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설가 김서령 Jun 26. 2023

가쓰오부시의 귀향

곱창이 다리는 무쇠 다리인가. 두 시간째 놀이터를 미친 듯 뛰고 있는데도 전혀 지치지 않는다. 지구에 온 지 이제 5년 9개월밖에 되지 않았는데 그동안 얼마나 잘먹고 뼈마디 뼈마디 저장을 잘했기에 저토록 놀아 젖혀도 말짱하단 말인가.

“황곱창! 그네 그렇게 타지 말랬지?”

그네 앞 벤치에 앉은 수진은 빽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어찌나 그네를 몰아치는지 저러다간 그네가 뒤집혀 반대편으로 날아버릴 것만 같았다. 속도를 줄인 곱창이가 그네가 미처 멎기도 전에 풀쩍 뛰어내렸다.

“고모.”

“왜?”

“곱창이라고 하지 마.”

“곱창이를 곱창이라고 하는데 왜?”

“나는 황건우야.”

“너를 키운 건 팔 할이 곱창이야. 서울 서교동 황소곱창. 너는 곱창이라 불리는 게 마땅해.”

곱창이는 이를 앙다물고 미끄럼틀 아래 세워두었던 킥보드를 끌고 쌩 달려나갔다. 

곱창이의 다리는 그러고 보니 진짜 오동통한 곱창 같다. 속에 폭신한 곱 가득한. 곱창이를 키운 팔 할이 서교동 황소곱창이라는 건 거짓말이 아니다. 황소곱창집을 소개팅 장소로 정했던 수진의 오빠 수창은 거기서 새언니를 처음 만났고, 그들은 그날 같이 잤다. 곱창이는 황소곱창에서 생겨난 것이나 다름없다. 새언니는 입덧 기간 내내 황소곱창을 들락거렸고 입덧이 끝나고도 황소곱창집엘 갔으며 나중에는 곱창이의 손을 잡고 갔다. 그 무렵 등기로 온 수창의 인세보고서엔 –4580원이 찍혀 있었다. 마이너스 인세란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수진은 그때 처음 알았다. 

“계약금 당겨 썼어?”

수창은 도리질을 하며 무심히 대답했다. 

“반품됐나 보지.”

몇 권 팔리지도 않았을 책이 반품되어 마이너스 인세보고서를 받아온 수창의 가족을 위해 수진은 곱창값을 꼬박꼬박 대신 내어주었다. 수창이 소개팅을 가던 날, 용돈으로 10만 원을 찔러준 것도 수진이었다. 수창은 그 돈으로 곱창값을 냈다. 덕분에 곱창이는 무쇠 다리, 아니 곱창 다리로 무럭무럭 잘도 자랐다. 아무리 생각해도 수진은 고모로서 할 도리는 다한 것 같았다.     

가을 바람이 벌써 찼다. 수진이 연정주택단지로 이사한 것도 석 달째다. 

“아니, 그 낡은 집을 왜 사? 고치긴 왜 고쳐? 그럴 돈이 있으면 차라리 주식을 사.”

수진은 엄마를 말렸다. 하지만 수진의 엄마는 셈 빠른 사람이었다. 

“야, 옛날 생각하지 마. 이 동네가 요즘 장난 아냐. 젊은 사람들 이사 들어오려고 줄을 섰어, 줄을. 잘 고쳐놓으면 나중에 절대 손해 안 봐.”

믿기지 않았다. 그럴 리가. 세월에 눌려 지붕이 짜부라질 것 같은 동네에 젊은 사람들이 왜. 거기다 엄마가 덧붙인 말은 수진이 기함하고도 남을 것들이었다. 연정에 와서 황곱창의 돌보미가 되라는 거였다. 

“곱창이네가 이제 돈 좀 벌려고 아등바등하잖아. 동생이 돼가지고 그것도 못 해줘? 걔들 벌이 얼마 된다고 돌봄 선생님을 써? 미치지 않고서야.”

