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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설가 김서령 Jun 26. 2023

내 가슴 속 개새끼 한 마리

서하는 공사 현장을 둘러보았다. 허리에 드릴과 망치를 매단 지윤이 곁을 따랐다. 작은 진료실과 데스크, 대기실과 치료실을 만들고 욕실을 반으로 뚝 잘라 화장실과 탕비실로 만들었다. 단열재 때문에 천장이 낮아 보이는 것은 끝끝내 마땅찮았지만 그건 다 서하 탓이었다. 2층을 올릴 수 있었다면 살림집을 차리기 좋았겠지만 이미 오래전 지어져 내진설계가 되어있지 않았다. 

돌아가려던 지윤의 어깨를 서하가 제 어깨로 무심하게 툭, 쳤다.

“소주 한잔하고 가면 안 돼? 바빠?”

“안 될 리가.”

지윤은 삶은 골뱅이를 파는 동네 초입 선술집으로 서하를 안내했고, 며칠 후에는 라일락 1호점에 데려가 홍합탕 한 냄비를 끓여주었다. 코미디 영화를 함께 보는 동안 지윤의 거실은 따스했지만 서하는 스웨터를 벗지 않았고 담요를 끌어다 다리를 덮었다. 

소주를 두 병쯤 비우며 서하는 문을 닫은 지 10년도 넘은 아버지의 금은방과 뇌출혈로 갑자기 쓰러진 과학 선생 이야기를 했고, 중앙통 뒷골목 세탁소집 딸이던 미영이와 양복점집 딸이던 수정이의 이야기를 했다. 서하는 꽤 많은 것을 기억하는 사람이었다. 지윤이 중학교 3년 내내 전교 2등이었다는 사실만 빼고 말이다. 

“뭐가 그렇게 바빠서 운전을 못 배웠어, 여태?”

지윤이 문득 물었다. 서하는 술기운으로 발개진 얼굴을 두 손으로 비비며 대답했다.

“아니, 진형이…… 그 개새끼가 나더러 운전 배울 필요 없다고, 자기가 다 해줄 거니까 나는 안 해도 된다고 그랬거든. 개새끼, 그러지만 않았어도 내가 진작 운전을 배웠을 텐데. 나중에 헤어지게 됐을 때 이 개새끼가 그제야 급해져 갖고는 운전을 가르쳐주겠다고…… 그러고선 핸들 잡고 바짝 쫀 나한테 온갖 짜증을 다 내고, 막 욕하고. 나쁜 새끼.”

지윤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별 오지랖이 다 있네. 헤어지는 마당에 뭘 지가 운전을 가르쳐?”

“미친놈. 그래서 내가 결국 운전을 못 배웠잖아. 하도 자존심이 상해서.”

그러면서 무릎에 덮은 담요를 풀럭거렸다.

“이 담요도 그래. 이게 다 그 개새끼 때문이야. 나랑 사는 내내 집에 보일러를 얼마나 틀어댔는지, 처음엔 방바닥이 너무 뜨거워서 내가 슬리퍼를 신고 다녔어. 발 델까 봐. 근데 이게 뭐야. 이젠 그게 익숙해져서 나도 걔만큼 추위를 타. 추우면 진짜…… 죽을 거 같애.”

“키도 껑충하던 애가 추위를 그렇게 탔어?”

“말도 마. 걔가 마취과였잖아. 수술실에선 사계절 에어컨을 틀거든. 퇴근해 오면 맨날 퍼렇게 질려서는, 너무 춥다고, 추워서 죽을 것만 같다고…… 매일매일 병원 그만두겠다고 지랄을 했다고. 아우, 생각만 해도 지겨워.”

지윤은 다 식은 국물에서 홍합을 건져내 살을 발랐다. 서하는 한 알씩 한 알씩 잘도 집어먹었다. 진형과 개새끼의 공통점이 뭔지도 모르면서 지윤은 가만히 들어주었다. 그래서 서하는 더 주절거렸다. 

“나만큼 병원이 싫었을까. 나는 진짜로 공부도 별로 안 좋아하고 의사도 별로 하고 싶지 않았는데. 그냥 내 성적이면 의대 가는 거라 해서 간 건데, 막상 가보니 너무너무 재미없고. 가정의학과도 그래서 갔어. 딴 덴 레지던트가 다 4년인데 가정의학과는 3년이라서. 어떻게든 빨리 끝내려고 거길 갔단 말야. 그런 나보다 싫었겠어? 나도 다 참고 다니는데 자기가 뭐라고 맨날 관둔다고 나를 달달 볶아치고.”

