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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설가 김서령 Jun 26. 2023

새콤달콤 캐러멜

오후 3시 20분이 되면 수진은 집을 나섰다. 큰길까지 나가 태권도장 셔틀버스에서 내리는 곱창이를 만난 뒤 놀이터에 풀어놓으면 된다. 수진은 매일 놀이터 벤치에 앉아 멍을 때렸다. 놀멍은 생각보다 고되었다.

“고모! 새콤달콤!”

킥보드를 타고 폭주족처럼 달려온 곱창이 옆에 한 녀석이 더 있었다. 얼굴이 말간, 키 작은 아이였다. 이 동네엔 곱창이 또래들이 많지 않았다. 대신 새로 이사 온 젊은 부부들의 어린 아기들은 많았다. 그래서 얼마 전엔 다섯 살까지만 받는 어린이집 한 곳도 문을 열었단다. 놀이터 끄트머리에 있는 경로당 건물 2층이라지.

수진은 점퍼 주머니에서 새콤달콤 캐러멜을 두 알 꺼냈다. 한 개는 곱창이, 한 개는 말간 녀석.

“저는 안 먹어요.”

“왜? 새콤달콤 싫어해?”

아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다른 거 줄 게 없나, 주머니를 뒤적이다 문득 떠올랐다. 아, 아이들에게 아무 간식이나 막 주면 엄마들이 싫어한댔지? 그래, 아토피가 있는 아이일 수도 있고 새콤달콤처럼 싸구려 캐러멜 따위를 주면 혼날 수도 있어. 유기농 간식만 먹는 아이일 수도 있잖아. 두 녀석은 다시 킥보드를 타고 쏜살같이 사라졌다. 

이후 며칠 동안 수진은 말간 녀석과 매일 마주쳤다. 곱창이와 말간이가 친해진 건 수진에게 악재였다. 곱창이가 도통 말간이와 헤어지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말간이 엄마가 말간이를 얼른 집에 데려가면 좋으련만 아무리 둘러봐도 말간이 엄마로 보이는 이는 없었다. 그리고 어둑어둑해질 때까지 가장 늦게 놀이터에 혼자 남는 아이도 말간이었다. 곱창이는 말간이와 더 놀고 싶어 우렁차게 울었고 수진은 해 지는 놀이터에 말간이만 두고 집으로 들어가는 일이 찜찜했다. 그렇다고 니네 엄마 어딨니? 물어보는 것도 왠지 내키지 않았다. 끝내 한 손에 킥보드를 들고, 다른 한 손으로 곱창이를 질질 끌고 들어온 날, 수진은 저녁을 먹은 곱창이를 욕조에 던져놓고 수건을 가지러 갔다가 놀이터 가로등 불빛 아래 혼자 그네를 타는 말간이를 보았다. 저녁 8시가 다 된 시간이었다. 이게 뭐야? 쟤 뭐야? 왜 여태 저러고 있어? 쟤 엄마 없어? 아빠도 없어? 할머니는? 수진은 진주에게 전화를 걸었다.

“걔 알아요? 얼굴이 말갛고 키는 좀 작은데, 이름이 뭐랬지? 윤오? 윤호인가? 아무튼 걔 알아요, 언니?”

“몰라. 왜?”

“걔가 지금 이렇게 어두운데 혼자 놀이터에 있어. 아까부터 계속. 뭐지? 이게 뭐지? 지금 날씨 추워. 언니, 쟤 데리고 들어와야 해요?”

진주와는 길게 통화를 할 수 없었다. 진주는 바빴다. 전화를 끊고 다시 내다보았을 때 말간이는 없었다. 

“너 혼자 욕조에서 나오면 안 돼! 욕실 미끄러워. 고모 올 때까지 그냥 있어!”