그러니까 수진을 공짜로 부리겠다는 소리였다. 소설가 오빠는 장편소설을 쓰겠다고 고시원에 처박힌 지 오래였다. 욕할 수도 없는 게, 수진의 오빠는 너무나 성실한 사람이었다. 바지에 곰팡이가 피는 줄도 모르고 미친놈처럼 소설만 썼다. 아니, 그렇게까지 인생에 열심인데 어떻게 무책임한 놈이라고 욕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성실한 건 성실한 거라 쳐도 그래도 이건 아니지 싶어 수진이 어설픈 잔소리라도 얹으려 하면 한때 소설가 지망생이었던 수진의 새언니가 정색했다.

“이거 봐, 황수진.”

“네.”

“오빠 그렇게 어수룩한 사람 아니다? 우리나라 문학계에선 대단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다?”

“아, 네.”

“소설가는 살아서 영광을 좇는 사람이 아니야. 그러려고 태어난 사람이 아니라고. 소설가 가족이 그걸 몰라주면 어떡해?”

원한 적도 없는데 소설가 가족이 되는 바람에 당신네 가족 보험료가 내 통장에서 따박따박 나가고 있고, 당신네 가족 의류비와 외식비가 다 내 몫이 되었다고 따지고 싶었지만 이 가족의 주거비를 책임지고 있는 엄마가 먼저 큰소리를 냈기 때문에 참을 수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의식주 중 가장 비중이 높은 건 주거비니 말이다. 그럴 때면 엄마의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끄러워! 느이 오빠가 소설 써서 제일 고생하는 건 나야. 느이 아빠도 돈 안 되는 서점 평생 붙들고 있지, 느이 새언니랑 곱창이도 나만 쳐다보고 있지. 나보다 더 고생하는 사람이 어딨어?”

소설가와 소설가의 아내와 소설가의 아들은 오랫동안 수진의 엄마 집에 얹혀살았다. 수진의 아버지가 서점을 하지 않았더라면 오빠가 소설가가 되지 않았을 수도 있어서 아버지는 입도 뻥긋할 수 없었다. 수진의 사족이 화목할 수 있었던 건 일단 새언니가 소설가 지망생 출신이었기 때문이었고 더불어 두 시인 덕분이었다. 무슨 말이냐면 아주 먼 옛날 도종환 시인의 시집 《접시꽃 당신》과 서정윤 시인의 시집 《홀로서기》가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던 서점의 호시절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수진의 엄마는 서점 매출을 잘 챙겨 세들어 있던 서점 건물을 통째 사들였다. 연정주택단지와 붙은 3층짜리 건물이었고 2층에는 월세를 받을 수 있는 살림집이 두 칸 있었다. 원래 2층 작은 살림집에 세들어 살던 수진의 가족은 보무도 당당하게 3층 독채로 옮겨갔다. 결론을 내보자면 2층 두 살림집의 월세가 꼬박꼬박 나와 주었기에 책 몇 권 팔지도 못하는 영림서점 사장님은 이혼을 당하지 않을 수 있었고, 아버지보다 책을 더 못 파는 오빠 부부도 쫓겨나지 않았던 것이다. 

이제 더는 책을 사는 사람이 없고 건물은 낡아만 갔다. 2층 살림집들은 오래전에 사무실로 바뀌었고 아버지는 결국 서점을 비웠다. 몇 달 비어있던 1층 서점 자리는 얼마 전 아버지의 친구들이 들어왔다.

“어차피 비어있잖아. 우리가 추렴해서 월 얼마씩 낼게. 바둑이나 두고 고스톱이나 치려고.”

그들은 아직 떼지 않은 서점 간판 아래 조그만 현판을 달았다. 철심회. 철강회사에 30년씩 다니다 퇴직한 사람들의 모임이었다. 

엄마는 3층도 비우기로 했다. 바다가 보이는 시골 어드메로 들어가 닭이나 키우겠다는 거였다. 그때 새언니가 말했던 것이다.

