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하가 진형과 결혼하겠다는 소식을 전했을 때 놀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서하는 도리어 그 사실에 놀라자빠질 뻔했다.
“놀랍지 않아?”
서하가 물었을 때,
“그럼? 안 하려고 했어?”
친구들은 되물었다.
서하의 엄마도 마찬가지였다.
“나, 봄 되면 결혼하려고.”
서하는 뭐랄까, 약간 쑥스럽고 무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서하의 엄마는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왜? 진형이가 하재?”
서하는 진형과 연애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엄마에게 꺼낸 적 없었다. 심지어 결혼 날을 받으러 간 대나무집 진미네 할머니는 서하의 엄마가 불러주는 예비 신랑의 생시를 받아적더니 “진형이는 새벽 3시가 아니라 오후 3시일 텐데?” 그랬다.
엄마는 애경미용실에 전화를 걸었다.
“자기 아들 새벽 3시야, 오후 3시야?”
“오후 3신데. 그런데 형님, 그건 왜요? 애들 결혼한대요?”
“거봐, 오후 3시지? 내가 사주 봐준 적 있어서 기억이 나.”
점집 할머니는 아직 또랑또랑한 자신의 기억력을 으스댔다. 남들은 다 아는 연애를 둘만 몰래 하느라 공연히 숨어다녔던 서하와 진형만 뻘줌했다.
서하는 김이 샜다. 진형은 서하의 다섯 번째 애인에 불과했고, 열네 살 때 조금 쳐다보다 친해진 걸 가지고 서른 중반까지 그 마음을 가져갈 만큼 순정한 여자도 아닌데, 사람들이 자신을 그토록 모른다는 사실에 분개했다.
애경미용실 사장인 진형의 엄마는 둘을 앉혀놓고 까르르 웃었다.
“별꼴이다, 진짜. 쪼그만 것들이 결혼을 다 한대고.”
이제 아줌마 대신 어머니라 불러야 한다는 것이 서하는 민망했다.
“우리가 벌써 서른셋이나 먹었다고. 쪼그맣긴.”
진형이 말했지만 진형의 엄마는 그들의 나이 따위 믿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대신 이렇게 물었다.
“니들, 자보긴 했니?”
물론입니다! 라고 씩씩하게 대답할 순 없어서 서하는 헤죽헤죽 웃기만 했다.
진형의 집, 애경미용실 안채에서 불고기를 잔뜩 얻어먹고 진형과 서하는 연정 시내 중앙통 거리를 산책했다. 중앙통을 함께 다람쥐처럼 뛰어다니던 친구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떠올리며 청첩장을 보낼지 말지 고민했지만 대부분은 연락이 끊긴 지 오래였다. 청첩장을 보낼 일은 없을 것이었다.
서하가 진형에게 물었다.
“그때…… 옛날에 말야, 우리 열네 살 때.”
“응.”
“그때 왜 나한테 반했어?”
진형의 눈이 동그래졌다.
“뭐라고?”
“그때 왜 반했냐고.”
“안 반했는데?”
서하는 뻔뻔하게도 다시 물었다.
“다 알고 있으니까 괜찮아. 말해봐.”
진형은 제 팔뚝에 감긴 서하의 팔을 풀어냈다.
“저리 가. 이 또라이.”
“결혼하면 이젠 비밀 같은 거 없어야 해. 그러니까 말해 봐.”
진형이 성큼성큼 먼저 걸어갔다.
“혼자 나이 들어가는 거 불쌍해서 결혼이나 해줄까 했더니 완전 또라이였어. 이거 물러. 나 안 해.”
서하는 진형을 따라가 도로 팔짱을 꼈다.
“결혼한다 다 말했으니까 우리 오늘 같이 자도 되나?”
“그렇겠지.”
“그럼 니네 집에서 자? 우리 집에서 자?”
“너 자고 싶은 데서.”
서하는 저도 모르게 흐흐흐, 중년 아저씨 같은 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너에게 반했든 네가 나에게 반했든 혹은 아무도 반한 적 없다 해도 나쁠 것 없는 겨울밤이었다. 게다가 남쪽 도시 연정의 겨울은 그다지 춥지도 않았다. 두 사람은 더 걸었다.