수진은 다급하게 놀이터로 내려갔다. 말간이는 없었고 몇 번이나 단지를 돌았지만 찾을 수 없었다. 엄마가 데려갔겠지…… 그런 거겠지. 집으로 돌아왔지만 마음이 쿵쿵거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다음 날에도 그다음 날에도 말간이는 계속 해 지는 붉은 놀이터에 혼자 남았다. 수진은 시내 유기농 천연효모 빵집에서 산 모닝빵을 곱창이와 말간이에게 내밀었다.

“이거 나쁜 재료 쓴 빵 아니야. 먹어도 돼.”

여전히 말간이는 고개를 저었다.

아직 혀짤배기소리를 내는 곱창이가 윤오인지 윤호인지 제대로 말해준 적이 없어 수진이 물었다.

“이름이 뭐야? 윤오?”

곱창이와는 얘기도 잘하는 것 같더니 말간이는 이름도 안 가르쳐준다. 

“왜? 곱창이 고모한테도 비밀이야?”

“아무한테나 이름 말해주면 안 되잖아요.”

수진은 하하하, 웃었다.

“그래! 너 되게 똑똑하다. 아무한테나 이름 말해주고 그러면 안 되지.”

그렇다고 경계심이 있어 보이는 건 아닌데. 곱창이는 누가 묻지 않아도 아무에게나 다가가서 “할머니! 저는 황건우예요!” 그러는데. 그러면 할머니들이 “어쩌라고?” 하는 표정으로 곱창이를 바라보았다. 수진이 김빠진 얼굴을 하고 앉아있자 누군가 옆자리에 풀썩 앉았다. 책가방을 멘 반지였다.

“쟤 이름 윤우예요.”

“아, 윤우! 그렇구나!”

“쟤 엄마 있어요.”

움찔했다. 엄마 없는 아이일까 봐 자신도 모르게 애면글면했던 게 티가 났을까. 어쩌자고 초등 2학년에게까지 그걸 들키는가. 한심하다. 

“반지는 뭐든 다 아는구나? 역시 2학년!” 

그럼 엄마는 왜 나타나지 않느냐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수진은 참았다. 2학년에게 물어볼 일도 아니었고, 값싼 동정심 같은 걸 아무에게나 들킬까 봐 그랬다. 

“윤우한텐 간식 같은 거 주지 마세요. 걔 엄마가 사람들한테도 다 부탁했어요. 알아서 간식 가져다주니까 주지 말라고요.”

“아……”

괜히 시내까지 가서 비싼 빵을 사왔네. 곱창이는 마트 식빵도 잘 먹는데. 

“빵 먹을래? 이거 비싼 거다?”

반지는 빵 봉지를 열고 한 개를 뜯어 오물오물 씹었다.

“비싸다고 꼭 맛있는 건 아닌데.”

“그렇지. 네 말이 맞아. 어쩜 너는 모르는 게 이렇게 한 개도 없니? 고모 기절하겠다?”     

그날 수진은 라일락 1호점에 들렀다.

“정말 웃기지 않아요? 애 혼자 두고 중간중간 와서 간식 챙겨주고 그러나 봐. 그럼 집에 있단 거잖아. 그런데 애를 왜 해 질 때까지 안 데려가?”

지윤은 달걀국에 밥 한 그릇을 말아 훌훌 떠먹으며 말했다. 종일 고객들을 만나느라 진이 빠져 있었다.

““여덟 살이면 혼자 놀다가 혼자 집에 갈 수도 있어.”

“곱창이는 못 해요.”

“건우를 너무 오냐오냐 키워서 그런 거 아냐? 반지는 일곱 살 때도 혼자 강아지처럼 온 동네를 돌아다녔어.”

“그래도 단지만 벗어나면 여기 다 도로인데, 행여 멋모르고 나가면 어떡해요?”

“여덟 살이면 도로 함부로 나가면 안 된다는 것쯤 알아. 건우를 곱게 키운 거라니까.”

“그래도.”

“걔 오늘도 늦게까지 놀이터 있었어?”

“아뇨. 오늘은 일찍 사라지던데요?”

“그럼 됐어.”

