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에 목메던 내가 결혼을 하다니?
"넌 참 좋은 사람이야."
남자들은 이별을 이야기하며 나에게 꼭 이 말을 덧붙였다. 난 좋은 여자이지만 자기들은 나에 비해 너무 부족하다는 뉘앙스였다. 저 말을 들을 때면 남자들이 나쁜 사람되기 싫어서 내뱉는 헛소리라고 생각했다. 저 말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랬다. 나는 연애할때면 상대방에게 나의 모든 것을 바쳤다. 시간, 정성, 돈,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말이다. 지금에서야 웃긴 말이지만 연애하던 모든 남자와 결혼을 꿈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에도 모든 연애가 실패로 끝난 이유는 내가 헌신하는 만큼 사랑에 목메고 내가 내 모든 걸 바쳐 사랑하는 만큼 상대도 날 사랑해주길 바랬기 때문이다. 항상 계산하며 불안해했다. ‘내가 이 만큼 생각해주었는데 얘는 날 이것도 생각안해주네, 역시 날 사랑하지 않는 것 같아. 마음이 식은 것 같아.’ 라며 상대방의 사랑을 재고 또 어줍잖게 밀당을 (연락을 뜸하게 해본다던지, 약속을 취소한다던지)하려다 제풀에 지쳐 급발진하고 내막을 알리 없는 상대방을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나에게 다가오던 다정한 남자들은 내가 인생의 전부인 것처럼 굴다가 이내 시간이 지나고나면 어느새 2순위, 3순위로 나를 밀어버렸다. ‘변한다’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식어간다’는 것을.
스물 다섯, 학교 마지막 학기에 단편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 당시 남자친구가 있었고 역시나 나는 1년가까이 사귀고 있었지만, (과거 연애처럼) 같은 수순으로 좋지 않은 상황을 반복하고 있었다. 다큐멘터리 주제를 찾다가 내 안에 가장 문제시 되는 것을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했고 내 연애를 소재로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 같은 과였던 남자친구는 흔쾌히 촬영을 허가했고 몇몇 전남자친구들 인터뷰도 촬영했었다. (당시 교수님은 대학원 연구 수업까지 연계하자고 제안했었지만 그랬다간 정말 남자친구와 헤어질 것 같아서 포기했다.)
결국 촬영 중 정말로 남자친구와 헤어지면서 나는 멘탈이 나갈대로 나갔다. (그런 와중에 고프로를 켜서 헤어지는 순간을 담았다. 그 놈의 ‘넌 좋은 사람이야’라는 멘트가 역시나..) 거의 한 달을 촬영해 둔 푸티지(촬영물)를 보지 못해 편집을 할 수가 없었다. 내 인생 최악의 시절이었던 것 같다. 학기 중 전남친을 마주쳐야 하는 것도 그렇고 한 한기를 몰두해있던 프로덕션을 완수하지 못하고 있다는 자괴감에 휴학을 하고 싶었다.
헤어진 후에 마주치는 것 자체도 힘든 일이긴 했지만 더욱더 충격적이었던 건 헤어진 그의 태도였다. 헤어진 이후 교실에서 우연히 마주친 그는 마치 우리 둘 사이에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나를 보자마자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1년 안되게 사귄 그였지만 그래도 거의 매일 함께 하며 함께 수업을 다니고 프로젝트를 돕고 함께 강아지도 키우며 많은 것을 공유 했었다. 그런데 웃으면서 인사라니?
무엇보다도 교수님이나 선배들의 호출보다 나의 연락을 더 우선시 했던 그의 사랑 방식이 나를 길들였다. 그는 언제나 편견이나 계산없이 날 대했고 그의 모든 것에 있어서 내가 0순위였다. 그 결과 나는 내가 아니라 ‘그’는 내가 없으면 안된다는 믿음이 생겨버렸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오만이었고 착각이었고 그는 나 없이도 잘 살 수 있는 사람이었다. (물론 그가 이별 후유증을 얼마나 겪었는지는 알지못한다.) 당시 내가 본 그는 그랬다. 심지어 구멍난 양말을 새것으로 챙겨주어야 했던 사귈 때 보다 더 멀끔하게 입고 다니며 더 밝게 행동했다. 그와의 이별은 그렇게 생각지도 못한 전개에 의해 나를 잠식시켰고 나는 오래 아팠다.
그렇게 힘들어 하고 있을때, 그 이전에 사귀었던 전전남친으로부터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왜, 나만한 여자가 없디?”
“아니, 너가 아닌 여자밖에 없었지.”
사귄지 4개월만에 갑자기 지친다며 이별을 통보했던 그였다. (굉장히 느끼한 멘트같겠지만 울먹이며 저 말을 하는 통에 난 웃을수도 없었다.) 자신이 1년동안 줄곧 후회하고 있었고 지금 남자친구랑 헤어진 것을 알고 연락한 것이라며 다시 자신을 만나주면 안되냐는 이야기를 했다. 난 전남친과의 이별의 여파로 그럴 마음이 도저히 생기지 않았고 거절했다. 그와 만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생각했다. ‘그러게 후회할 짓을 왜 해. 나만한 여자가 어디있다고. 나같이 착하고 예쁘고 재밌고..’
이 경험들을 통해 너무 고통스러운 1년을 보냈다. 그 시간동안 손 놓았던 다큐멘터리를 편집하며 끝없이 나를 돌아보고 나의 문제점에 대해 헤아려갔다. 그리고 나는 두 가지를 깨달았다.