지윤은 서하의 빈 잔을 가득 채워주었다.

“야. 누구나 가슴속에 개새끼 한 마리씩은 품고 사는 거야. 괜찮아.”

“복수하고 싶은데, 방법이 없잖아…… 짜증 나게.”

그 말을 끝으로 서하는 푸스스, 바람 빠진 풍선처럼 바닥으로 쓰러졌다.      

지윤은 병원 공사를 완료하기까지 내내 울화를 달래야 했다. 서하는 이후로도 네 번쯤 더 공사를 그만두자고 했고, 지윤이 이를 갈며 하루나 이틀을 겨우 참고 있으면 다시 나타나 새초롬하게 “미안.” 짧게 말하는 일을 반복했다. 그럴 때마다 지윤은 그래, 누구나 가슴 속에 또라이 하나씩은 품고 사는 거야, 되뇌었다. 연정으로 내려온 업보였다. 

적벽돌 외벽을 하얗게 칠하자 골목이 다 환해졌다. 은규는 1년 만에 페인트 도장의 달인이 되었다. 롤러를 들고 칠했다가 붓을 들고 칠했다가, 문득 마음이 변해 색을 바꿔 칠했다. 연두에게 욕을 먹기 십상이었지만 은규의 안목도 제법인 건 이제 모두 인정했다. 가끔은 이상한 짓도 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대문 색이 바뀌어 있더라며 기겁한 보경이네 아줌마는 당장 색깔을 돌려놓으라고 은규에게 버럭버럭 소리쳤다. 그럴 만도 했다. 꽃분홍색 대문이라니. 안목이 제법이라는 말은 취소다.

서하의 병원 작은 마당에는 잔디를 깔고 디딤돌을 놓았다. 간판만 걸면 끝이었다. 서하는 라일락 오피스에서 간호조무사 면접을 보았고 두 명을 채용했다. 동네 어르신들이 오며 가며 들여다보았다.

“신발 벗고 들어가는 병원은 살다 처음 보네.”

“지윤이가 어릴 때부터 똑똑하긴 했잖아. 병원을 만들어도 이리 이쁘게 만드네. 진료 기다리면서 고스톱 쳐도 되겠어.”

부드러운 라인을 가진 책상과 의자를 골라달래서 노르웨이산 가구를 들여놓았는데, 가구값이 리모델링 비용에 왜 포함되지 않냐고 서하가 뜬금없이 뻗댄 것 외에는 별문제 없이 공사가 끝났다. 병원 이름은 스무 개쯤 물망에 올랐다가 다 사라지고 결국 ‘박서하 가정의학과 의원’이 되었다. 놀이터 한가운데 자리한 경로당엘 가려던 할머니들이 내과도 소아과도 산부인과도 아니고 가정의학과가 도대체 뭘 하는 곳이냐며 애먼 지윤을 자꾸 붙잡고 물었다. 

“그냥 감기 걸렸을 때 가셔도 되고요, 허리 아플 때 가셔도 돼요.”

“당뇨약도 받을 수 있어?”

“그럼요. 아무 때나 가세요.”

아담한 병원을 바라보며 지윤이 흐뭇하게 미소 짓고 있을 때 연두가 병원에서 나왔다. 필요한 곳마다 못을 박고 나오는 길인지 드릴 끝을 한 번 매만진 뒤 다시 허리에 차고 있었다. 연정에 내려온 뒤로 지윤과 연두는 늘 허리에 드릴과 망치를 차고 다녔다. 주영은 에이프런 주머니에 꽃삽을 크기별로 꽂고 다녔고, 은규는 주머니에 페인트 붓을 크기별로 꽂았다.  

“야, 왕연두. 우리가 만들었지만 참 잘 만들었다, 그치? 우리 여기 안 왔으면 어쩔 뻔했어?”

지윤의 말을 듣는 연두의 얼굴이 찌뿌둥했다.

“들어가 보고 다시 얘기해.”

지윤이 울상을 했다.

“왜애? 서하 또 이상해졌어?”

고개를 끄덕이며 연두는 몸을 돌려 오피스 쪽으로 향했다. 그러다 문득 지윤에게 물었다.

“동창 중에 약사는 없어?”

“왜? 이제 약국 만들어 보려고?”

“응.”

지윤이 픽 웃었다.

“지겹지도 않아?”

“난 이 동네의 젠트리피케이션을 이룩하고야 말 거라니까. 약사 하나만 잡아 와. 요 골목에다 이쁘게 개국해줄게.”

