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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레바퀴 Nov 13. 2017

각설하고, 꽃 구경

- 3.10 봄볕이 좋아, 햇차 들이고

  3월에는 모든 것이 변한다. 늘 변하는 게 자연이지만, 그 변화가 가장 두드러지는 시점이 3월이랄까. 그 결에 인간도 채비를 한다. 배우는 이들은 새로운 환경에서 배움을 시작하고, 배운 이들은 새로운 업무에 적응하느라 끙끙댄다.
  인간이 아무리 준비를 꼼꼼히 해도 다른 동식물을 따르기는 힘들다. 내겐 아직 봄이 오질 않았는데, 곁 화단엔 벌써 매화가 피었으니, 화단에 설 때마다 지각을 자각한다.

그리고 슬며시 봄을 훔쳐온다. 


마른꽃을 제쳐두고, 동백과 매화를 들였다.

  봄을 훔쳐와 찻자리에 놓았더니 생화 대신 긴 겨울을 감당해주었던 마른꽃이 안쓰럽다. 미안하고 아쉬워도 어쩔 수 없다. 모든 건 제가 나서야 할 때가 있다. 생화의 무대에서 마른꽃은 조용히 물러선다. 붉은 홑동백은 든든하게 자리를 지키며 서 있고, 매화는 공간을 자신의 향으로 덮어간다. 마른 장미와 안개꽃은 그간 수고했으니, 에너지 넘치는 이들의 향연을 즐기면 될 것이고...

  

  요즘 내 사고의 유연성이 눈에 띄게 둔화함을 느낀다. 솔직한 표현이 어색해지고, 다양성을 인정하기 힘들어하며, 완고한 주장이 늘어간다. 그래서 생각해보니, 꽃을 관찰하는 시간도 그에 꼭 맞게 줄어들었다. 정신이 늙지 않으려면, 일부러라도 생동하는 것들의 모습을 훔쳐볼 일이다. 그들을 따라 움직여볼 일이다.  살아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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