지윤도 조금 신경이 쓰이는 모양이었다.     

어느 날엔 말간이를 만났고 어느 날엔 만나지 못했다. 어느 날엔 노을 진 놀이터에 혼자 남은 윤우를 보았고 어느 날엔 보지 못했다. 윤우 엄마라는 사람, 정체가 뭘까? 아이 학교 보내고 밀린 설거지와 빨래, 청소 마치고 잠깐 잠들었을까? 재택근무를 하느라 바쁜 사람일까? 그래도 잠깐 나와 하교하는 걸 지켜봐 줘야 하는 거 아닌가? 수진은 그 집 시어머니라도 된 듯 공연히 골을 내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누구에게나 어쩔 수 없는 사정이란 게 있는 법이지. 그런데 나는 왜 말간이가 가여울까. 이건 무슨 오지랖일까. 아동학대 같은 건 아니겠지, 설마? 수진은 어느새 말간이 엄마, 윤우 엄마를 미워하고 있었다. 하필 이름도 건우, 윤우 비슷해가지고.

그러다 수진은 윤우 엄마와 딱 마주쳤다. 토요일, 놀멍하던 중이었다. 락앤락 통에서 꺼내주는 조그만 인절미를 날름 받아먹는 윤우를 보고 아, 저 사람이 윤우 엄마구나, 했다. 포니테일로 묶은 머리에 후드를 입고 조거팬츠 발목 위로 스포츠 양말을 당겨 신은, 경쾌해 보이는 여자였다. 화장기 없는 얼굴에 평범하고 다정한 미소를 담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냥 평범했다. 

“건우 고모시구나.”

“네…… 안녕하세요.”

“건우 고모가 맛있는 거 많이 주신다고 윤우가 얘기 많이 했어요. 고마워요. 제가 밖에서 뭐 받아먹지 말라고 해서……”

“네, 제가 실수한 것 같더라고요. 아이들 먹는 거 조심하시는 분들 많은데, 제가 잘 몰라서……”

“아니에요. 폐 끼칠까 봐 그러죠. 제가 윤우 친구들 못 챙기는데 윤우만 자꾸 얻어먹고 그러면 죄송하니까요. 마음은 늘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요.”

너무나 예의 바른 여자였다. 아무래도 아동학대는 아닌가. 두 아이가 미끄럼틀과 그네를 오가는 사이 우리는 묵묵히 벤치에 앉아 있었다. 입 열지 말자, 아무 말도 하지 말자, 실은 마음속으로 백 번을 다짐하는 중이었다.

“혹시 아세요?”

윤우 엄마의 물음에 수진이 화들짝 놀랐다.

“네? 뭘요?”

“저, 저기 어린이집 교사예요. 산새소리 어린이집.”

산새소리 어린이집이라면 경로당 2층 어린이집이다. 

“어…… 몰랐어요.”

“모르셨구나. 그런 것 같았어요. 여기 놀이터 나오는 엄마들은 다 알거든요. 저는 건우 잘 알아요. 놀이터에서 목소리 제일 큰.”

“아아. 그러시구나! 전 그것도 모르고.”

그런데…… 어린이집 교사이기까지 한 사람이 아이를 이렇게 방치하는 거지? 아니야, 물으면 안 돼. 나는 꼰대 시어머니가 아니야. 못돼처먹은 시누이도 아니라고. 

“제가 근무 끝날 때까지 윤우가 기다리는 거예요. 집에 가서 기다리라 그래도 말을 잘 안 들어요.”

“윤우는…… 건우랑 다르게 다 큰 애 같아요. 혼자도 잘 놀더라고요.”

“네. 혼자서도 잘해요. 그러니까…… 행여라도 걱정하지 마세요. 놀다가 졸리면 집에도 잘 가요. 그러니까 제 말은…… 혹시 걱정하실까 봐서요.”

나는 속을 다 들킨 사람처럼 귓불이 빨개져선 손을 휘휘 내저었다.

