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남편의 환갑파티하는 날. 첫째까지 네식구가 완전체로 하기 위해 진짜 생일보다 하루 늦춰서 하게 되었다. 아침 7시에 독서모임까지 있어서 마음이 더 분주했다. 나는 음식준비를 하고 합숙에서 돌아오는 첫째가 케잌을 찾아오기로 했었다. 풍선장식을 하고 창문에 현수막도 달아야 하는데, 휴일이라서 집에 있는 남편 모르게 어떻게 서프라이즈를 해야하나가 고민이었다. 그런데 역시나 세상 일이 한치 앞을 모르는 거였다.
남편이 아침에 부고장을 받아서 예정에 없던 조문을 가게 되었다. 후배가 부친상을 당했다고 했다. 누구는 환갑을 맞고 누구는 그 시간에 생을 마감하고 또 누군가는 그 시간에 태어나겠지. 참, 인간사란,.. 그 돌고도는 세상사 어디쯤에 잠깐 머물다가 떠나는 인생일 뿐인데... 뭐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한가하게 상념에 빠져있을 때가 아니었다. 남편이 나가게 되어서 서프라이즈 파티 준비를 하기에는 좋았는데, 다른 문제가 생겼다. 남편이 빈소에 가는데 차를 써야 한다는 것. 첫째가 집에 오자마자 차로 케잌을 찾으러 갈 수 있도록 시간을 맞춰서 예약을 해놨는데 그럴 수가 없게 되었다. 그나마 첫째가 운전하는 걸 좋아해서 차로 후딱 갔다오라고 할 참이었는데 차를 쓸 수가 없어졌으니 난감했다. 그렇다고 부산에서 기차타고 올라온 애를 바로 또 심부름 보낼 수도 없고, 둘째는 마침 또 알바중이었다. 결국은 내가 가는 수밖에.
음식 준비도 하려면 시간이 빠듯할 듯 해서 택시를 타고 갔다올까 했는데 길을 검색해보니 지하철로도 어렵지 않게 다녀올만한 거리였다. 이럴 때 어김없이 따지게 되는 효율성(우리 식구들은 궁상이란다)! 당연히 나의 선택은 지하철이었다. 왕복 한시간 반 정도 걸릴 걸 고려해서 음식준비의 계획을 세웠다. 오전에 전을 부치고 갈비를 재워놓고 케잌을 찾아온 후, 잡채와 골뱅이무침을 하기로 했다.
오전에 음식을 하는 시간이 생각보다 길어져서 쇼파에 엉덩이 한번 걸치지 못하고 바로 케잌을 찾으러 갔다. 휴일인데도 지하철에 사람이 많아서 내내 서서 갔다. 힘들었지만 남편을 즐겁게 해 줄 생각에 마음은 붕붕 날아다녔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남편이 오기전에 첫째랑 파티장식을 꾸몄다. 나가기 전에 미리 풍선을 불어놨는데도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다.
나머지 요리를 하고 있는데 남편이 돌아왔다. 남편은 거실에 꾸며진 장식을 보고는 멋쩍은 표정을 지으면서도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찍었다. 남편이 자발적으로 사진을 찍는 건 아주 희귀한 일인데, 꽤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었다. 알바를 마치고 돌아온 둘째까지 모두 모여 남편의 환갑 파티를 시작했다.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고 케잌의 촛불을 불고, 가장 심혈을 기울인 이벤트 용돈박스를 오픈했다. 박스에 매달린 줄을 당기자 구름모양의 박스가 활짝 열리면서 반짝이 금줄과 오색 꽃가루, 그리고 돈이 주루룩 쏟아졌다. 나와 아이들이 떠들썩하게 손뼉을 치고 환호성을 지르자 남편이 활짝 웃었다(이것도 보기 드문 일이다). 꽃가루 때문인지 용돈 때문인지 역시나 강력한 한방이었다.
남편은 아이들이 선물한 구두를 아주 마음에 들어했다. 몇주동안 둘째와 쇼핑지옥에서 허우적거렸던 보람이 있었다. 그런데 용돈박스에 이어 용돈봉투까지 내가 준비한 현금 선물은 남편이 짐작했던 것보다 좀 많았는지 어쩔 줄 몰라했다(사실 나도 반만 줄까 다 줄까 엄청 고민했었다).
장식 앞에서 요란스럽게 사진을 찍고 저녁을 먹었다. 그 다음은 뒷정리. 그렇게 남편의 환갑 파티가 끝이 났다. 많이 즐거웠고, 아주 조금 허무했다. 놀 때는 몰랐는데 설겆이까지 다 하고나니 허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아침 9시부터 저녁 9시까지 꼬박 12시간을 서 있었으니 허리가 아플만도 했다. 그나마 내가 남편보다 젊으니 망정이지 연하 남편과 살았더라면 큰 일 날 뻔했다.
남편은 학교에 늦게 들어가서 친구들보다 한살이 많다. 그래서 환갑도 먼저 맞았다. 파티장식을 사진 찍으면서 친구들에게 보여주어야겠다고 했는데, 친구들 앞에서 어깨가 좀 으쓱하려나? 요즘 세상에 환갑을 누가 챙기냐 하지만, 나는 남편의 환갑을 꼭 챙겨주고 싶었다. 남편이 가족들에게 사랑을 아주 많이 받고 있다는 걸 꼭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준비를 하는 동안 나도 즐겁고 행복했다. 잊고 있었는데 내가 아직 남편을 사랑하고 있나보다. 참 신기한 일이다.
후속편...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니 허리가 더 아파서 결국 한의원에 가서 침을 맞았다. 아무래도 남편 칠순잔치는 또 못해주겠구나 생각하며 집으로 오는데, 핸드폰 알림창에 입금 알림이 떴다. 남편이 보낸 것이었다. 오호~ 생색은 다 내고 실속은 챙겼으니 꽤 수지맞는 장사(?)였다.
그리고 남편이 가족단톡방에 이런 글을 올렸다. 왠일이래~ 참 오래 살고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