첫째, 계산없이 사랑해야 한다는 것과 둘째, 나는 정말 괜찮은 사람이라는 것을.
연애할 때마다 나는 내가 준 만큼 돌려받지 못하는 것에 마음 쓰고 슬퍼했다. 내가 상대를 사랑하는 것만큼 상대가 날 사랑하지 않으면 어쩌나 하고 항상 불안해했다. 그래서 내 마음이 커질수록 자존감은 더 낮아졌고 상대방은 그걸 보듬어주다가도 자신의 노력에도 채워지지 않고 반복되는 것에 지쳤을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모든 걸 퍼주고도 이별 후에는 늘 후회했다. 내가 계산했기 때문이다. 상대방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가늠해 나는 얼마나 마음을 줘야하나 얼마나 시간과 돈을 써야하나 마음속으로 늘 계산했다. 이 말인 즉, 정작 나는 전적으로 마음을 준 적이 없었던 것이다.
다큐멘터리를 찍었던 전 남친과의 이별 후 그것을 깨달았다. 그가 나에게 정말 아낌없이 계산없이 주었기에 이별 후 후회없이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할 수 있는 건 다 했기 때문에 상대방에 대한 미련이 생기지 않는 것이다. 그것이 연애에 있어서도 이별에 있어서도 승자가 될 수 있는 키라고 생각한다. (나는 관계가 끝나도 후회하지 않는 것이 승자라고 생각한다.) 내 마음을 계산 없이 쏟아 상대방을 그 사랑으로 길들이는 것. 나는 내 마음만 변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사랑’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나를 왜 좋아했어?”
“너한테서 빛이났으니까.”
시간이 많이 지난 후에야 무엇이든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이 생긴다. 나와 사귀었던 사람들과 옛 이야기를 나눈 인터뷰를 보며 나도 처음부터 지지리 궁상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누구와 사랑에 빠지기 전에는 오히려 더 밝고 긍정적으로 빛나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오히려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내가 사랑받지 못할까봐 점점 그 빛을 잃었던 것이다.
어렸을 적부터 자존감이 낮아 남들이 칭찬 한 마디만 해주어도 입에 발린말이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그제서야 나는 나를 처음으로 ‘좋은 사람’으로 바라보았다. (사실 좋은 사람이라는 명제에는 그 어떠한 명확한 기준은 없다. 그저 내가 나를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납득할 수 있으면 된다.)
‘그래 나는 이만하면 예쁜 것 같아. 코도 아빠 닮아서 예쁘고 쌍커플도 수술이 아주 자연스럽게 되어서 말 안하면 다들 수술한지도 몰라. 그리고 성격은 남의 말을 잘 들어주고 배려심이 깊지. 또 책을 좋아해서 공감능력도 뛰어난 편이고, 처음에 배우는 건 느리지만 늘 성실하게 노력해서 목표를 이루는 노력파지. 물론 컴플렉스 한 두가지는 있지만 그건 누구나 그래. 완벽한 사람은 없어. 나는 이만하면 괜찮은 사람이네!’
이렇게 생각해 보니 나는 정말 그들의 말처럼 괜찮은 사람이었다. 아니 꽤 좋은 사람이었다. 내가 나 스스로를 이렇게 바라본다면 더 이상 누군가 나를 사랑해주길 기다리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드디어 혼자여도 괜찮게 된 것이다.
내가 나를 오롯이 받아들일 수 있게 되자 더 이상 타인에게 의지하거나 날 아는 사람 모두가 날 사랑해주길 기대하는 것을 내려놓을 수 있게되었다. 또 나의 가까운 사람들에게 나의 고통을 털어놓으며 온전히 이해하고 받아들여주길 기대하는 것을 멈추게 되었다. 그 누구도 나만큼 나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태생적으로 생각이 많고 예민하고 우울한 것은 어쩔 수 없는 나의 본성이다. 그것으로 타인을 괴롭히는 건 이제 그만해야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름 찾은 방법으로, 나는 책을 더 가까이했다. 나와 같은 사람들이 많이 나오는 이야기에서 위로와 공감을 얻었다. 나는 더 이상 외롭지 않게 되었다.
‘그러니까 세상을 견딘다는 것은 나를 견딘다는 뜻이기도 했다.’
내가 좋아하는 단편 소설 속 구절처럼 나는 이제껏 나를 견디지 못해 이 세상을 우울한 시궁창처럼 여겼던 것일지도 모른다. 이것을 받아들인 시점으로부터 정말 많이 평온한 마음이 이어졌다. 내가 뭐 대단한 업적을 이룬 위인은 아니지만 자존감 0에서 이리도 자존감을 세울 수 있었던 그 시간들은 나에게 고통이면서도 축복이었다. 그 시간 동안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되면서 막연한 미래에 대해서 생각해도 불안하지 않게되었다. 또한 그 막연한 미래를 누군가로부터(가족이든 남자친구든) 구제받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 더 이상 백마탄 왕자를 기다리지 않고 내가 백마탄 기사가 되기로 한 것이다.
“아마도 오빠가 날 놓치면 후회할걸? 나 진짜 좋은 여자거든."
지금의 남편에게 사귈 당시 내가 했던 말이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스물 일곱에 카페 알바를 하던 나였다.) 남편은 37년 인생 처음으로 여자에게 저런 말을 들었다며 이후 내가 더 빛나보였다고 했다.
나의 가치를 내가 인정하는 순간, 내가 가장 빛나는 순간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