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할 수 있는 '조건'을 세워야 한다.
상담심리학에서 가장 자주 거론되는 용어는 '무조건적 긍정적 존중'일 것이다. 너무 길게 느껴지니 '무조건적 존중'으로 줄여서 쓰는 것이 좋겠다. 여하튼, 상담심리학 강의를 들으면 반드시 거쳐야만 할 관문처럼 접하는 개념이다. 용어 자체에서 짐작할 수 있듯 무조건적인 존중이란, 한 사람의 경험 자체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것이라고 정의된다. 조건적으로 사람의 경험을 판단하지 않고 수용하는 것이다.
여기서, '있는 그대로'는 특정한 기준으로 딱 집어 이해하기 어렵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렇다면 다음의 반문도 뒤이어 따라오게 된다. 사회적으로 용인되지 않거나, 불법적이고 비도덕적인 생각이나 행동도 있는 그대로 존중해야 한단 말인가? 직관적으로 생각해도 경악스럽다. 한 끗 차이로'무조건'이 '무제한'으로 뒤틀리고 마는 것이다. 그렇다면, '있는 그대로'를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까? 역설적이게도 무조건은 성립된 조건 하에서만 발생된다. 자유에 대한 개념이 부자유를 인식함으로써 생성되듯이, 무조건도 마찬가지로 일정한 조건이 성립되어야만 비로소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여기서 '조건'을 어떻게 성립할 것인가가 관건이 된다. 나는 조건을 성립할 때 존중하는 사람이 아닌, 존중받는 사람에게 기준을 두어야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중요시하는 가치를 덧씌우지 말고 타인이 중요시하는 가치를 중심으로 조건이 성립되어야 한다. 조건은 타인에게 가치있고 유익해야한다. '너는 ~를 해야만 가치가 있다'가 아니라, '네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관대로 생각하고 행동했으니 괜찮다'고 말할 줄 알아야 한다.
이는 상담 과정에 한해서 적용되지 않는다. 우리가 사람을 대하는 데 있어, 마치 게임의 패시브 스킬처럼 기본적으로 겸비해야 할 태도로 자연스럽게 녹아들도록 훈련이 필요할지 모른다. 예컨대 부모가 아이를 양육하는 과정에서 아이에게 '좋은 성적을 받아야만 너를 자랑스러워 할 것이다'가 아닌, '네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무엇을 하든, 우리는 너를 자랑스러워 할 것이다'라고 말할 줄 알아야 한다.
우리는 모두 사회인으로서, 어떤 식으로든 '조건'이라는 보이지 않는 촘촘한 거미줄에 얽매일 수밖에 없는 가련한 존재다. 외부에서 부여되어 내면화된 조건에 매달려서는, 훗날 돌아보면 크게 의미없을 조건을 만족시키지 못했다고 좌절하는 일이 부지기수다. 하지만, 이런 한계가 있다는 점을 오히려 겸허히 수용함으로써 무조건적 존중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된다.
만약 '무조건적 존중'이란 개념이 잘 이해되지 않는다면, 주변에 있는 사람들부터 천천히 시작해보는 것이 좋겠다. 어쩌면 그들을 이전까지는 '조건적으로 존중'했을지도 모를 나날들을 되돌아보게 될지도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