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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산다는 것'에 관해.

한 번쯤은 미지의 세상을 상상해보자.

by 문하현

무한대로 회전하는 회전초밥 같은 유튜브 알고리즘이 내가 미처 경험하지 못한 세상 속으로 나를 사정없이 밀쳐버린다. 최근에는 '결혼'을 주제로 삼은 영상들이 시도 때도 없이 첫 화면에 노출되어, 어느새 깊은 동굴 같은 생각의 입구에 도달한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 중에서 특히 눈길이 가는 영상은 어느 국제부부의 브이로그였다. 한국인 여성과 미국인 남성으로 이루어진 짝이었는데 여성분이 배우자에게 아주 멋들어진 솜씨로 한식을 만들어주시고, 남성분은 미국인인데도 한식이 입에 맞는지 한 그릇을 깨끗이 비우고도 더 담아 드시는 모습이 담긴 영상이었다.


보는 내내 얼굴에 흐뭇한 미소가 저절로 피어오를 정도로 이들은 화목해 보였다. 의도치 않게 결혼 바이럴에 당하던 중에, 눈앞에 보이는 화목함 뒤에 서로에게 맞는 사람이 되기 위해 수없이 조율하고, 또 조율했을 과정이 영화의 트레일러처럼 머릿속을 스쳤다. 같은 국적의 사람끼리도 평소에 서로를 잘 알고 있어도, 막상 함께 살고자 하면 또 다른 세상에 들어선 것 같은 낯섦에 직면하기 마련이다. 이들은 완전히 다른 문화와 언어권에서 성장했기에 낯섦을 극복하는 데 있어, 같은 국적의 부부보다 감히 상상할 수 없는 몇 배의 어려움에 직면했을 것이다. 마치 한입거리의 초콜릿처럼 소소한 행복이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일상들이 담긴 영상을 내보낼 수 있는 이유는, 이들이 최고 난도의 험난한 모험 같은 조율의 과정에서 초인적이라고 표현할 만한 신뢰를 통해 서로를 끝까지 붙들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영상을 끝까지 시청하며 '내가 결혼할 만한 사람인지' 곰곰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그저 관심이 없었던 탓에 '비자발적 비혼주의자'였던 예전이었다면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일이다.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 고민해 봐도, '잘 모르겠다'는 단순명료한 결론만이 남는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았는데 할 만한 사람인지 생각하는 건 크게 의미가 없는 것 같다. 나는 영상의 여성분처럼 요리를 정성스레 차려줄 수 있는 능력은 없지만, 적어도 내게는 이 능력이 함께 사는 일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 같진 않다.


함께 사는 일에 관해 고민하면서 자연스레 내가 '어디까지 조율할 수 있는지'를 파악해야 한다는 걸 인식하게 되었다. 사람마다 고유한 '이해의 스펙트럼'이 있고, 결혼생활을 만족스럽게 하는 사람들은 본인의 스펙트럼이 '어느 색깔까지 흡수할 수 있는지'를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을 것이다. 설령 나의 스펙트럼에 상대방에게만 있는 색깔이 없다고 해도, 그 색깔을 구태여 흡수하려고 무진장 애를 쓸 필요도 없다. 흡수할 수 없는 색깔은 되레 잊기 쉬운 '경계'를 인식할 수 있는 표지로서 작용할 것이다.


한 번씩은 함께 사는 일의 행복에 대해 고민해 보는 시간을 갖는 일도 퍽 나쁘지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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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토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