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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설가 김서령 Jun 26. 2023

아트앤북 독립서점

커플은 라일락 1호점의 마당을 기웃거리고 있었다. 스툴에 올라서서 빨래방에서 빨아온 커튼을 도로 달던 지윤이 현관문을 열었다. 

“어떻게 오셨어요?”

동그랗고 나부대대한 얼굴의 남자가 조금 쑥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아, 어떻게 왔다기보단 그냥 예뻐서요. 집이 너무 예뻐서요.”

빨간 테 안경을 쓴 여자도 말을 보탰다.

“이 앞집도 그렇고 정말 예뻐서, 어떻게 하면 이렇게 예쁘게 지을 수 있나 생각하던 중이었어요.”

기껏해야 스물일고여덟? 지윤은 커플을 마당으로 안내했다. 

“덥죠? 차가운 커피 한 잔 드릴까요? 저도 마실 참이었는데.”

커플이 호들갑을 떨며 기뻐했다. 8월의 연정은 그야말로 찜통이었다. 텀블러 세 개를 꺼내고 얼음과 찬물을 담았다. 에스프레소를 한 잔씩 부어 마당으로 나갔다. 마당 한쪽에 둔 파라솔 아래 의자에 앉아있던 두 사람이 발딱 일어나 쟁반을 받았다. 

“저 아래쪽 골목도 가보셨어요? 거기도 여기처럼 수리한 집 많은데.”

연정주택단지는 점점 예뻐지는 중이었다. 집마다 담을 없애거나 낮추어, 오래된 죽은 나무들을 뽑아내고 제라늄과 메리골드를 심었다. 주영은 라일락 오피스와 1호점의 마당에서 죽도록 꽃을 키워 틈날 때마다 수리를 마친 집들을 돌며 새 꽃을 옮겨 심었고, 낮은 담장을 두른 줄장미 가지를 단정하게 다듬었다. 괜한 노동이 아니었다. 애프터서비스 삼아 새 꽃을 심어주는 대신 묵은지도, 고추 장아찌도, 누룽지도 얻어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언제나 그건 새 계약으로 돌아왔다. 라일락 주택수리 회사는 연정에 내려온 후 주말에 쉬어본 적이 없을 지경이었다.

연정주택단지의 가장 중심이기도 한 놀이터 앞 6미터 도로를 낀 골목은 양쪽으로 모두 열여섯 집이었는데, 그중 네 집이나 라일락이 수리했고 주영은 그 골목에 가장 애정을 가지고 공을 들였다. 그 골목 자체가 라일락의 모델하우스인 격이었다. 경자 씨 집도 바로 거기여서 그곳을 지나는 동네 어르신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경자 씨 집에 들러 곳곳을 살피며 수리 견적을 뽑았다. 

“그 골목 보고 왔어요. 작은 집들인데 참 예뻐요. 서점 하면 좋을 것 같아 둘러보는 중이거든요.”

순진무구한 얼굴이었다. 

옛날 연정주택단지에는 잘나가는 서점들이 몇 곳 있었다. 이제 이 동네에 책을 사는 사람은 없고 서점들은 모조리 폐업했다. 책 팔아 얼마 번다고. 서점이 뭐 하는 곳인지도 모르는 것처럼 해맑은 얼굴의 커플을 보며 지윤은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내가 너희들을 곧 잡아먹겠어. 기다려.

“서점! 여기 서점 생기면 너무 좋겠다. 정말 환영이에요. 이 동네가 은근히 분위기 있거든요. 꼬불꼬불한 골목 하나 없이 단정한 동네예요. 이 동네 집들 한 채 한 채 리모델링 시작하면서 젊은 사람들도 비싼 아파트 전세 가느니 작은 마당이라도 있는 여기가 좋다고 많이들 이사 오세요.”

