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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은비 Nov 23. 2020

셀린 시아마 감독의 틴에이저 영화는 어떻게 다른가

[평론] 영화 <걸후드>

영화 언론사 '씨네리와인드'에 발행된 글입니다.




셀린 시아마 감독의 틴에이저 영화는 어떻게 다른가

- 영화 <걸후드>




<걸후드>는 셀린 시아마 감독의 성장 3부작 마지막 작품이다. 전작 <톰보이>에서는 생물학적 여성인 아이가 ‘여성성’의 틀에서 벗어나자 사회와 가정의 폭력에 시달리게 되는 이야기를 섬세하게 다루며, 성 고정관념과 트랜스젠더 등에 대한 사회적 논의까지 건드렸다. 감독의 틴에이저 영화들은 밝고 가벼운 소재와 전개를 갖고 있는 여느 다른 틴에이저 영화들과 차별화되는 모습을 보여 왔다. 그렇기에 <걸후드>에 대한 기대는 조금 특별할 수밖에 없다. 역시 <걸후드>에서도 여느 다른 틴에이저 영화들과의 차이점이 돋보인다.



‘환골탈태’ 판타지의 거부와 주체적이고 입체적인 소녀 캐릭터

어려운 가정 형편의 16세 소녀 마리엠은 하교 후에도 바쁘다. 집안 생계를 책임지는 엄마 대신 동생 둘을 돌보고 집안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그의 오빠는 집안일을 돕기는커녕 한밤중에도 놀러 나가기 일쑤인데, 심지어는 이유 없이 마리엠을 괴롭히고 속박하며 가부장적 모습을 보인다. 이러한 상황에서 마리엠은 성적 관리가 쉽지 않아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싶은 꿈은 번번히 좌절된다. 선생님으로부터 직업계 고등학교에 진학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날 그는 홧김에 학교를 그만둔다. 그리고 우연히 유쾌하고 당찬 모습의 또래 소녀 세 명을 만나게 된다. 그들과 어울리면서 겉치장과 춤추는 법을 배우게 되지만, 결국 마리엠이 얻게 된 것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꿋꿋하게 선택하고 행동하는 태도이다.


영화의 초반부 전개를 보면 여자아이를 주인공으로 하는 전형적인 틴에이저 영화가 떠오르는데, 다행이 영화의 서사는 그런 식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잘 꾸밀 줄 모르며 소심한 소녀가 잘나가는 소녀들과 어울리면서 환골탈태하고 인생이 멋지게 변화된다는 판타지는 거부된다. 오히려 화장과 드레스, 멋진 남자친구는 주인공 소녀의 삶을 바꾸지 못한다는 것을 우리로 하여금 뚜렷하게 확인시키는 서사를 갖고 있다. 결국 마리엠에게 있어서 화장과 드레스는 생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사회에 순응하는 모습을 상징하고, 남자친구는 또 다른 속박으로 작용한다.


마리엠이 갈등하는 문제는 다른 틴에이저 영화에서처럼 또래 집단이라는 작은 사회에서의 자아 확립, 사회적 관계 형성, 틴에이저의 사랑 등 그런 것들보다는 훨씬 큰 범위의 것이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노출되는 폭력과 차별, 요구되는 성 역할 고정관념의 억압과 편견 등이 오랜 시간동안 고착화된 사회 그 자체가 소녀의 비극으로 제시된다.


마리엠은 이와 같은 비극에 굴하지 않고 좀처럼 ‘가만히 있지 않는’ 인물로 나온다. 끊임없이 자신의 미래를 고민하고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거침없이 행동에 나선다. 의미심장한 얼굴로 씩씩하게 어딘가로 걸어가는 마리엠의 모습을 포착하는 장면들을 자주 볼 수 있는데, 이는 우리의 호기심을 계속 이끌어 낸다. 마치 시험처럼 계속되는 시련 앞에서 그가 어떤 선택을 내릴지 우리는 엔딩씬까지 긴장을 놓을 수가 없다. 또한 그는 운동, 비디오게임 등 다양한 취미와 욕구를 가진 인물이다. 마리엠의 주체적이고 입체적인 모습은 수동적인 성격에 단순한 욕구를 중대한 목표처럼 생각하는 소녀 캐릭터의 클리셰와도 비교된다. 절망하지 않고 자신만을 위한 선택을 내리기를 포기하지 않는 이 소녀를 관객은 응원하지 않을 수 없다.



현실의 한계를 절감하지만 끝내 절망하지 않게 만드는

셀린 시아마의 영화에서는 주인공의 핵심적 문제가 극복되는(혹은 극복에 가까워지는) 희망적 진전이 만류된다. 희망적 결말로 향하는 듯 하다가도 거듭 비극적 형국으로 전환시킨다. 이로써 영화 속 인물은 물론 관객 또한 현실 벽의 견고한 두께를 절감하도록 만든다. 


감독은 전작 <톰보이>와 마찬가지로 사회에 고착화된 성 고정관념이 야기하는 폭력을 적극적으로 형상화시킨다. 오프닝 장면에서 소녀들은 미식축구 경기를 하고 있다. 흔히 볼 수 없는 이러한 광경에 이어서 바로 암울한 현실의 실상이 드러난다. 경기를 마친 소녀들이 다같이 화기애애하게 대화하며 밤 거리를 걷고 있다. 이때의 사운드는 대사가 명확이 들리지 않는 채로 왁자지껄 여러 명의 음성이 겹치는 불투명한 소음이다. 