“이제 곱창이도 클 만큼 컸고 저도 일을 하려고요. 닭 키우는 것보단 그게 낫지 않겠어요?”

수진의 엄마는 잠깐 반색했지만 곧 울적해졌다.

“너…… 대학원 나왔다, 진주야.”

강진주, 수진의 새언니가 까르르 웃었다.

“어머니! 애기 키우다 보면 여자들 다 경력 단절되고 저 같아져요. 그리고 제가 학교에서 조교나 했지 할 줄 아는 것도 별로 없고요. 속상하세요?”

수진의 새언니는 참말 성격도 좋지. 마트 캐셔 자리를 구했다고 말을 하면서도 하나도 쓸쓸하지 않은 표정을 지었단다. 며칠 동안 끙끙 앓던 엄마는 그다음 며칠을 바쁘게 돌아다니더니 곱창이네를 내보낼 집 한 채를 계약하고 라일락에 집수리를 의뢰했다. 그러고는 수진에게 전화를 한 것이었다. 

“엄마는 내가 백수인 줄 아는구나?”

수진이 발끈했다.

“무슨 소리! 내가 이래봬도 소설가 아들을 이제껏 먹여살린 에미야. 예술가의 에미로 이골이 났어. 나는 예술가와 백수 정도는 구분할 줄 아는 사람이야.”

예술가 취급을 해주겠다는 말인지, 성질 뻗치니 그만 닥치라는 말인지 구분할 수는 없었지만 수진은 알겠다고 했다. 그리고 의리상 연정으로 내려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다 소설가 오빠를 둔 죄지. 그렇게 생각하는 편이 나았다. 수진이 거절하면 오빠 부부는 돌봄 선생님을 구해야할 테고, 그 비용을 상쇄하기 위해 새언니를 일을 더하려 들 것이었다. 그러다 지레 지친 새언니가 무능한 오빠를 버리고 이혼을 선포하기라도 한다면! 그건 아아, 너무 끔찍한 일이었다.      

서울집을 정리하고 내려왔을 때 수진은 화들짝 놀랐다. 엄마 말이 다 허풍은 아니었다. 동네는 몰라보게 예뻐져 있었다. 마루를 윤나게 닦고 있던 진주가 걸레를 든 오른팔을 뒤로 쭉 뺀 채 왼팔로만 수진의 목을 껴안았다.

“고마워, 수진아.”

수진은 공연히 뿔난 척을 했다.

“이따 낙지볶음 사줘.”

“물론이지! 대(大)자로 사줄 거야.”

어쩌자고 오빠를 만나서는. 수진이 연정엘 내려온다는 걸 알자마자 진주는 마트 캐셔 외에도 오전 시간 빵집 아르바이트 일까지 구해두었다. 

조그만 방 세 개가 있는 건평 스물두 평 단독주택이었다. 키 작은 대문을 열면 바로 수진이 쓸 방이었고, 창이 컸다. 곱창이가 쓸 방은 뒷담을 향해 있었는데 너무 조그마해서 장난감 방으로나 겨우 쓸 정도였다. 그래도 로봇이 그려진 새파란 벽지가 발린 방이었다. 주방도 작고 거실도 작았다. 하지만 탄탄해 보이는 나무색 새시와 온통 새 가구들. 얹혀사느라 새 가구 한 번 마음 놓고 사지 못했을 오빠 부부가 새삼 안쓰러워 엄마가 들여놓았을 것들이었다. 그래 봐야 별것 아니었다. 저런 조그만 소파는 어디서 골랐을까. 보송보송한 크림색 러그도 깜찍했고 원형 식탁은 너무 작아 넷이 앉으면 아무래도 이마를 박을 것 같았다. 뭐랄까, 미니어처 집 같았다. 수진의 방에는 침대와 책상, 작은 옷장이 있었다. 기성품은 아니었고 일부러 제작을 맡긴 듯했다. 책상이 좀 작은데…… 아무려면 어때. 나중에 새로 사면 되지. 

