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 글보다 말에 힘이 있다.
누가 봐도 쉽게 추측하겠지만, 나는 말보다 글로 생각을 전달하는 것을 선호하는 편이다. 글은 일단 한결 정돈된 생각을 군더더기 없는 어휘로 다듬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혹시라도 잘못된 관점에서 의견을 도출하거나, 글의 전체적인 맥락과 어울리지 않는 어휘를 사용한다던지 등 오류를 찾아내 수정하기가 수월하다.
어쩐지 말로 생각을 풀어내려고 시도할 때마다 보이지 않는 그물이 나를 덮쳐서 꼼짝 못 하게 만드는 것만 같다. 말을 하다가도 갑자기 화산이 분화하듯 솟아오르는 막막함이 가슴을 마구 휘저을 때가 있다. 말이 상대방에게 어떻게 전달될지를 고려하는 과정에서 머릿속에 출구가 보이지 않는 복잡다단한 미로에 스스로를 가둬버리기 때문일 것이다. 말을 잘하고 싶지만 생각이 수없이 자가분열하는 세포들처럼 너무 많고 난잡한 나머지, 듣는 사람이 이해하기 쉽도록 어휘와 문장을 재구성하는 것에 상당한 어려움을 느끼곤 한다.
무엇보다, 말은 한번 잘못 꺼내면 다시 주워 담기가 매우 어렵다. 인간에게는 긍정적인 것보다 부정적인 것에 시선이 저절로 이끌리는, 본능적인 편향이 내재해 있다. 어딘가 이상하거나 잘못된 것 같은 말 한마디가 공들여 지켜오던 신뢰의 탑을 단숨에 무너뜨릴 수 있는 것이다. 잘못 꺼낸 말을 돌이키려면 지난하고 힘겨운 노력이 필요하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전화를 거는 것보다 카톡 같은 메신저를 사용해서 대화하는 것을 편안하게 느끼는 편이다.
문득, 상황에 따라서는 말로 진심을 전달해야만 하는 때도 있다는 걸 이해하게 되었다. 말을 잘 못한다는 핑계로 이전까지 글이라는 형식에 나 자신을 너무 옭아맨 것이 아니었을까. 상대방을 마주 보면서 글을 쓰며 대화할 수 없는 노릇이지 않은가? 참으로 웃픈 일이다.
글은 어딘가 딱딱하기 그지없다. 그에 반해 말은 오로지 어휘와 문장으로만 구성되지 않는다. 말은 투박하지만 글에서는 느낄 수 없는 생동감을 일으킨다. 다채로운 감정의 파동을 목소리와 억양을 통해서 퍼뜨리게 되고, 그 파동에 상대방도 감응할 수 있게 된다. 지금도 번뜩이는 성찰을 낚아채 간결한 글로 표현하지만, 성찰하며 자연스레 느끼는 여운을 글이라는 케이지에 새어나가지 못하도록 가두게 되는 것이다.
글은 훌륭한 표현수단이고, 앞으로도 글을 쓰는 일을 좋아할 것이다. 글의 매력을 놓치고 싶지 않다. 그러나 오로지 말을 통해서만 표현해야 할 상황이 닥친다면, 말로 마음을 오롯이 전하는 일을 주저하지 않으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