웃기는 소리라고 생각했으면서도 지윤은 진료실 문을 열 때까지 동창 중에 약사가 있긴 했나, 곰곰 생각했다. 

서하는 정말 가관이었다. 책상 가득 늘어놓은 건 진형의 사진이었다. 서하는 펑펑 울고 있었다.

“이건 또 무슨 종류의 주접이야? 너 중2병이니? 이 사진들은 왜? 돌았어?”

“제일 예쁜 사진이 뭔지 모르겠어. 고를 수가 없어. 딱 한 장만 책상에 둘 건데, 그게 뭔지 모르겠어.”

환장하겠네. 지윤은 숨을 골랐다. 

그래, 내 가슴속 또라이는 박서하야. 괜찮아, 괜찮아. 지윤은 스스로를 도닥였다.      

서하가 보기에 연정시의 바다는 조금 재미없는 곳이었다. 

조개구이, 삼겹살, 연탄구이, 곱창 등을 파는 술집들이 어마어마하게 커다란 간판을 달고 선 해변이 있었고, 왼쪽으로 한참을 걸으면 모텔촌이 있었으며, 오른쪽으로 한참을 걸으면 가격만 더럽게 비싼 횟집들이 괜스레 우아한 척, 띄엄띄엄 있었다. 바다 같은 바다를 보려면 적어도 한 시간을 운전해 나가야 했다. 서하나 지윤이나 그럴 만큼 바지런한 사람이 아니어서 둘은 아무 데나 들어갔다. 

어쩌다 보니 가장 어처구니없는 식당이었다. 조개구이와 삼겹살, 연탄구이와 곱창을 다 파는 곳이었다. 일관성 없는 안주들이 적힌 메뉴판을 들여다보던 서하가 알바에게 물었다.

“감자튀김은 없나요?”

놀랍게도 있었다. 

“돈까스는요?”

그것도 있어서, 서하와 지윤은 감자튀김과 돈까스를 앞에 두고 소주를 마셨다. 조로록, 차가운 소주가 서하의 가슴 한쪽으로 흘러들었다. 

“진형이가 변하지 않았다고, 내가 여태 진형이한테 반해 있다고, 이별이 안 오는 건 아니잖아. 나는 그걸 받아들이기가 제일 힘들었던 것 같아.”

서하는 정말 그렇게 생각했다. 

세상에는 두 가지 이별이 있었다. 받아들이기 어려우면 안 하면 되는 이별이 있고, 받아들이기 어렵든 쉽든 결국 다가오고야 마는 이별. 우스운 분류법이기는 하지만 서하와 진형의 이별은 후자였다.

진형의 항암치료는 여덟 번 만에 그만두었다. 의미가 없었다. 두 사람은 조금 더 편한 방식으로 헤어지기로 했다. 

“운전을 배우자. 그걸 안 하면 내가 너랑 못 헤어질 것 같아.”

“지랄하지 마.”

진형의 말을 서하는 단칼에 잘랐다. 자신을 떠나려는 진형에 대한 배신감이 채 가라앉지 않은 무렵이었다. 뭘 배우고 자시고 할 여력이 없었다. 서하는 허둥대고 있었다. 다섯 번째 애인이라고는 해도 열네 살에 만나, 앞선 네 애인과 헤어질 때마다 찾아가 술주정을 하고 떼를 썼던, 가장 가까운 친구였다. 이 이별을 도무지 받아들일 방법이 없었다.

서하와 진형은 병원에 휴직계를 냈고, 서하는 혼자 울 수 있는 장소가 없어 처음에는 불편했다. 하지만 편하게 이별하기로 합의를 본 이상 감추는 것은 더 의미가 없었다. 그래서 울고 싶을 때 아무 때나 울었다. 진형도 달래고 싶을 땐 달래주었고 짜증을 내고 싶을 땐 짜증을 냈다. 그래서 진형에게 운전도 배우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다. 욕을 먹는 김에 울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진형이가 그랬어. 연정으로 가자고. 연정에 작은 병원을 내고 나를 거기다 두고 싶다고. 엄마도 있고 진형이 엄마도 있으니까 내가 덜 슬플 거라 생각했나 봐. 개새끼.”

서하의 말을 듣던 지윤이 가만히 물었다.

“왜 개새끼야?”

“미우니까……”

“그래. 미우면 개새끼지.”

지윤이 끄덕였다.

“진형이가 죽은 지 2년이 다 되어 가. 나는…… 지윤아, 나는 사실 많이 잊었어. 그 애가 안쓰럽고 가엾지만 나는 처음처럼 슬프진 않아.”

“그런데?”