“걱정은요! 아니에요. 어…… 애가 되게 의젓하다, 어른스럽다…… 뭐 그렇게만 생각했어요. 진짜로요.”

수진의 오지랖은 가족의 고유한 유전자에서 비롯되었다. 혈연이 아닌 종이 계약으로 이루어진 가족이지만 진주도 그런 유전자가 분명 있다. 반가운 건 지윤의 오지랖도 그에 못지않다는 것이었다. 그날 밤 수진과 진주, 그리고 지윤은 진주네 집 거실에다 동그란 밥상을 펴고 소주잔을 두 개 놓았다. 마트 마감 할인 시간에 사온 낙지볶음을 한 접시 놓고 앉으니 천국이 따로 없었다. 세 사람은 진지하게 윤우와 건우의 하교 후 생활에 관해 논의하는 시간을 가졌다. 

“일단 나는 놀멍이 너무 체질에 안 맞아요. 내 방에 앉아서 내다보기만 해도 되는데, 나는 소심한가 봐. 그게 잘 안 돼.”

“건우가 아직 받아쓰기 30점을 넘겨본 적 없다는 것도 마음 쓰이긴 해. 둘이 우리 집에서 책도 읽고 그러면 좋긴 할 텐데. 황소 새끼처럼 뛰어댕기지만 말고.”

“내 말이! 둘이 작은방 들어가서 놀면 나도 넷플릭스 좀 보고, 간식 종종 넣어주면 되잖아. 언니가 윤우 엄마한테 말 좀 해주면 안 돼요? 윤우 엄마도 나쁠 거 없잖아.”

친구만 있으면 곱창이는 고모를 본체만체했다. 그러니 윤우를 이 집에 데려오면 저희들끼리 알아서 잘 놀 테고 수진은 자유의 몸이 되는 것이다. 수진의 엄마가 바리바리 싸다준 반찬들이 있으니 애들 밥 먹이는 건 일도 아니다. 아예 놀멍을 안 할 수야 없으니 그건 수진이 조금만 견디고 일찍 들어와서 애들을 방에 풀어놓으면 저희들끼리 소리를 지르건 들고 뛰건 내버려두고 수진은 천국에 갈 수도 있는 것이 아닌가. 게다가 이 집은 단독주택이다. 층간소음 따위 딴 세상 이야기다. 완벽한 조건이었다. 무엇보다 수진은 어두운 놀이터에 윤우만 두고 들어오는 길이 견디기 어려웠다. 

“반지도 끼워줘. 우리 집 반, 건우네 집 반 하면 되잖아. 반지 또래 친구가 여기 별로 없어서 맨날 빨래방 동준이랑 놀아.”

일이 반으로 주는 순간이었다. 수진은 그야말로 딱이라고 생각했다.      

다음 날 윤우 엄마의 전화번호로 수진은 정성 들여 카톡을 보냈다. 윤우와 건우, 그리고 라일락 1호집 반지를 우리 집에서 하루 놀게 했으면 좋겠다, 그러니까 초대를 하는 것이다, 생일은 아니고 그냥 초대하는 것이다. 아이들은 왜 그런 거 좋아하지 않느냐, 건우도 친구들을 초대하는 일이 처음이라 기뻐하고 있다, 저녁 먹이고 천천히 놀고 있을 테니 퇴근하고 데리러 오시라, 아니면 내가 데려다줄 수도 있다…… 수진은 길게 길게 썼다. 한참 후에 윤우 엄마가 전화를 걸어왔다.

“폐 끼치는 일 같아서 망설여지는데, 건우랑 반지가 신이 나 있다고 하니 거절할 수도 없고…… 너무 죄송한 일 같은데……”

수진은 절대 아니라고, 밥 잔뜩 먹일 테니 걱정 마시라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날 아이들은 정말 넋이 나가도록 놀았다. 초등생 셋을 함께 두는 것이 집을 부술 수도 있는 일이라는 것을 수진은 그날 처음 알았다. 