그렇게 걷다 보니 어느새 5년이 흘러있었다.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서하는 얼마 전 연정으로 돌아왔다. 연정은 모두 그대로인데 저만 변한 기분으로 한동안 어리바리했다. 그리고 지금 작고 폭신한 빨간색 의자에 앉아있다. 이름도 엄청나게 촌스러운 라일락 주택수리 회사 오피스였다.
“이 동네, 볼수록 마음에 드는데?”
서하의 말에 지윤이 살짝 웃었다.
“이 집도 마음에 들고.”
서하는 테이블의 찻잔을 들었다. 뽀얀 손가락 마디마디 따끈한 자몽차의 온기가 스며들었다. 스물두 평 단독주택 오피스는 더할 나위 없이 예쁘다. 평범하지 않다. 알록달록 여러 색을 섞어 유쾌하고 발랄한데 하나도 촌스럽지 않다. 촌스러운 건 회사 이름뿐이다.
“우리 병원도 요렇게만 예쁘게 해줘.”
“그러려면 돈 많이 드는데?”
지윤이 대답하자 서하가 눈을 가늘게 떴다.
“치사하게 막 추가 비용 청구하고 그러는 거야?”
“고객님이 추가를 요구하면 나는 추가 비용을 요구해야지.”
서하가 빙긋이 웃었다.
“잘 지냈어?”
지윤도 따라 웃었다.
“대충은. 너도 잘 지냈어?”
“응. 나도 대충은.”
연정주택단지 초입에 쭉 늘어선 상가 건물 한 층을 세내어 가정의학과 의원을 열겠다고 연두를 찾아왔던 서하는 상가 계약을 포기했다. 동네를 둘러보고서야 단지 내 주택을 한 채 사 병원으로 꾸미는 것이 낫겠다 판단한 것이었다. 연두가 부추긴 게 크긴 했지만 그건 지윤이 봐도 잘한 결정이었다.
퇴직한 노부부가 대부분인 이 동네에서 상가 건물은 사실 있으나 마나 한 것이었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상가 건물의 2층, 3층들은 매일 무릎이 쑤시는 노부부들이 쳐다보지도 않았다. 중형 마트가 몇 번 오픈했지만 얼마 안 가 문을 닫았다. 주택단지 사람들은 차를 타고 얼마 멀지도 않은 이마트에만 갔다. 똑똑하고 야무졌던 서하가 애초 그런 건물의 2층을 골랐다는 게 뜻밖일 정도였다.
“먼 동네 가정의학과를 굳이 차 타고 찾아올 리도 없고, 동네 병원 하고 싶은 거라면 아예 단지 안으로 들어오시지 그래요? 여기 주택들이 다 아담해서 통째 병원으로 쓸 만한 집 많은데. 전세도 안 비싸고, 매매도 그래요. 동네 어르신들이 오며 가며 사랑방처럼 드나들 병원 하나 생기면 엄청나게 좋아하실 텐데.”
아트앤북 서점과 밤달카페, 프렌드빵집 트리오가 인기를 끌면서 연두는 자신감이 넘쳤다. 그러잖아도 생기 있는 얼굴이 더 빛나 보였다.
처음 연두가 서하와의 계약서를 들고 왔을 때 지윤은 이 ‘박서하’가 그 ‘박서하’라는 것을 알아챘다. 뭘 이런 식으로 다시 만나나. 미간에 찌르르 주름이 잡혔다.
“왜 그래? 견적이 마음에 안 들어?”
“그럴 리가. 이제껏 우리 일 중에 제일 큰 건데.”
“그런데 왜 그런 얼굴을 하냐? 사람 무섭게?”
“별로 반갑지 않은 인연이라 그래.”
“아는 사람이야? 이름만 보고 알아?”
알겠다. 박서하라는 이름, 가정의학과 의원, 연정시. 게다가 계약서에 쓴 주민등록번호를 보라지. 지윤과 동갑인걸.
“나랑…… 필생의 라이벌이었지.”
지윤이 비장한 얼굴로 말했다.
연두의 얼굴이 뜨악해졌다.
