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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서정 시인 Sep 23. 2024

타자의 욕망, 그리고 영원회귀

조서정 시인과 읽어보는 산문집 『엄마를 팝니다』


엄마는 왜 자식을 위해 평생 희생해야 했을까요     

엄마는 충남 부여군 외산면 화성리에서 태어났습니다. 외가에서 채 5분도 안 되는 거리에 있는 조씨 집안에 시집와서 평생을 시골 마을에서 살았습니다. 엄마가 아버지한테 시집을 온 것은 중매쟁이의 달콤한 거짓말 때문이었습니다. 시작은 아버지가 부여에 기와집도 사 놓고, 논도 열마지나 사놔서 평생 돈 걱정 없이 편히 살 수 있다는 새빨간 거짓말 때문이었습니다. 어려서부터 죽도록 고생한 딸은 돈 많은 집에 시집 보내 편히 살게 하겠다는 외할아버지의 욕망이 투영된 결정이었습니다. 그 시대의 결혼은 당사자의 의견보다는 부모님이 정해서 보내주는 대로 가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었습니다.     


막상 시집을 와서 보니 도회지에 나가서 편하게 살 수 있다는 중매쟁이의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었습니다. 몸 불편한 시어머니에 줄줄이 시동생에 시누이까지 딸린 것도 모자라 일이 뭔지도 모르는 철없는 남편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당장 한 끼 먹기도 힘든 가난한 집이었습니다. 그렇게 엄마는 가난한 집안을 끌어가는 가장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예기치 못한 문제가 발생했으니 바로 아기를 제대로 낳지 못한 것입니다.      

이때부터 엄마의 삶은 오로지 자식을 낳아서 잘 키우는 것이었습니다. 힘들게 아기를 낳았으니 그 애들을 잘 키워보려고 집안 농사를 다 지으면서도 산에 가서 약초를 캐야 하는 고단한 삶이었습니다. 그렇게 저의 엄마는 저의 사남매를 키우셨습니다.      


그리고 현재는 십일년 전에 아버지를 먼저 보내고, 시골에 혼자 살고 계십니다. 현재 몸 상태는 안 아픈 곳을 찾기 힘들 정도로 성한 곳이 없는 데다가, 치매약을 드시고 계시는데요. 어느 날 엄마가 그러셨습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니 내가 너무 불쌍하더라. 평생 고생만 지지리 하느라 좋은 것도 모르고 살았잖여. 몸은 병들고 죽은 날은 가까워졌고 내 평생이 너무 억울하단 말이지”     


제 엄마는 팔십 두 살을 살고 나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니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러는 중에 우울증이 깊어졌고, 그로 인해 치매가 앞당겨졌습니다.     


제 어머니 역시도 꼭 아기를 낳아서 대를 이어야 한다는 시어머니의 욕망을 자신의 욕망이라고 여기며 살아온 분입니다. 그러다 보니 어머니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화두는 자식을 잘 낳아서 잘 키워내야 하는 당신의 유일한 삶의 의미이자 종교였습니다. 그래서 평생을 자식을 위해 희생하면서 살다 보니 늙고 병든 몸에 외로움만 남게 된 것이지요. 그것은 팔십이 넘은 나이에 이르고 보니 그동안 살아온 삶이 억울했던 모양입니다.     


타자의 욕망을 욕망하다-라캉

제 어머니의 삶의 목적이 처음부터 자식을 쑥쑥 낳아서 잘 키우는 것뿐이었을까요? 저의 어머니도 처음에는 돈 많은 집에 시집가서 남편 사랑 듬뿍 받으면서 한 여자로서의 행복하게 살고 싶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엄마 앞에 닥친 현실은 엄마의 바람하고는 아주 달랐습니다.      


한 집안의 종부로서 가난한 살림살이를 꾸려나가는 동시에 대를 이를 아들을 쑥쑥 낳아서 잘 키워내야 했던 겁니다. 즉 엄마가 원했던 삶이 아니라 시댁 가족들이 원하는 삶을 살아내야 했던 거지요. 이렇게 결혼과 동시에 엄마 개인의 욕망은 철저히 배제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버지 또한 집안일보다는 남을 위해 봉사하는 삶을 평생 살다 가셨으니 두 분 다 타자의 욕망을 욕망하느라 자신의 행복을 돌보지 못했습니다.    

  

라캉이라는 정신분석학자는 이러한 삶을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고 해석했습니다. 즉 내가 원하는 욕망이 아닌 다른 사람들(사회, 도덕, 부모, 가족, 타인, 애인, 친구 등등)이 나에게 부여한 욕망을 내 욕망인 것처럼 착각하면서 살아간다는 뜻입니다.      