윤우가 여전히 간식을 거부했기에 수진은 곱창이의 간식도 챙기지 않았다. 대신 곱창이가 윤우 엄마가 챙겨주는 간식을 받아먹었다. 그건 꼭 007 작전 같았는데 윤우가 어린이집으로 올라가는 경로당 계단을 서너 번 오르락내리락하면 입구 옆으로 난 작은 창문이 열리고 하얀 손이 나타났다. 하얀 손은 윤우의 손바닥에 작은 봉지를 내려놓고 금세 사라졌다. 윤우가 냅다 곱창이와 반지에게 달려와 봉지를 풀어보면 그 안에 반으로 자른 바나나 세 조각 혹은 송편 세 개 등이 들어있었다. 녀석들은 모래가 묻은 꼬질꼬질한 손으로 신나게 그것들을 먹었다. 윤우 엄마는 종종 어린이집 아이들을 데리고 놀이터에 나왔다. 엄마, 하고 달려갈 만도 한데 윤우는 그러지 않았고 윤우 엄마도 윤우를 부르지 않았다. 그들은 모르는 사람처럼 굴었다. 

“직업 정신 완전 쩌는데?”

수진과 지윤은 감탄했다. 

집이 부서질 것 같긴 했지만 나는 윤우와 반지를 집에 데려가는 일이 좋았다. 녀석들 고함에 넷플릭스 볼륨을 아무리 높여도 들리지 않아 무음으로 해놓고 본들 놀멍보다는 나았다. 윤우 엄마는 거절을 하다 하다 뭐 이런 끈질긴 고모가 다 있나, 하는 표정으로 결국 허락했다. 일주일에 두 번은 수진네로, 한 번은 라일락 1호점으로 갔다. 경자 씨가 셋을 다 데려가 저녁을 먹일 때도 있었다. 윤우 엄마는 라일락 1호점과 수진네 집으로 피자나 치킨, 사과 박스를 배달시켰다. 

“이러다간 파산하시겠어요. 그만하세요, 제발.”

수진의 카톡에 금방 답장이 왔다.

“고마워서요.”

참으로 말수가 적은 사람이었다, 윤우 엄마는.      

그날은 윤우 엄마가 많이 늦었다. 늦어도 일곱 시 반이면 카톡으로 퇴근을 알려왔는데 여덟 시 반을 넘겨 퇴근하는 진주와 마주쳐 함께 왔다. 어린이집에서 수진네 집까지는 삼보일배를 하면서 와도 3분이었지만 윤우 엄마는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건우 고모한테 너무 미안한데…… 치킨 사도 돼요?”

이렇게 반가운 말이!

“맥주도 살게요.”

윤우 엄마는 알고 보니 소맥을 잘 마는 여자였다. 부랴부랴 달려온 지윤은 삶은 골뱅이 한 접시를 손에 들고 있었다.

“전국 어딜 돌아다녀도 연정 골뱅이처럼 쫄깃쫄깃한 게 없다니까!”

아이들은 닭다리 하나씩 든 채 집을 부쉈고, 네 여자는 동그란 밥상을 펴고 앉아 골뱅이와 치킨을 번갈아 씹었다. 

“출산휴가 3개월 끝나고 윤우를 데리고 출근했어요. 낮잠 시간에 윤우 반 잠깐 들어가서 젖 먹이다 학부모 한 분께 딱 걸린 거예요. 난리가 났죠, 뭐. 그분 입장을 모르는 건 아녜요. 교사가 자기 아이 챙기느라 다른 애들한테 신경 덜 쓸까 봐 불안한 마음 이해하죠. 결국 윤우는 다른 어린이집으로 보냈어요.”

“그렇다고 옮기기까지 해요?”

“학부모들 단체로 항의하고 난리도 아니었거든요.”

윤우 엄마는 은은하게 웃었다. 그런 미소가 몸에 밴 사람 같았다.