살짝 부풀리긴 했지만 옴팡진 거짓말은 아니었다. 어차피 비어있던 집, 그리 크지 않은 비용을 들여 집을 고치자 기존에 부동산에 내놓았던 전세금에 집수리 비용을 다 얹은 액수로 세를 놓을 수 있었다. 그래 봐야 옆 동네 아파트 전세금의 3분의 1도 되지 않아서 아이가 하나둘쯤 있는 젊은 부부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그래서 라일락 주택수리 회사 리모델링 의뢰는 끊이지 않았다.  

라일락은 미친 듯 일했다.

“젠트리피케이션이 나쁜 거라고 대체 누가 그래? 나는 연정주택단지 젠트리피케이션의 주역이 되고 말 거야!”

연두는 먼지 구덩이 속에서 중얼거리곤 했다.

“젠트리피케이션 뜻은 알고 그런 소릴 하는 거야?”

그럴 때면 주영이 빈정거렸다.

“집값이 공연히 올라서 원주민들이 쫓겨나는 게 젠트리피케이션인데, 그게 여기랑 어울리는 소리니?”

“시끄럽고. 아무튼 나는 이 동네 집값을 올릴 거야. 왕창 올릴 거야!”

연두의 으름장에 주영이 끄덕였다.

“그래, 뭐가 되든 되게 만들자. 이 동네 집값 높여주면 우린 밥 안 하고도 맨날 아줌마들한테 밥 얻어먹으면서 살 수 있어.”

실제로 일을 하다 보면 아무 집에서나 그들에게 소리쳤다.

“밥 먹고 해!”

그러면 고봉밥에 된장찌개와 동치미, 누룽지까지 얻어먹고 부른 배를 두들기며 다시 일을 했다.      

커플은 3주 뒤 다시 지윤을 찾아왔다. 요양병원행을 앞둔 호호 할머니의 집을 전세로 얻을까 하다가 아예 사버렸다고 했다. 복개도로 쪽이면 눈길을 끌기 더 좋았겠지만 마땅한 매물이 없어 놀이터를 면한 집으로 계약을 했단다. 라일락은 근린생활시설로 용도 변경을 하자마자 공사에 들어갔다. 

샌드베이지색으로 외관 도장을 하느라 공사 기간이 길어지긴 했지만 건평 스물두 평 단독주택은 아기자기한 독립서점으로 거듭났다. 아무것도 할 줄 몰라 보이던 젊은 커플은 의외의 수완가들이었다. 커플의 인스타그램을 보며 라일락은 몇 번이나 감탄했다. 

“와! 얘들 진짜 끝내줘. 이 서점이 이렇게까지 예쁘진 않은데. 무슨 사진을 이렇게 잘 찍지?”

주말이 되면 연정시의 젊은이들은 독립서점을 찾아왔고 작은 마당에 딱 두 개 놓인 테이블에 앉아 커피를 마시려고 길게 줄을 섰다. 그 광경이 하도 신기해 동네 어르신들이 또 몰려와 구경하는 바람에 놀이터 앞은 내내 복작거렸다. 옆 도시에서 굳이 서점을 찾아오는 일도 있었다. 물론 손님들은 사진만 찍고 커피만 마셔서 서점 주인 커플이 책을 팔아 돈을 벌 일은 없었으나 유명세는 톡톡히 치르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 유명세의 실질적 수혜자는 라일락 주택수리 회사였다. 

“우리 집도 저 서점처럼 만들어줘. 저 집처럼, 응?”

동네 어르신들은 볼 때마다 지윤을 졸랐다. 영림서점과 대동서점, 황제서적이 사라진 연정주택단지에 새롭게 나타난 아트앤북 독립서점이었다. 

“제가 다 만들어드릴 테니까요, 세입자만 찾아오세요. 수리 비용은 아줌마가 감당하시고 대신 전세금 높이면 되잖아요. 손해 보는 거 하나 없어요. 당장 부동산 가세요.”

복개도로 옆 하나뿐인 부동산은 라일락 때문에 바빠졌다. 주영은 오며 가며 부동산엘 들렀다. 