저의 엄마는 자식들이 다 품에서 떠나고 마지막 의지처였던 아버지마저 떠난 뒤에 그동안 살아온 당신의 삶이 억울하다고 하셨습니다. 늙고 병들어서 혼자 남겨졌을 때 지난 시간을 후회한들 되돌릴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타자의 욕망을 욕망하는 삶은 결국 뒤늦은 후회를 남깁니다. 하지만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온 사람은 마지막 순간에 잘 살다 간다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진정한 행복의 가치를 찾아가는 과정     

현재까지 밝혀진 과학적 연구에 의하면 이 우주에서 생명이 존재하는 행성은 지구밖에 없다고 합니다. 이 큰 우주에서도 지구라는 행성에서 사람으로 살아가는 우리는 기적의 주인공들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생각해 볼 때 한 사람 한 사람이 너무 소중한 존재입니다. 내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가를 알게 되면 지금부터 삶을 대하는 방식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 지구에서 살아갈 시간은 겨우 100년 남짓입니다. 우주적 차원에서 보면 인간의 한 생애는 찰나도 안 될 만큼 아주 짧은 순간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짧은 순간 동안, 온갖 타인의 욕망에 사로잡혀 살아간다는 사실인데요. 여기서 타인의 욕망이란 내 뜻이 아닌 부모, 선생님, 친구, 동료, 가족, 사회, 관습 등의 논리에 따라 살아간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이 지구에서 ‘나’라는 개인에게 주어진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며 살아갑니다.      


그럼 어떻게 살아야 나답게 가치 있게 사는 것이냐? 이 또한 참 어려운 질문입니다. 더구나 지금 한참 성장기에 있는 여러분의 경우에는 아직 이 질문에 정확한 답을 찾기 힘든 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지금부터 ‘나’답게 사는 길에 대해 깊이 생각하면서 앞으로의 삶을 개척해 나가야 할 중요한 시기를 보내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현대철학의 아버지라고 하는 니체는 영원회귀 사상을 통해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    

지금 현재의 삶을 영원히 반복해도 괜찮겠니”?     


현재의 삶을 영원히 반복해도 괜찮다면 그 사람은 지금 매우 행복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현재 행복하지 않다면 행복해지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니체는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위해 노력하는 것을 ‘힘의 의지’라고 표현했는데요. ‘힘의 의지’는 현재의 삶에서 한 단계 더 발전한 내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자세를 힘의 의지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현재의 삶을 행복하게 살아야 할 이유는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과 물리학의 ‘에너지보존의 법칙’에서 그 근거를 찾을 수 있습니다.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은 물리학의 ‘에너지보존의 법칙’과도 연관이 있는데요. ‘에너지보존의 법칙’을 쉽게 설명하면, 이 우주를 가득 채우고 있는 에너지는 형태만 변할 뿐 그 총합은 언제나 똑같다는 얘긴데요. 이 내용을 최근 다정한 물리학자로 유명한 김상욱 교수님은 이렇게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죽음이란 원자의 소멸이 아니라 원자의 재배열이다내가 죽어도 내 몸을 이루는 원자들은 흩어져 다른 것의 일부가 된다.....”     

우주 공간을 방황하던 산소는 태양이 탄생할 때 주위를 떠돌다 지구라는 행성의 일부가 된다산화철에서 불로물에서 이산화탄소로 옮겨 다니던 산소는 공룡이라는 생물이 된다공륭이 죽자 땅으로 돌아간 산소는 나무가 되고 토끼가 되고 강물이 되었다가 건물이 되기도 하고지금의 내가 되기도 한다나 역시 죽으면 흙이 되고 나무가 되어 어떤 책의 일부가 될 수도 있다죽음 이후에도 우리는 무엇인가가 된다     

-김상욱 교수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인간』 중에서           


이 지구에서 생명을 가지고 태어난 개개인은 마지막에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형태로 이 우주에서 영원히 산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는데요. 죽음 이후에는 지금의 모습은 아니지만, 또 다른 형태로 우주 공간에 영원히 존재하기 때문에 이 지구에서의 삶이 끝이 아닙니다. 현재의 모습이 어떤 형태로든 우주에서도 영원히 이어지기 때문에 주어진 삶을 정말 후회 없이 멋지게 살아내야 한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은 너무 소중한 존재들입니다. 오늘 이후부터는 각자에게 주어진 소중한 삶을 그리고 이 소중한 시간을 무엇을 위해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해 스스로 생각하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그 기준은 내가 추구하는 가치가 진정 내가 원하는 삶이냐? 아니면 타자가 나에게 부여한 삶이냐? 하는 것을 제대로 구분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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