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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인현 Jul 31. 2020

009_갈색 눈동자

여름의 눈은 햇빛이 녹아들면 완전한 갈색이다.

그 색은 잘 닦은 광석이 내는 것처럼 은은했고

아름다웠다.


나는 정작 내 눈의 색을 모른다. 

나는 보통 희여멀건한 화장실의 형광등 밑에서

거무죽죽한 눈자위를 문지르다가 

거울 속의 흐릿한 내 눈과 마주치게 되는데

그 눈엔 원인을 알 수 없는 부끄러움과 자기혐오가 들어있는 걸 깨닫는다.

그 눈을 햇빛에 비춰볼 생각은 꿈도 꾸지 못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볼 때,

적어도 가슴 한편에 색이 그려지는 사람과 만날 때,

내 눈은 어떨까?

여름은 그때의 내 눈에 관해서 이야기해준 적이 없다.

만약 내가 여름을 볼 때에도

내 눈에 그런 부끄러움이 들어 있다면

나는 완전히 낙담하고 말 것이다.


여름의 갈색 눈동자가 선명하게 그려진 날이 있었다.

어느 날 저녁, 충무로 역 뒤쪽 골목길들을 거닐다가

주위에는 밝은 불빛이 없었고

유독 날씨가 맑아

별들이 환하게 보였다.

별들이 몇 개인가 세어볼 필요가 없을 정도로

밤하늘 전체가 내 안에 들어오는 느낌이었고

여름을 돌아보았을 때 여름의 갈색 눈동자가 밤하늘의 별빛을 받아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그건 어쩌면 당연히 나의 착각이었을지도 모르겠으나 

여름이 스스로 내는 빛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또렷했고

그때 여름은 몽골 사막의 밤하늘을 이야기했다.

몽골의 사막에 가서 별을 볼 거라고.

언젠가 같이 그 사막에 가자고.


사랑에 빠지게 되는 순간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나

눈에 빠지게 되는 순간에 대해서는 이제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가끔 여름은 갈색 눈동자로 나를 쳐다본다.

그 눈에는 사랑과 비슷한 무언가가 담겨 있다고 생각이 되는데

그게 마냥 즐겁지는 않고 왠지 서글픈 느낌이 든다.

우리의 시선이 늘 즐겁고 아름답게 서로를 관통하면 좋겠으나

시선은 자주 다른 방향으로 틀어지고 

언젠가는 일방적인 시선을 던지고 있는 것으로 느껴진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나는 여름의 갈색 눈동자를 마주치고 나면 

이내 여름의 모든 말을 들어줄 수밖에 없게 된다.

갈색 눈, 브라운 아이즈를 되뇌며 

나는 또 조금씩 여름에게 빠져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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