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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엠마한 May 02. 2021

17. 빈티지 드레스 '심폐소생술'

볼 캡과 흰 운동화로 이 옷까지 살릴 수 있을까?


엄마 옷장에서 10+N년째 걸려있던 빈티지 드레스



  이번 S/S 시즌 트렌드를 찾아보면서 꼭 해보고 싶었던 룩이 하나 있었다. 바로 셀린(CELINE) 패턴 원피스+  +레인부츠  조합한 이다. 아래 셀린의 런웨이 컷과 블랙핑크 리사의 보그 재팬 화보를 보면 어떤 모습인지 한눈에 알 수 있다. 사실 이 세 가지 아이템을 각각 따로 떼어놓고 보면 그 어느 것도… 내 돈 주고 사고 싶은 물건은 없다. 물방울무늬 원피스는 아무리 봐도 할머니 옷 같고 (심지어 그 위에 걸친 카디건도), 저 밀리터리 패턴의 캡은 리사 말고 그냥 일반인이 쓰면 예비군 되는 거 아닌가? 레인부츠는 비 오는 날 아니면 굳이 신고 싶다고 생각해본 적 없다. 그런데  셋을 조합해서 런웨이에 올리다니, 심지어 그게   보이다니…!



이미지 출처: 유튜브 채널 "보라끌레르 Bora Claire"(좌) / 보그 재팬 2021년 6월호 커버 (우)  



  역시 셀린이라는 ‘네임드 쇼’에 내 취향이 굴복해버린 것인지, 아니면 무엇을 입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입느냐가 요즘 패션의 전부인 건지... 아리송하지만 자꾸 눈이 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셀린의 이 룩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1]’낯설게 하기’- 문학 시간에 배운 용어를 또 이렇게 써먹는다. 클리셰가 반복되는 영화가 지루하듯이, 원피스엔 플랫슈즈, 볼 캡에는 야구점퍼를 걸치는 뻔한 패션은 무난하지만 재미없는 게 사실이니까.  


  그러다 몇 주전에 구독하던 유튜브 채널에서 ‘스커트/원피스와 운동화의 조합’을 다룬 콘텐츠를 보았다. 집에 있는 "잘 안 입는 원피스나 패턴이 복잡해서 옷 맞춰 입기가 난해한 스커트가 있다면 흰 운동화와 매치해보라"라는 조언이었다.  거기에 오버사이즈 재킷, 볼캡까지 있으면 금상첨화라는 말도 함께…! 나는 이번에야말로 실험에 나설 때라고 생각했다. 엄마의 옷장에서 보았던 오래된 빈티지 드레스를 꺼내 보기로 한 것이다.


  독특하기로는 작년 겨울, 빨간색 시어링 코트(궁금하신 분은 여기를 클릭!)에 견줄 만한 이 드레스는 엄마 옷장에 들어온 지 10년은 넘어 보였다. 옷을 아끼는 사람답게 잘 입지는 않아도 깔끔하게 다려서 고이 걸어둔 안 여사였다. 꺼내서 옷을 꼼꼼히 살펴보니 공을 많이 들여서 만든 옷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무튼 보통 물건은 아니었다. 자칫 잘못하면 정말 엄마 옷 얻어다 입은 느낌이 날까 잠깐 고민했지만, 일단 이 녀석으로 승부(?!)를 보기로 했으니 어울릴 만한 아이템을 최대한 찾아보기로 했다.





  리넨 소재의 홀터넥 앞판에는 라펠과 6개의 단추가 달린 V 존이 있고, 허리춤엔 포켓 디테일이 있다. 마치 [2]더블 브레스티드 재킷과 중세풍의 드레스를 결합한 듯한 디자인이다. 주름을 많이 잡아 풍성하게 만든 스커트 자락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패턴이다. 어두운 바탕 위에 손바닥만 한 주황색과 빨간색의 모란꽃 송이가 곳곳에 피어있다. 같은 모양의 꽃은 하나도 없어 마치 한 송이씩 붓으로 그린 것 같다. 


나한테 있는 건 흰 아디다스 운동화 한 켤레.  드레스랑 안에 레이어드 한 진회색 티셔츠는 엄마 옷이고 빈티지 볼 캡은 남동생 거다.