우리가 이들의 모습에 흐뭇해지는 것도 잠시 소녀들은 남자아이들이 몰려 있는 곳에 이르자 일제히 말을 멈춘다. 생동감 넘치던 이들의 소음은 그렇게 한순간에 사라지고 화면은 고요해진다. 소녀들의 움츠러든 모습은 앞선 장면에서의 활기 넘치는 모습과 더욱 비교된다. 경기 팀 인원만큼이나 많은 수로 뭉쳐 있어도 불안과 두려움을 느끼는 소녀들과, 소수로 혹은 혼자 있어도 편안한 모습의 소년들. 이 장면은 또래의 아이들이 밤 거리라는 같은 시공간에서 성별에 따라 어떻게 다른 상황을 겪게 되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이는 각국의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일상적 상황인데, 상반되는 앞 장면과 바로 이어져 제시됨으로써 관객은 이 장면의 문제를 더욱 선명히 인식하게 된다.


이후 가정 내에서 오빠와 아버지가 소녀에게 가하는 폭력, 연애와 섹슈얼리티에 있어서 여성에게 가해지는 억압과 이중 잣대, 가출 청소년 커뮤니티에서조차 남성과 달리 수시로 성폭력에 노출되는 여성의 상황 등 여성이 사회와 가정에서 겪는 불합리한 고통이 화면에 고스란히 담긴다. 이렇게 영화가 잔혹한 현실을 담아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셀린 시아마의 영화에는 희망의 빛이 서려 있다. 이는 아이들이 현실의 어떤 타격을 받고 난 이후 취하는 태도에서 비롯된다. 아이들은 현실 앞에서 처절하게 상처받지만 영화의 끝은 이들의 체념이나 순응으로 마무리되지 않는다. 다시 또 기어코 발걸음을 내딛는 아이들의 행동에서 일말의 희망이 반짝인다. 


정확한 목표를 두고 당차게 걷던 마리엠은 폭력의 주체가 가정과 소속된 사회 모두에 있는 상황에서 결국 갈 곳을 잃게 된다. 그의 걸음은 그렇게 멈춘다. 카메라는 좌절하여 엉엉 우는 마리엠을 점점 화면 오른쪽 끝으로 몰고 끝내 그는 화면 밖으로 사라진다. 결국 어디든 이전에 머무르던 곳으로 돌아가 순응할 수밖에 없어 보이는 상황에서 불쑥 그가 다시 화면에 나타난다. 다시 단단한 얼굴을 한 그는 또 다른 길을 향해 발걸음을 뗀다. <걸후드>의 희망은 그렇게 피어난다.



‘여성성’과 타자화를 거부하는 연출

셀린 시아마의 틴에이저 영화에서 제일 두드러지는 특징은 단연 사회가 규정하는 ‘여성성’이나 ‘남성성’의 틀에 갇히지 않는 아이 캐릭터이다. 앞선 영화 <톰보이>에는 운동하는 것을 좋아하고 치마라면 질색하는 생물학적으로 여성인 주인공 로레가 있다. 이와 같은 특징은 <걸후드>에서 더욱 확장되어 나타난다. 등장하는 여러 소녀들은 성 고정관념으로부터 자유로운 모습을 하고 있다.


소녀들의 미식축구 경기 모습을 담은 오프닝 씬은 강렬하다. 미식축구는 여러 스포츠 중에서도 특히나 몸다툼이 많아 과격한 종목으로 여성에게 더욱 제한적이었던 역사를 갖고 있다. 소녀들은 서로 몸을 부딪치고 넘어지고 힘껏 달린다. 이때 화면은 스포츠 영화에서 으레 볼 수 있는 경기 장면처럼 가쁘게 몰아쉬는 숨소리 사운드, 다양한 숏 크기의 사용, 슬로우 모션의 연출 등 긴박한 공기와 활기찬 기운으로 채워진다.


소녀들의 세계에서 주먹다짐이 흔한 것도 인상적이다. 소녀들이 몸싸움의 승패로 서열을 가르는 장면들은 관객으로 하여금 묘한 쾌감까지 불러일으킨다. 여느 영화들 속에서 아주 흔하게 볼 수 있는 소년들의 몸싸움과 달리 소녀들의 몸싸움을 보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흔히 등장하는 전형적인 ‘여자들 싸움’과 같이 소리를 지르고 머리를 잡아당기는 등 즉흥적이며 어설픈 싸움이 아니다. <걸후드>에서는 결투 신청도 먼저 해야 할뿐더러 마치 레슬링 경기를 치르듯 일대일로 붙어 진지한 태도로 임한다.


카메라 또한 소녀들의 다양성과 활력을 담는 데 열중한다. 머리 모양과 길이, 옷차림, 체형 등에 있어서 다양한 모습의 소녀들을 볼 수 있다. 화면에서 소녀들의 몸은 타자화된 대상이 아니라 어떤 욕구와 의지를 가진 신체, 활력의 상징으로서 나타난다. 한 예시로 지하철에서 마리엠이 세 소녀들과 어울리며 어설프게 춤을 추기 시작하는 장면이 있다. 댄스 장면임에도 불구하고 카메라는 몸의 움직임보다 마리엠의 얼굴을 가까이 담는다. 이 장면에서 중요한 것은 자유에 눈을 뜨는 마리엠의 심리를 보여주는 것이고 우리는 확실히 그 의도대로 장면을 읽을 수 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장면들은 이 영화의 피메일 게이즈(Female Gaze)를 느끼게 하는 지점들이다.



셀린 시아마의 틴에이저 영화는 현실을 눈감는 판타지를 거부하고 현실을 직시한다. 젠더와 관련한 사회적 논의를 적극적으로 건드리며 현실의 문제를 제기한다. 단단한 현실의 벽을 허물기란 쉽지 않다는 사실을 간과하지 않으면서도 희망의 불씨를 끝까지 꺼 버리지 않는 것. 그게 그의 영화의 매력이며 감독이 틴에이저 관객에게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아닌가 싶다.






http://www.cine-rewind.com/4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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