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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금태 Mar 24. 2021

본 조비_너를 위해 난 항상 그 자리에

내 인생 최고의 코카콜라

내 인생 최고의 콜라는 산티아고 순례길에서였다.

나를 믿지 말고 예정된 일정대로 로스 아르코스에서 멈췄어야 했다. 그 날 아침 몸상태가 그다지 좋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목표한 바가 있어 무거운 발을 억지로 끌며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고 있었다. 점점 뜨거워지는 태양에 오늘 하루도 덥겠다란 생각을 하는 중, 종종걸음으로 앞 서 걸어가는 A를 만났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만나는 한국 사람이었다. 반가운 마음에 먼저 인사를 건넸다. A도 한국 사람은 첨이라며, 오늘 하루 길동무를 제안하였다. 그동안 되지도 않는 영어를 사용하느라 힘들었던 난, 오랜만에 터진 한국말에 조잘조잘 수다를 떨었다. 일주일 가량 서로가 겪은 모험담은, 그간 피로가 쌓여 무거워진 다리와 발바닥에 활력소가 되었다. 무르익는 수다와 함께 발걸음은 빨라졌다.

즐거운 수다가 뇌에 도파민을 전달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길동무가 생겼기 때문일까. 우리는 예정했던 로스 아르코스에 생각보다 일찍 도착할 수 있었다. 발걸음 또한 아침과는 달리 많이 가벼워져 있었다. A에게 제안을 했다. 복잡한 로스 아르코스 보다 다음 마을 산솔이 고즈넉하니 좋다 하는데 산솔까지 가는 것은 어떠냐며.


슬그머니 올라온 컨디션을 믿는 게 아니었다. 우린 로스 아르코스에서 멈췄어야 했다.




로스 아르코스에서 산솔까지 가는  8km 길은, 내가 산티아고 순례길을 포기할 맘이 들게  3가지   하나로 남게 된다. 점심을 지난 스페인의 태양은 정점을 찍어 40도를 넘는 열기를 뿜어댔다. 쨍쨍 내리쬐는 태양에 살갗이 물어뜯기는 기분이었다, 그늘   없이 쭈욱 이어진 자갈밭 길은 우리의 혼을 탈탈 털리게 만들었다.

등산화 밑창을 뚫고 전해지는 자갈의 고통과 흐르는 땀도 말라 염분으로 변하게 할 더위는 너무나 더우면 사람이 토할 것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하게 하였다. 어깨를 짓누르는 배낭의 무게와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은, 점점 몸을 바닥과 수평이 되도록 처지게 만들었다.

길의 중간에 주저앉아 내가 왜 이리 바보 같은 결정을 내렸는지 후회가 밀려왔다. 하지만 돌아가기에도 너무 늦어 계속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다.

힘든 몸을 질질 끌며 도착한 산솔 초입에 알베르게 겸 바가 보이자 마치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기분이 들었다. 바에 들어서자마자 콜라를 주문했다.

스페인에서 콜라를 주문하면 보통 유리잔에 얼음과 레몬 한 조각을 담아 함께 준다. 한국과 달리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실 수 있는 곳을 찾기 힘들기에 얼음 잔에 따른 콜라만큼 갈증을 해소하는데 최적의 음료는 없다. 단연코 그 어떤 이온 음료도 콜라를 이길 수 없다! 콜라를 그리 좋아하지 않던 나도 순례길에서 녹초가 된 후 마시는 콜라 한 잔에 중독되어 버렸다.




자리에 앉아 콜라병을 따고 얼음 잔에 콜라를 따랐다. 똘똘똘~ 콜라를 따르는 순간 얼음이 미끄러져 사그락 잔에 부딪히는 청아한 소리와 기포가 보글대며 귀를 살살 간지럽혔다. 곧 있으면 혈관을 타고 경쾌하게 온몸 구석구석 퍼질 콜라의 청량감과 달달함을 상상하니 절로 기분이 상쾌해졌다. 나의 기대대로 무더위 속 8km를 버티며 걸어온 내게, 콜라는 세상 다정하게 나의 지친 육신을 안아주었다.


마침 바에 스피커에서 흐르던 본 조비(Bon Jovi)의 <I’’ll Be There For You>는 콜라가 내게 ‘네가 지쳤을 때, 내가 필요할 때 난 언제든지 그 자리에 있을 거야’ 라며 은밀하게 전하는 사랑의 속삭임으로 들렸다. 곡이 고조됨에 따라 무거운 몸을 팡팡 터트려주는 탄산의 기운과 마지막을 향긋하게 감싸주는 레몬의 시큼함은, 이것이야 말로 ‘천국의 콜라’라며 본 조비는 내게 열창하였다.


우리는 바에서 한창을 쉬다 산솔에서 묶을 알베르게를 찾았지만, 이미 만원이 되어 산솔에서 약간 떨어진 옆 마을 토레스 델 리오까지 걸어야만 했다. 사실 산솔 알베르게에 빈자리가 없단 얘기에 동공에 지진이 좀 오긴 했지만, 마을 초입에서 나를 천국으로 이끈 콜라 한 잔이 있었기에 무사히 다음 마을까지 갈 수 있었다.


이 모든 것이 그날의 콜라 덕분이다. 그건 본 조비도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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