“그다음 어린이집에선 애 데리고 다녀도 괜찮다길래 윤우 세 살 때 옮겼는데 거기서도 똑같았어요. 제가 담임을 맡은 것도 아닌데 학부모들이 그렇게 싫어하더라고요. 원장님도 난감해하고. 그래서 또 다른 데로 윤우 보내고.”

수소문 끝에 윤우 엄마는 아이와 함께 다녀도 된다는 한 아파트 단지의 어린이집을 찾아냈다. 그래서 집도 옮겼다. 살 것 같았단다. 워킹맘들이 아이를 늦게 데리러 와 퇴근이 늦어진다 해도 걱정할 것이 없었다. 그렇게 냉큼 옮겼지만 결국 사달이 났다.

“그거, 비밀로 하면 안 되나요?”

지윤이 물었다. 

비밀로 했단다. 윤우는 엄마에게 꼬박꼬박 선생님이라고 불렀다는데. 그래도 한 아파트 단지에서 모자 사이인 걸 영영 비밀로 하기는 어려웠겠지. 

“정말 학부모들이 원장님을 달달 볶아쳤어요. 별수 없이 항복.”

윤우 엄마는 하하하 웃으며 두 손바닥을 반짝 들어 보였다. 윤우 엄마는 윤우가 다른 어린이집에 다니는 동안 셔틀버스에서 내리는 것도 지켜볼 수 없었다. 근무 시간에 자리를 비울 수는 없으니까. 대신 원장이 셔틀버스 정류장에 나가 윤우를 데려왔고 간식 봉지를 들려 집으로 올려보냈다. 

“퇴근해서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윤우 불러 집으로 가려는데 학부모 한 분이 활짝 웃으면서 그러시더라고요. 선생님은 좋으시겠다, 온 동네가 윤우를 다 같이 키워주네? 원장님이 하원시켜줘, 어린이집 간식도 챙겨줘. 온 마을이 아이 하나를 키워준다더니 이런 걸 보고 하는 소리였나 봐?”

진주가 소주잔을 밥상에 탕, 내려놓았다.

“뭐래?”

사람들은 놀이터에서 혼자 노는 윤우를 매일 걱정했다. 날이 찰까 봐 윤우를 걱정했고 목이 마를까 봐 걱정했고 배가 고플까 봐 걱정했다. 돌봐줄 할머니도 없나 걱정했고 돌봄 선생님을 쓰지 않는 윤우 엄마의 박봉을 걱정했다. 윤우 아빠는 왜 보이지 않나 걱정도 했다. 

“행여 이혼한 거라 생각할까 봐 주말부부라고 미리 얘기도 했어요.”

“주말부부시구나.”

수진의 말에 아무렇지도 않게 윤우 엄마가 대답했다.

“이혼했어요.”

아…… 그렇군.

“이혼까지 했다고 하면 윤우를 아빠도 없는 세상 불쌍한 애 취급할 것 같아서요. 윤우 아빠, 윤우한텐 정말 좋은 사람이거든요. 나랑이야 안 맞았지만 윤우한텐 최고의 아빠예요. 주말마다 달려와요, 윤우 보러. 그런데 그게…… 사람들 하나하나 부여잡고 내가 설명할 일은 아니잖아요.”

밤이 깊었고 황소 새끼들처럼 아무렇게나 잠든 아이들에게 진주는 이불을 가져다 덮어주었다. 

“쟤들 양치 안 했는데.”

수진이 중얼거렸지만 지윤과 진주는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는 듯 고개를 가만히 저었다. 수진은 입을 다물었다.

사람들은 윤우를 걱정했기 때문에 윤우를 볼 때마다 혀를 쯔쯔 찼고, 돈이 중요한 게 아니라며 윤우 엄마를 나직이 나무랐다. 아이 입성이 행여 허름할까 뚫어지게 쳐다보았고, 정글짐에 매달린 윤우를 기어이 불러 고구마 반쪽을 갈라주었다. 그 이야기를 할 때 수진은 새콤달콤 캐러멜이 떠올라 눈을 질끈 감았다. 

