 다르다.
내가 막다른 벽에 부딪히더라도, 내가 자기언급의 상태에 빠졌다는 것을 인지하고, 상태를 파악하고 벗어날 수 있다. '선택'으로 기계와 달리 진리에 다가갈 수 있다는 것이 기계와 인간의 차이이다.
"우리는 알아야 한다. 우리는 알게 될 것이다"._힐베르트
정말 우리는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을까?
"설령 사소한 것이라도 좋아. 선택하는 삶을 살고 싶어"_옷소매 붉은 끝동
'선택'을 사회구조적 관점에서 바라보자.
세대는 생애주기적으로 비슷한 시기에 태어나 특정시대적 상황을 경험함으로써 집단적 특징을 가지는 집단을 말한다.
그렇다면 MZ세대가 경험한 주요 사건들을 보자.
1993년 문민정부 출범 > 1995년 전두환, 노태우 구속, WHO 출범 > 1996년 OECD 가입, <바란의 나라>서비스 > 1997년 IMF위기, 초등교과목 영어 추가, 국내 첫 초고속 인터넷 > 1998년 가정용 PC 보편화 > 2002년 <싸이월드> 성장 > 2005년 호주제 헌법 불합치 선고 > 2010~2011년 학생인권조례 공포, 각종 SNS성장, <마인크래프트>첫 서비스
MZ세대는
정치적: 탈권위적 상황
경제적: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미래에 대한 불안 심화
사회적: 한층 자유롭고 평등한 분위기. 남녀 평등에 대한 인식 강화. 자유로운 분위기의 학창시절 경험
문화적: IT산업 활성, 디지털 네이티브, 해외경험 많아서 글로발리스트. 온라인게임과 sns서비스가 발전하고 스마트폰이 보급된 환경에서 태어남
이러한 MZ세대의 선택은 '풍요 속의 빈곤'이라 할 수 있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BTS <Map of the soul 7>가 대변해준다.
세상이 계속 변하는 만큼, 그 위를 부유하는 현대인들이 있다.
'너를 알고 네가 제대로 선택을 해서 그것을 열심히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해'
나의 성공실패가 모두 내가 나를 알고 선택하고 한 것에 의해 결정된다고 주입식 교육을 받은 세대이다.
'나'를 규정하는 것은 '자아'? '자아'란 무엇인가?
ex) 김연경
형용사: 멋진, 아름다운, 우수한, 성공한..
명사: 배구선수, 국가대표, 여자, 딸..
개인이 자기 스스로에게 부여하는 모든 특성의 구조물을 형용사와 관련된 I(개인, 주체적)와 명사와 관련된 ME(사회적)가 합쳐져서 균형이 중요하다.
하지만 I를 찾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MBTI같은 걸 통해 자신을 알아가려 하는 것이다.
MZ세대의 선택
선택 가능한 것: 개인적 차원 - 개인적 취향 , 적성
선택 불가능한 것: 사회구조적 차원 - 사회경제적 환경, 주어진 계층계급
'취향'과 '적성'이 중요한 세대이다.
적성에 맞지 않다고 생각하면 기성세대가 놀라움을 금치못할정도로 그것을 버릴 수 있는 신념이 있는 세대다.
하지만 선택에 따른 기회비용이 크기 때문에 다양한 것을 시도하며 자신에 대해 알아가는 일을 많이 하는 것이다.
끊임없이 나를 알아가고, 공유할 수 있는 것들을 통해서 서로의 취향을 공유할 수 있는 도구를 열망한다.
구조적으로 어쩔 수 없이 괴롭고 불안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자기를 더 알아가고, 중요한 선택에 있어서 책임을 지고 싶어하는 욕구의 발현이, MBTI라는 성격유형에 열광하는 이유라 할 수 있다.
피터 버거는 사회학에 굉장히 재미난 시각을 보여 줬던 학자이다.
"사회학은 우리가 꼭두각시임을 보여준다. 하지만 우리는 꼭두각시와 달리 고개를 들어 그줄을 볼 수 있다. 그것이 자유를 향한 첫걸음이다."
사실 우리가 하고자 하는 선택은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와 상황에 의해 구조화되고 선택의 폭이 좁아질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사회학을 알게되면 사회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우리는 꼭두각시와 달리 고개를 들어 그 줄을 볼 수 있다. 그 사회구조를 보는 것은 "자유를 향한 첫걸음이다."
더 큰 틀을 보고 그 줄을 끊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나를 총 지위하는 자아는 없다. 각기 다른 심리적 적응이 상황에 따라 활성화될 뿐이다.
1) 마음은 심리적 적응들의 묶음
2) 자아는 대통령이 아니라 언론 담당관
3) 내 편과 네 편을 가르는 부족 심리
마이클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은 우리나라에서 팔린 양이 전세계에서 팔린 양보다 많다.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에 우리나라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것 같다.
플라톤의 '국가'를 생각해보자.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제자이다.
트라시마코스는 소피스트(궤변론자)이다.
궤변이란, 언뜻 들으면 말이 되는 듯한데 논리가 없는 것을 말한다.
"정의는 강자의 이익이다." 이건 과연 궤변일까?
트라시마코스 "그렇다면 강자가 돼라. 하지만 강자가 되긴 쉽지 않다. 그렇다면 약자일 땐 어떻게 살아야하나? 적당하게 법을 어겨라. 평소에는 지키는척하면서 안 들키게 법을 어겨라."
그럴듯 하다.. 하지만 정말 완벽하게 법을 어길 수가 없다. 어기다 걸리면?
트라시마코스 "적절한 변명을 대고 빠져나가고 유력자를 동원해서 손을 써라. 평소에 그런 사람들 관리를 잘 해놔야 한다."
소크라테스는 가만있지 않았다. 소크라테스의 문답법으로 질문을 던졌다.
소크라테스의 반박: "과연 정의가 강자의 이익일까요? 입법자가 된 강자가 실수로 자신의 이익에 반하는 법을 세울 수도 있지 않을까요? 제대로된 입법자면 실수를 안한다? 제대로된 입법자라면 약자들이 이익을 받게 된다. 그렇다면 정의는 약자들의 이익이다."
드러나지 않는 많은 분야에서 성실하고 정직하게 제 몫을 다하기 때문에 우리나라가 단단하고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게 아닌가라고 생각한다.
플라톤은 절제의 미덕을 정의한다. 머리 -지혜, 가슴 -용기, 배-절제할 때 한 사람은 정의로운 사람이 된다.
각자가 제 몫을 다하는 것이 정의이다.
지혜-통치자, 용기-수호자, 절제-생산자.
각자가 정의로운 부분에서 제몫을 다하고, 나머지 부분에서는 약자에게 도움을 주는 식으로 일을 한다면 정의로운 사회가 될 것이다.
정의롭고 이상적인 나라를 칼리폴리스(아름다운 나라)라 한다.
우리 각자가 자신의 삶을 방식을 잘 선택해야 한다.
4가지 덕, '지혜, 용기, 절제, 정의'를 갖춘 사람이 각자의 일을 하고, 철학자가 통치자가 되면, 아름답고 정의로운 사회가 될 것이다.
<플라톤의 메세지>
현실을 직시하되 천박하지 말고 이상을 추구하되 공허하지 말라.
플라톤이 생각하는 이상국가는 작지만 강한 나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