“우리 엄만 여전히 슬퍼. 나를 보니까 슬픈 거야. 아마 그건 시간이 지나도 덜해지지 않을 거야. 진형이 엄마도 여태 슬퍼. 너무 많이 슬퍼. 나는 위로도 못 하겠어.”

대기 환자들을 위해 커피와 차, 비스킷은 질이 좋은 것으로 떨어지지 않게 준비해 두고, 한 번 온 환자의 이름은 절대 잊지 않는 의사가 될 거라고 서하는 진작 마음먹었다. 진료실 모니터 옆에 진형의 사진을 두고, 하루에도 여러 번 쳐다볼 생각이었다. 어쩌면 몇 년 지나지 않아 새 사랑을 시작할지 모르고, 그렇게 된다면 정중하게 진형에게 인사를 한 뒤 사진을 치울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작고 다정한 병원에서 감기약을 처방하고 정갈하게 진료의뢰서를 써주고 영양제 주사를 놓아줄 거라 생각했다. 

어쩌면 더는 아무 일 없이 늙어갈지 모르지만 연정엔 아직 그리운 친구들이 몇 남아있을 것이고, 가끔 점심 약속을 하거나 저녁에 맥주를 한잔할 수도 있으니 아주 외롭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들을 했다. 

“내가 괜찮아지는 게 두 엄마에게 미안할 때가 있어. 아무렇지도 않게 밤에 떡볶이를 먹고 치킨을 먹는 게, 그들은 아직 상처받고 있는데 나만 홀랑 도망가는 것 같아서 마음이 무거울 때가 있어. 버릇없는 아이가 된 것 같기도 하고, 내가 모두를 배신하는 것 같기도 하고.”

“웃기고 있네.”

지윤이 타박했다.

“나는 그래. 그래서 매일매일 진형이랑 다시 이별하는 기분이야. 여기가 싫기도 하고.”

“싫어? 많이?”

지윤이 물었다.

“좋기도 하고.”

서하가 웃었다.

돈까스는 질겼고 감자튀김은 눅눅했다. 지윤과 서하는 기본안주로 나온 완두콩만 씹었다. 찝찔했다.

“개새끼. 나에 대해 그렇게 아는 척을 하더니, 내가 이럴 줄도 모르고 여기로 가래?”

“그러네. 진형이가 잘못했네.”

“어떻게 복수하지? 찐하게 복수해야 하는데?”

“글쎄다. 머리를 좀 굴려봐야겠는데?”

킬킬킬, 서하가 웃었다. 

“지윤아.”

“응?”

둘 외에 손님은 하나도 없었다. 어쩌자고 식당은 이렇게 휑뎅하게 넓은지. 

서하가 입을 열었다.

“내 서사는 길다?”

“응?”

“지금 니가 듣는 내 얘기는 짧지만, 마음만 먹는다면 세 줄로도 요약할 수 있겠지만, 사실 내가 가진 내 인생의 서사는 길고도 길다?”

“그렇겠지.”

짧게 살다 갔지만 진형의 서사도 길 테다. 사람들은 타인의 서사에 관해 생각해본 적 없겠지만.

“그 서사는 너무 길고 길어서 누구에게도 몽땅 들려줄 수는 없겠지. 나만 알겠지. 그런데 지윤아. 문제가 뭐냐면…… 나도 자꾸 잊어. 진형이 예쁜 사진들로만 골라왔는데도 그 얼굴이 벌써 낯설고, 죽기 전 까맣게 야위었던 얼굴만 생각나. 한 사람의 서사란 게 별거 아니구나 싶기도 하고. 좀 짜증 나.”

서하의 말에 지윤은 오래 침묵했다. 서하를 기다려주는 것 같았다. 한참이 지난 뒤 지윤이 물었다.

“친구 중에 약사 없어?”

서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약사?”

“응. 네 병원 옆에다 약국 만들어 주게. 우리가 또 집 한 채 죽도록 두들겨 부숴서 엄청 예쁜 약국 만들어 주게.”

“그거 괜찮네.”

“그렇지? 괜찮지?”

서하는 알아챘다. 지윤이 자신을 위로하고 있다는 것을.

사실 살아보면 그렇다. 하루 치의 슬픔만 잘 제치면 된다. 그다음 날엔 그다음 날의 슬픔을 또 제치면 되고. 그러다 보면 어느새 얼굴이 말개질걸. 약사 친구 한 명을 영입하자는 것으로 하루 치는 잘 충당했다. 서하는 휴대폰 속 연락처를 쭉 훑으며 섭외 대상을 찾아보았다. 돈까스와 감자튀김은 맛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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