“무슨…… 라이벌?”
지윤이 말간 얼굴로 쳐다보자 연두가 다시 물었다.
“아니, 그러니까 어느 분야에서 라이벌이었냐고?”
“애들한테 공부 말고 무슨 분야가 있겠어?”
“말이 돼? 이쪽은 의사인데?”
지윤은 아까보다 더 미간을 찌푸렸다.
“나 어릴 때 공부 좀 했거든?”
연두는 푸흡, 웃음을 참았다.
정말인데. 하긴 연두도 믿기 어렵겠지. 딱히 후진 대학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자랑할 만한 대학도 아닌 주제에, 이제 개원을 하겠다고 나선 의사와 한 시절 라이벌이었다고 회상하는 일 자체가 우습기도 하겠지. 무슨 인생의 알리바이가 이렇게 어설퍼?
지윤은 냉장고를 열어 맥주를 한 캔 꺼냈다. 연두는 큰 건을 잡았다고 신이 나 오징어를 구웠고, 라일락 오피스는 금세 비린내로 가득 찼다. ‘박서하 가정의학과 의원’의 개원 시점은 4개월 후였다. 바짝 달려야 했다.
연두는 밤새 구상한 도면을 들고 서하와 지윤 사이에 앉았다.
“도면 이쁘게 잘 빠졌죠? 이 집이 원래 스물두 평이었지만 마당을 좁히고 사랑채를 덧지었던 집이라 더 넓어요. 건평이 서른 평쯤. 오히려 잘된 거죠. 담은 다 허물 거예요. 마당은 꽃밭으로 화사하게 가드닝 해드릴 거고요. 저희 팀엔 플로리스트도 있거든요. 어차피 살림집을 여기다 하진 않으실 거죠?”
서하가 끄덕였다.
“네. 부모님 집에서 지낼 거라서요.”
부모님 집…… 지윤은 진형의 안부를 묻고 싶었지만 참았다. 연정여중 전교 1등 박서하와 연정중 전교 1등 김진형의 결혼은, 졸업 이후 동창들 소식이라고는 모르고 지내던 지윤에게도 전해질 만큼 왁자한 일이었다.
연정여중 시절, 지윤이 서하를 이겨본 건 딱 한 번이었다. 입학 전 반 배정을 위한 배치고사였다. 반 배정은 몹시도 노골적이어서 전교 1등은 1학년 1반, 2등은 2반, 3등은 3반인 식이었다. 10반까지 그렇게 돈 후 11등은 10반, 12등은 9반 식으로 배정했다. 배치고사에서 전교 1등을 차지했던 지윤은 자랑스럽게 1학년 1반이 되었고 무얼 잘못 먹은 건지 시험을 호되게 망친 서하는 1학년 7반이 되었다. 전교 7등이었겠지만 한 바퀴 돌아 14등이었을 거라는 소문이 암암리에 돌기도 했다.
영광은 그때뿐이었다. 3년 내내 서하는 전교 1등을 단 한 번도 놓치지 않았다. 인정머리 없는 박서하. 정말 단 한 번도 져주지 않았다. 지윤은 단 한 번 시험도 빼놓지 않고 모조리 전교 2등이었다. 3등도 해본 적 없었다.
“쟤가 학교에서 전교 1, 2등 다투는 애잖아.”
그런 말이 지윤은 세상에서 제일 부러웠다. 이건 뭐, 다툰 적이 없었다. 만년 2등. 하다못해 백일장엘 나가도 서하를 이겨본 적 없고 그림대회에서도 이겨보지 못했다. 맙소사. 배지윤은 미대엘 진학했는데. 전교 2등이라는 기염을 토하고서도 연정여중에서 배지윤의 존재감은 지극히 미미했다.
서로 다른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나서야 지윤은 좀 살 것 같았다. 인생의 거대한 짐 같은 걸 저 멀리 치운 기분이었다. 그렇다고 가뿐한 마음으로 공부를 잘했다는 건 아니고 1등 따위 언감생심 꿈도 못 꿀, 그저 그런 고등학생으로 대충 살게 되었지만 말이다.