“나랑 윤우는 최선을 다하고 있고, 아주 잘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우린 정말 아무렇지도 않아요. 우리가 행복하다는 걸 사람들에게 증명해야 한다는 게…… 나는 정말 이상해요.”

수진은 뒤 베란다에 두었던 미지근한 소주를 몇 병 가져와 냉장고에 넣었다. 그걸 보고 윤우 엄마가 소리 내어 웃었다. 

“소주 안 사두면 건우 고모가 애 안 봐주거든요.”

진주가 말했다.

“밤에 소주 마시는 재미도 없이 어떻게 애를 봐요? 난 그렇게는 못 해.”

수진의 말에 많이 먹어, 많이 먹어, 하며 진주가 수진의 등을 어루만져주었다. 

“그런데…… 혹시 사별하셨어요?”

윤우 엄마의 말에 모두 화들짝 놀라버렸다. 하긴 그동안 윤우 엄마는 단 한 번도 수창과 마주친 적이 없었다. 

“이혼하신 건가 했는데…… 그런 거면 올케랑 시누이가 이렇게 지낼 리는 없으니 사별인가 했어요.”

수진은 새콤달콤이 떠올랐을 때보다 더 질끈 눈을 감으며 도리도리 고개를 저었다. 

“그게…… 우리 오빠가 저기 딴 데, 남의 집 대들보 노릇을 좀 하느라고요……”     

주말에 수창은 빨랫감을 들고 집으로 왔다. 강된장에 비빈 밥을 두 그릇이나 비우고 마룻바닥에 엎드린 수창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수진은 발로 수창의 등짝을 툭툭 건드렸다.

“야, 황수창. 일어나 봐. 얘기 좀 해.”

수창은 등을 움찔거리며 앓는 소리를 했다.

“나 진짜로 피곤해. 겨우 마감하고 왔어.”

“일어나 봐. 우리가 동네에서 무슨 소릴 들었는지 알아? 새언니 사별한 줄 알았대.”

수창이 머리를 들고 부스스 수진을 쳐다보았다.

“무슨 소리야?”

“니가 존재감이 1도 없다는 거지. 니가 아빠 노릇이라곤 한 번도 해본 적 없단 소리야. 오죽했으면 사별 이야기가 다 나와? 그래, 한국문학 지키라고. 니가 대들보 하라고. 누가 뭐래? 근데 집도 좀 지켜. 이 집구석 대들보 노릇도 조금은 하라는 거야. 새언니는 무슨 죄야?”

수창은 꾸물꾸물 일어나 앉았다. 

“나 요즘 잡문도 엄청 많이 써. 돈 벌려고.”

“당연하지. 써야지. 근데 너는 왜 그것만 해? 왜 너 하고 싶은 것만 해? 새언니도 나도 돈 버는 거 말고 나머지를 다 하는데 너는 왜 안 해? 왜 너는 뭔가 대단한 일을 한다고 그렇게 혼자 정신승리를 하고 있는 건데?”

“미안해……”

빨래통을 가지고 진주가 마루로 나오자 수창은 지원을 구하는 얼굴로 진주를 쳐다보았다. 진주는 설핏 오빠를 쳐다보더니 한 마디 툭 던졌다.

“빨래부터 해. 이따가 건우 데리고 나가서 놀멍하고.”

“알았어……”

수창이 비척비척 일어섰다. 수진은 당분간 서울 나들이를 가지 않을 생각이었다. 이 집안의 관리 감독이 더 시급했다. 수진은 소파에 앉아 휴대폰을 들어 유튜브를 켰다. 월요일에 곱창이와 말간이, 반지를 데리고 어몽어스 종이접기 놀이를 하려면 미리 연습이 필요했다. 다음 주부턴 줄넘기도 가르칠 생각이었다. 이래 봬도 초등시절 수진은 줄넘기 학급 대표선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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