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인현 Jul 27. 2020

008_우리는 함께 싸웠어

나는 너를 동지라고 생각해.

그건 우리가 많은 것들과 함께 싸웠기 때문이야.


터무니없는 보증금과 함부로 날아오는 말들,

우리의 미래에 대해 빨리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과 우리는 싸웠어.

때로는 음식과도 싸웠어.

우리가 같이 있을 수 있는 시간은 아주 적었고 그 시간을 어떻게든 이겨보려고 

우리가 모을 수 있는 가장 많은 돈을 모아 밥을 사고  

헤어져야 하는 시간이 오는 걸 두려워하면서 허겁지겁 먹어댔지.


어쩔 때는 서로 할 말이 별로 남아있지 않았는데도 

커피를 시키고 같이 창 밖을 보면서

커피값으로 구매한 잠깐의 평화를 영원히 누리는 상상을 하기도 했어.


우리가 싸웠던 것 중에 가장 큰 건 너의 아픔일 거야. 

너의 아픔은 시시때때로 너를 더 아프게 만들었어. 

어떤 상처는 다시 새 살이 돋아나게 되지만 

어떤 상처는 피가 흘러 점점 더 큰 상처가 되기도 하나 봐. 

네가 처음 다치게 된 날을 나는 알지 못했지만 내가 처음 만났을 때 넌 이미 피를 흘리고 있었지. 

상처를 낫게 하기 위해, 어쩌면 그저 덜 아프기 위해 우리는 싸웠어. 

너와 같이 손을 잡고 있으면 이상한 용기가 많이 났어. 

그리고 나도 상처 입은 사람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곤 했어. 


그런데도 우리는 한 발짝씩 나아갔어.     

어느새 나는 너의 눈보다 너의 입이 더 좋아졌어.  

너의 눈은 자주 흔들렸지만 너의 입은 언제나 정직했어.

서운할 때는 삐죽 튀어나오고 기분이 좋을 때는 너의 오밀조밀한 치아를 보여줬으니까.

나는 너의 입과 살고 있다고 생각해.

너의 입이 말하는 이야기들에 나의 삶을 맡긴 채 떠다니고 싶었어.     


너를 좋아하는 이유를 네가 물어볼 때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어.

하지만 너와 지낸 시간들을 생각하면

그 시간들이 어떤 의미인지 쓰려고 하면

나는 어떤 페이지라도 쉽게 채울 수 있을 거야.     

함께 싸우고 

그 싸움이 아마도 영원히 이어질 거라는 생각을 하면서

늘 너를 생각해.

계속, 무언가가 이어지도록.

이전 07화 007_우리에게 따뜻함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