  티셔츠를 입고, 팔을 걷어붙이고, 원피스의 조금 크거나 남는 부분을 옷핀으로 잡아서 입었더니 머릿속에 그려보았던 룩이 완성되었다. 흰색 운동화가 경쾌한 느낌을 주는 데다가 운동화 굽 뒤축에 있는 오렌지색 포인트가 스커트 자락에 한껏 핀 모란꽃의 색과 우연히 들어맞아서 연결감을 준다. 사진을 찍어놓고 보니 동생 모자가 생각보다 잘 어울려서, 아예 볼 캡 쓴 버전의 [3]'루루' 얼굴을 새로 그렸다. ‘볼 캡 X 흰 운동화 만능설’을 이 한 벌의 코디로 증명할 수는 없겠지만, 한껏 드레스업 해서 무대의상까지 갈 뻔한 왕 꽃무늬 원피스를 저 둘이 스트릿 룩의 밸런스를 잃지 않도록 잘 잡아준 것만은 인정해야 하겠다.





  이제 여기 아우터를 걸쳐보면 어떨까? (추위에 약한 나로서는 아직 저녁에 쌀쌀해서 반소매 차림이 이른 편이다.) 옷장에 얇은 여름용 블루종이 하나 있어서 걸쳐보았는데 저렇게 허리 부분 실루엣이 우글우글해서 이쁘지가 않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실루엣을 통째로 정리해줄 오버사이즈 재킷을 입어봤다. 여유로운 핏은 좋지만 원피스 자체에 이미 라펠이 있는데 재킷에도 또 라펠이 있어서 정면에서 보면 답답한 느낌. 아무래도 단추를 연 채로 입거나, 어깨에 살짝 걸치는 정도가 적당하겠다.



볼 캡과 운동화를 활용하니 이런 공주풍의 드레스도 스트릿 패션으로서 어느 정도 설득력과 완성도를 어느 정도 갖춘 듯하다.


오늘의 최대 성과는 엄마의 옷장 속에 오랫동안 꼭꼭 숨어있던 빈티지 드레스에 생명력을 불어넣었다는 것, 그리고 가장 만족스러웠던 점은 이번 시즌에 꼭 해보고 싶었던 스트릿 무드의 믹스매치 스타일링을 직접 시도했다는 것이다. 다음번에는 좀 더 도전적인(?) 과제를 들고 다시 한번 찾아오리라...!







여담, about “심현옥”

- 개성이 뚜렷한 옷인 만큼 아마도 유명 디자이너 브랜드의 옷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브랜드 라벨이 한자로 쓰여 있어 읽을 수가 없었다. (네, 한자 배운 세대 맞아요...) 결국 안 여사에게 SOS 요청했더니 “심현옥”이라는 이름을 듣게 되었다. (삼수변 水 을 저렇게 쓰는 줄은 또 처음 알았고.)

  구글링 해보니 디자이너 ‘심현옥’의 옷으로 뜨는 이미지가 이 원피스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네이버에서는 ‘심현옥 아트워크’로, 구글에는 ‘이데아 심현옥 IDEASIMHYUNOK’으로 등록되어 있는 이 브랜드는 “아방가르드하고 전위적인(동어반복..!) 중세 복식의 역사성을 부활하여 소급한 디테일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연출한 네오 클래식”이라고 소개되어 있었다. 하여튼 그렇다. 내게는 절대 어설픈 옷에는 돈을 쓰지 않는, 현명한 안 여사의 원픽 답다는 뜻으로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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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낯설게 하기: 익숙한 방식으로 결합한 사물과 그 표현법을 미묘하게 비틀어서 이미 알고 있던 대상을 처음 보는 것처럼 느끼게 하는 표현 기법 (출처: 네이버 국어 사전)


[2] 더블 브레스티드: 앞 판 좌우를 넓게 겹쳐 여미는 두 줄의 단추 또는 스냅이 있는 재킷이나 코트의 여밈 방식을 말한다. 대부분 겉면의 단추 한 줄만 기능적인 것이며, 견고한 여밈을 위해 안쪽에 단추가 있다. 남성 의복의 경우 대개 왼쪽 플랩(flap)이 오른쪽 플랩 위로 올라가도록 겹쳐 잠근다. 대표적인 더블 브레스티드로는 피 코트와 트렌치코트가 있다. (출처: 더블 브레스티드 [Double-breasted] (두산백과)


[3] 루루: 연재 시작 17회만에 밝히는 나의 페르소나 '루루'의 정체는 사실 캥거루다. 수많은 동물 중에서 캥거루를 고른 이유는… 말 안 해도 아시죠? (저도 이 글 다 쓰면 독립할 겁니다... 진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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