서울에서 서둘러 출발했는데도 이미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중이었다. 주홍색으로 물들어가는 하늘 때문에 더 그래 보였던 것인지, 금잔화 한 무더기가 핀 마당이 말도 못 하게 예뻤다. 

“왜 꽃을 심다 말았어요?”

화단 절반만 꽃이었다. 

“어, 거기 건드리지 마! 씨앗 뿌려놨어!”

상추, 고추, 토마토, 오이를 심었단다. 독립했다고 이제 자급자족이라도 할 심산인가. 

“아니, 모종을 심던가 하지. 이거 언제 키우려고.”

수진의 타박에 진주가 흐뭇한 얼굴로 텃밭을 바라보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다 키울 거야. 새싹 올라오는 거 다 보고, 꽃 피우는 것도 다 보고. 얼마나 좋아?”

헛된 꿈이었다. 강진주는 새싹을 겨우 여남은 개 보았고 그것들은 봄비를 하루 맞은 다음 어디론가 다 쓸려가 버렸다. 라일락에서 다시 나와 텃밭 자리에 상추와 고추, 오이 모종들을 잔뜩 심어주고 갔다. 텃밭 애프터서비스가 고마워 수리회사 사무실에 바밤바 열 개를 사서 들렀다가 지윤을 만났다. 그러니까, 다시 만났다.     

“말도 안 돼. 그 수진이가 이 수진이라고? 땡볕 놀이터를 새까만 얼굴로 뛰던 그 수진이가 너라고?”

“저야말로 놀라 자빠지겠는데요? 그 새침데기 지윤이 언니가 허리에 드릴을 차고 다니다니요.”

철심회 총무이기도 한 상태 아저씨네 둘째딸 지윤을 수진은 어릴 적 자주 보았다. 서점에서였다. 초등학교 때는 《몽실언니》며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를 사 갔고, 중학생이 되자 《수레바퀴 아래서》와 《데미안》을 사는가 싶더니 곧 하이틴로맨스로 돌아섰다. 지윤이 집어들었던 《라이언의 봄방학》과 《위험한 바캉스》는 그래서수진도 읽었다. 지윤이 발간 얼굴로 계산대에 내밀었던 《판결은 침대에서》는 차마 떨려서 수진이 읽을 수 없었다. 

“어쨌거나 너무 반가워. 곱창이 고모라니.”

“곱창이 고모?”

슬그머니 얼굴을 내민 꼬마가 있었다. 숱 많은 머리카락을 한데 모아 묶은 꼬마는 피아노학원 가방을 들고 있었다.

“어? 너 우리 곱창이 알아?”

수진의 말에 꼬마는 새초롬하게 입을 다문 채 고개만 끄덕였다.

“이야, 우리 곱창이가 벌써 친구를 사귀었구나! 반가워. 나는 곱창이 고모고……”

꼬마가 수진의 말을 잘랐다. 

“친구 아닌데요?”

응? 수진이 무르춤한 표정을 지었다.

“전 2학년인데요? 김반지고요.”

“아아, 누나구나. 어쩐지. 얼굴이 1학년하곤 달라. 역시 2학년. 그런 거였어. 눈빛 초롱초롱한 게 그래. 곱창이하곤 격이 다르다. 키도 엄청 크네!”

그제야 표정이 풀린 반지가 가까이 다가왔다. 수진은 바밤바 한 개를 내밀었다. 

“곱창이 잘 부탁해.”

바밤바를 호로록 핥으며 반지가 대답했다.

“걔는 같이 놀기 좀 힘든 스타일이에요.”

“야, 김반지!”

지윤이 말리려 했지만 수진은 반지 앞에 얼굴을 바짝 가져다 대고 물었다.

“왜? 우리 곱창이가 왜? 무슨 문제 있어? 말해봐, 고모가 다 해결할게.”