주택을 병원으로 바꾸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지윤은 입을 쩍 벌렸다. 지붕을 새로 얹고 바닥도 다 깨부수었는데 서하가 말을 바꾸었기 때문이었다.
“미안해. 공사는 여기까지만. 모든 건 당분간 보류야.”
밤새 술에 전 듯한 얼굴이었다. 정수리에 동그랗게 올려붙인 머리에선 쾨쾨한 냄새가 났고 뺨에는 뾰루지 서너 개가 돋아 있었다.
“미친 거 아냐? 집을 이렇게 두들겨 부숴놓고 그만하라고?”
“내가 지금…… 이런 걸 할 기분이 아냐.”
지윤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네 기분 따위는 나한테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 나는 계약서대로 움직여야 하는 사람이라고!”
피곤하다는 듯 서하는 시멘트 포대 위에 주저앉았다. 날은 따셨고 봄볕에 먼지가 한 톨 한 톨 반짝이며 날아다녔다.
“지금까지 들어간 돈 다 청구해. 안 떼어먹어.”
“그거야 당연하지. 그럼 돈도 안 줄 생각이었어?”
지윤은 기가 막혔다.
그런데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고.
“내가 이 동네 리모델링 하는 데 얼마나 공을 들이고 있는지 알아? 네가 지금 여기서 그만두면 이 골목에 흉가 하나가 들어서는 거야. 이 동네 집값이 다 똥값 되는 거라고.”
설핏 미안한 표정을 보이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서하는 마음을 돌릴 기세가 아니었다.
“그냥…… 나는 좀 쉴래. 네가 이해해 줘.”
“너는 쉬어! 언제 너더러 시멘트 포대를 나르라고 했어? 타일을 붙이라고 했어? 너 정말 대책 없다?”
속사포처럼 쏘아붙이고 돌아와서는 소주 한 병을 까지 않을 수가 없었다. 사정을 전해 들은 연두가 오만상 찌푸린 얼굴로 중얼거렸다.
“너한테 또라이들 달라붙는, 뭐 이상한 기운 같은 거 있는 거 아냐?”
“살다 살다 별 미친년을 다 본다니까. 하여간 전교 1등 하는 애치고 제정신인 애가 없어.”
지윤은 탄식했다.
서하의 병원 자리는 놀이터를 낀 모퉁이 집이었다. 공사를 하다 만 병원 자리는 동네 풍경을 망치는 악재가 될 게 빤했다. 서하 걔가 미치지 않고서야!
하지만 아주 미친 건 아닌 모양이었다. 서하는 나흘 후 잔뜩 주눅 든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왔다. 전화를 끊자마자 병원 자리로 뛰어갔더니 서하가 시멘트 포대 위에 주저앉아 있었다. 그새 해는 더 부셨고 나흘 동안 잠을 푹 잔 모양인지 얼굴빛이 좀 나아져 있었다.
“미안.”
사과는 짧고도 짧았다.
지윤은 딱 4초간 눈을 흘긴 후 모든 것을 용서했다. 주문 취소를 넣었던 단열재가 다시 실려 왔고 10cm 두께 핑크색 단열재를 다 붙인 집은 처음보다 훨씬 좁아 보였다. 굳이 천장까지 단열재를 붙일 것 없다고 조언했지만 서하는 말을 듣지 않았다.
“난 추운 게 제일 싫어.”
“난 노는 게 제일 좋은데.”
지윤이 받아쳤을 때 연두는 억지로라도 웃어주려 했지만 서하가 코끝을 찡그리며 말했다.
“넌 어릴 때부터 좀 맹하더라니.”
지윤이 발끈했다.
“맹한 전교 2등 본 적 있어?”
“전교 2등? 누가?”
모르는 척 잡아떼는 줄 알았다. 지윤이 흡흡 숨을 몰아쉰 건, 정말 몰랐다는 서하의 생뚱한 얼굴이 진심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연두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존재감 완전 꽝이었군, 배지윤.”
반박할 수가 없었다.
공사를 그만두니 마니 한 이유에 관해서는 묻지 않았다. 그냥 덮어놓았을 때 더 보기 좋은 일들이 있기 마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