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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이디 Dec 13. 2023

해금배우기 도전

언젠가 국악콘서트에서 들었던 해금소리에 빠져 '해금배우기'를 내 버킷리스트에 올려놓았었다. 슬픔이 담겨있는 듯한 해금의 애절한 소리는 매번 들을 때마다 가슴을 울린다. 영화 <왕의 남자> ost로도 쓰였던 이선희 씨의 '인연'을 해금으로 연주하는 걸 들었을 때 결심했었다. 꼭 해금을 배워 '인연'을 연주하리라.


해금을 배울 수 있는 곳을 여기저기 찾아보다가 눈에 들어온 곳이 안국동에 있는 '국악이 꽃피는 나무'라는 곳이었다. 각 분야의 국악 전공자들이 모여 운영하는 곳으로 강습도 받을 수 있는데, 왠지 사설 음악학원과는 분위기가 다른 것 같아 오래전부터 눈독을 들이고 있었다.


사실 악기를 배우는 건 꼭 해보고 싶은 일이었지만, 극현실주의자인 나에게 시간과 비용면에서 늘 후순위로 밀려나 있었다. 그러다가 국악이 꽃피는 나무에서 「해금 4주 체험강좌」을 개설한다는 광고를 보게 되었다. 수강료도 단돈 2만원밖에 하지 않는다니 그야말로 '유레카~'였다. 내가 신청한 요일은 신청자가 없어 개설이 안되었고 대신 토요일에 하는 수업을 듣게 되었다. 첫날 수업은 사정이 있어 참석할 수가 없다고 하니 원장님께서 보충을 해주겠다고 하셔서 신청하였다.


그렇게 바라고 바라던 해금 첫수업! 해금을 손에 쥐어보는 것만으로도 감격스러워 초면에 염치 불구하고 옆사람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제대로 잡는 자세라도 배우고나서 찍을 것을 급한 마음에 해금을 어설프게 들고만 찍었다.



해금은 왼손으로 줄을 잡아 음을 맞추고 오른손으로 활을 움직여 줄에 마찰을 일으켜 소리를 내는 현악기이다. 그런데 소리가 울림통을 통해 나오는 구조라서 관악기로 분류되기도 한다고 한다. 정해진 자리에 건반을 두드려 정확한 소리를 내는 피아노 같은 악기와는 다르게 해금은 소리를 들으며 직접 음을 맞춰야 해서 음감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악기이다. 음계도 우리에게 익숙한 '도레미파~'가 아니라 '황태중림남'이라는 음계를 사용한다.


음악에 소질까지는 아니어도 나름 음감이 있다는 얘기는 들어왔고, 새로운 것을 배우는 속도도 그리 느린 편이 아니어서 잘 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큰 착각이었다. 첫 음을 맞추는 것부터 계이름에 따라 왼손 손가락을 움직이는 것과 오른손으로 활을 밀고 당기는 것까지 마음처럼 되지 않았다. 내가 알고 있던 아름다운 해금소리와는 전혀 다른,  마치 분필로 칠판을 긁어대는 듯한 듣기 괴로운 소리가 났다.


일주일에 한번, 강습소에 있는 악기를 사용하다보니 따로 연습을 할 수도 없고, 배우고 돌아서면 잊어버릴 나이이니 시간이 지날수록 다른 수강생들과 점점 실력차이가 벌어졌다. 여럿이 함께 하면 조금 틀려도 모르는 척 넘어갈텐데 선생님은 굳이 한사람씩 개별적으로 시키셔서 수업시간이 곤혹스러웠다.


그렇게 4주간의 수업이 끝났고, 이어서 더 배울 사람은 정규수업을 신청하라고 했지만, 나는 한번 체험해 본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해금은 음악적인 재능이 어느정도 있어야지 할 수 있는 악기라는 사실을 깨달았고, 나에게는 부족한 재능을 노력으로 커버할만큼의 시간과 열정이 있지는 않다는 사실을 분명히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의 버킷리스트에서 '해금 배우기'는 깨끗이 지워졌지만, 4주간의 체험수업은 해보고 싶던 걸 해볼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다. 비록 '인연'을 멋지게 연주하겠다는 꿈은 날아갔지만, 50 중반의 나이에도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새롭게 도전해 보는 나 자신이 꽤 마음에 든다.


자, 다음에는 또 뭘 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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