“걔가요, 힘 조절을 잘 못 해요. 제가 그래서 원래 남자애들을 좀 안 좋아하긴 하는데요, 저번에 뺑뺑이 한 번 돌려달라 했더니 완전 뺑뺑이를 날려버리려고 하는 거예요. 저 진짜로 날아갈 뻔했어요. 또 저번에는요, 동준이를 그네에 태우는데 아, 동준이는 빨래방 애기인데요, 걔가 아직 세 살이거든요? 근데 세 살 애기가 탄 그네를 곱창이가 밀어준다고 확 힘을 줘가지고 애기가 날아갔어요.”

“야, 날아가긴 뭘 날아가? 뻥 치지 마. 그냥 넘어진 거지.”

지윤이 급하게 끼어들었다.

“어머어머, 우리 곱창이 제정신이 아니구나. 걔 진짜, 어머, 진짜 고모가 혼내줄게. 아니, 어쩌자고 힘 조절을 그렇게 못 해? 반지 완전 화났겠다.”

“그땐 좀 화가 났었는데 곱창이 아줌마가 저랑 동준이한테 초코송이 사주셨어요.”

“초코송이? 그게 초코송이로 해결될 일이야? 곱창이 아줌마 진짜 못 쓰겠네! 앞으로 그런 일 있으면 고모 불러. 곱창이 집 알지? 놀이터에서 소리치면 고모 바로 뛰어나갈게. 고모가 다 해결할게. 아니, 그런 일에 초코송이라니. 말도 안 돼. 고모 지금 좀 충격이야.”

반지는 뭔가 자신이 대단한 동네 민원을 처리하기라도 한 양 으스대며 사무실을 나갔다. 

“원래 이런 스타일?”

지윤이 묻자 수진이 씨익 웃었다.

“베이비시터에 숙련된 스타일이라고나 할까요? 그래서 연정에 스카웃되어서 온 거기도 하고요.”     

아침 8시 40분이면 진주와 곱창이가 집을 나섰다. 수진도 아침에는 바빴다. 프리랜서에게 가장 중요한 건 시간 확보. 진주와 곱창이가 나간 시각, 바로 책상에 앉기 위해서는 그전에 아침 식탁을 깔끔하게 정리하고 아이스커피까지 준비를 마쳐야 했다. 창문을 활짝 열고 키보드 앞에 앉는 시각이 8시 50분. 열린 창으로 불어온 오전의 바람이 뺨을 촉촉하게 만들고 샴푸 후 채 마르지 않은 머리카락들을 손가락으로 모아 한 가닥으로 묶으면 언제나 눈앞에 놀이터 풍경이 들어왔다. 담장이고 대문을 어쩌자고 저렇게 나지막하게 만든 거야. 한눈팔기 딱이잖아. 

그러니까 수진이 사는 집은 놀이터 앞, 박서하 가정의학과 의원 바로 옆집이었다. 그래서 놀이터에 아이들이 없는 오전 시간이라도 사브작사브작 병원을 드나드는 어르신들이 있었다. 그들 중 단 한 분도 말을 걸지 않고 지나치는 이가 없었다. 

“곱창이 고모네?”

“곱창이 고모는 회사 안 댕겨?”

“빨래방에 비빔밥 먹으러 가는데 같이 가지?”

“신랑감은 없나? 내 하나 소개해 줘?”

곱창이와 방을 바꾸어야 하나. 사람들은 왜 예술가의 작업을 이토록 몰라주나. 오빠가 고시원에 들어간 것도 무리는 아니겠구나. 수진은 그런 생각들을 하루에도 수십 번씩 했다. 어찌 되었든 곱창이의 하원 시간, 오후 3시 반까지는 일을 해야 했다. 