“꼭 그러시라는 건 아니지만 되도록 놀이터 쪽으로 매물 좀 모아주세요. 일단 놀이터 쪽을 우리가 아주 갈아 엎어드릴게요. 그다음 사방으로 쭉쭉 나가면 되지. 안 그래요, 사장님?”

아트앤북 서점 오른쪽 집은 새시 전문점이었다. 물론 간판만 그랬지 폐업한 지 오래였다. 한 시절 새시 공사로 돈을 번 집주인은 아파트로 이사를 가고 싶었지만 집이 안 팔려 그럴 수 없었다. 하지만 아트앤북 서점이 호황을 누리자 상황이 달라졌다. 작은 카페를 열겠다는 사람, 빵집을 내겠다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새시집 주인이 집 팔기에 성공하자 서점 왼쪽 옆집도 라일락 오피스에 찾아왔다. 

“카페로 바꿔줘. 우리 아들 줄 거야. 나중에 팔더라도. 서점 보니까 장사 잘되던데?”

얼결에 라일락은 두 곳의 공사를 동시에 진행하게 되었다. 연두는 아무렇지 않아 했지만 나머지 셋은 가슴이 쿵닥거렸다.

“쫄려. 쫄려서 잠이 안 와. 잘할 수 있을까? 동시에?”

연두가 큰소리를 쳤다.

“여보게들. 내가 왕연두요. 고작 그런 거로 쫄다니, 라일락답지 않소!”

연정의 가을과 겨울이 정신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경자 씨가 해먹인 밥으로 반지의 종아리가 더욱 튼실해지고 있었지만 지윤은 그것도 알아채지 못하고 밤이면 침대에 쓰러졌다. 은규는 제가 살 집을 여태 고칠 틈이 없어 결국 주영과 연두가 사는 집으로 들어갔다. 바빠서 연애를 할 시간도 없었기에 순순히 들어간 것이기도 했다. 

라일락 주택수리 회사는 새집이 완성될 때마다 머틀 나무로 만든 작은 문패를 달아주었다. 라일락 오피스를 빼고 1호점부터 8호점이 생겨났다. 누가 뭐래도 아트앤북 서점의 공이 지대했기에 라일락 멤버들은 일주일에 한 권씩 책을 사러 서점에 들렀고, 가는 김에 서점 왼편 밤달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오른편 프렌드빵집에서 단팥빵과 크루아상을 샀다. 

은규는 주영과 함께 연정시청을 들락거렸다. 담당 공무원에게 휴대폰을 내밀었다. 

“이거 보세요. 연정시를 해시태그로 검색해 보면 연정주택단지 장난 아녜요. 보시라니까요. 옆 도시에서도 여기로 놀러온다는 거 아시겠죠?”

“그런데요?”

“그런데 막상 와보면 놀이터가 분위기를 망쳐요. 인생샷 찍기엔 이 낡아빠진 미끄럼틀이랑 정글짐이 너무 거슬리거든요. 제가 민원을 수십 번 넣었어요. 칠 좀 새로 해달라고요. 도대체 왜 안 해주시는 거예요? 놀이터를 새로 만들어달라는 것도 아니고 칠만 해주면 될걸, 이 정도면 거의 직무유기라고 봐요, 저희는.”

콧방귀도 안 뀌던 담당 공무원은 주영과 은규가 네 번쯤 찾아가고 경자 씨가 두 번을 더 찾아가자 결국 도색을 해주었다. 

“아니, 이 동네에 애들이 있는 것도 아닌데 뭘 그렇게까지 민원을 넣고 그래요?”

담당자는 한참 구시렁거렸으나 놀이기구에 칠을 하는 김에 어르신들을 위한 운동 기구도 새것으로 바꾸고 농구대도 새것으로 교체해주었다. 해시태그를 넣어보면 이전보다 사진이 훨씬 나았다. 봄이 빠르게 다가왔고, 반지가 2학년이 되었으며, 어느 날 박서하가 라일락 주택수리 회사를 찾아왔다. 오피스 거실에서 서하를 마주하고 앉아 지윤은 빙그레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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