수진은 웹소설 작가였다. 오빠 수창이 어려서부터 책벌레 시절을 지나 꽤 자연스럽게 소설가가 된 것에 반해 수진은 그렇지 않았다. 공대 출신 수진은 자동차 회사에 다니다가 어느 날 우연히 작가가 되었다. 잠들기 전 편당 100원씩 결제하고 보던 웹소설의 결말이 하도 어이없어, 차라리 내가 쓰고 말지, 하는 생각으로 무모하게 덤볐던 일이었다. 그동안 웹소설 결제에 못 해도 200만 원은 쏟아부었으니 누군가 자신의 소설에도 그만큼은 돈을 써주겠지, 하는 얼토당토않은 계산에서 시작했다. 3년이 지나 수진은 퇴사했다. 퇴사하고 1년은 집에 비밀로 했다. 머리끄덩이를 잡힐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하지만 마이너스 인세 따위나 받아오는 수창과는 댈 일이 아니었다. 웹소설 수익은 연봉의 딱 절반이었다. 다들 연봉을 넘어서는 날 퇴사하면 될 일이라고 수진을 말렸지만 수진은 생각이 달랐다. 회사를 다니느라 쓸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시간이 많아지면 더 많이 쓸 것이고 그렇게 되면 연봉을 넘어서는 건 순식간이 될 것이라 믿었다. 

당연히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퇴사 전에도 수진은 하루에 6천 자를 썼고 퇴사 후에도 6천 자를 썼다. 퇴사 1주년을 맞아 가족들에게 위풍당당하게 전업작가임을 밝힐 수 있었던 건 마지막 완결 작품의 2차 저작권이 팔렸기 때문이었다. 

수진은 눈에 주먹만 한 눈물을 그렁그렁 달고 가족들에게 그간 웹소설 작가라는 자신의 신분을 감춘 것을 고백했다. 그리고 곧 제 작품이 웹툰과 드라마로 동시 제작에 들어간다고 털어놓았다. 

“뭐라는…… 거야, 얘가?”

 엄마는 말을 더듬기까지 했다. 큰아들에 이어 막내딸까지 전업작가라는 사실에 대단한 충격을 받은 듯했다. 다른 가족들은 아예 소리도 내지 못했다. 

“그러니까…… 너도 이제 돈을 안 벌겠다는 거야?”

나는 단호하게 엄마의 말을 잘랐다.

“오빠랑 나는 달라. 엄마, 2차 저작권이 팔렸다니까. 그리고 나는 이미 웬만한 직장인들 연봉만큼 벌고 있다고. 매달.”

“100원씩 받아서? 100원짜리 모아 살겠다고? 앞으로도 영영?”

엄마는 점점 절망이 깊어진 목소리를 냈고, 진주가 휴대폰을 열었다.

“제목이 뭐야? 불러봐. 아니, 황수진 이름 검색하면 나와?”

“나 필명 써, 언니.”

“필명이 뭐야?”

올 것이 왔다. 사실 더 일찍 가족들에게 고백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한 건 바로 필명 때문이었다. 어쩌자고 그런 어처구니없는 필명을 지었을까, 그때는.

“말해봐, 필명 뭐야?”

“그게…… 가쓰오부시.”

“가쓰 뭐?”

아버지도, 엄마도, 수창도, 진주도 모두 수진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래, 맞아요. 당신들이 아는 그 가쓰오부시. 오코노미야끼에 뿌려먹으면 자글자글 고소한 그거. 양념 맞아. 

나중에 진주가 진지하게 물었다.

“필명이 왜 그래?”

“그냥 우동 먹다 지어서.”

“가쓰오부시 국물이 맛있어서?”

“응…….”

진주가 한숨을 쉬었다.

웹툰은 만들어졌지만 독자들의 악플 세례를 받았고, 드라마는 제작이 미뤄졌다. 하지만 수진은 손해날 일이 없었다. 이렇게 악플 터지는 원작 웹소설이 대체 어떤 건가 싶어 100원씩을 결제하는 사람들이 확 늘어났기 때문이었다. 미스터리 멜로 장르에서 가쓰오부시의 위상은 꽤 괜찮았다. 웹소설이 잘 팔릴수록 수창의 소설은 더욱 안 팔리겠지만 대신 수진이 많이 벌면 되는 거다. 종종 수창과 한데 묶여 백수 취급을 받는 것이 억울하기도 했지만 지내기 나쁜 삶은 아니었다.      

이전 13화 내 가슴 속 개새끼 한 마리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