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깨끗이 잊어버려야 할 때가 있다.

'망각'의 망토로 흔적을 덮어주자.

by 문하현

'부정성 편향'이라는 용어가 있다. 중립적이거나 긍정적인 것보다 부정적인 것에 저절로 초점을 맞추게 되는 경향성이라 할 수 있다. 내가 무엇에 신경 쓰는지 매 순간 자각할 수 없기에 정말 그랬는지 철저히 되짚어볼 수는 없겠지만, 알게 모르게 부정적인 것에 신경을 더 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무의식적으로 일어나는 경향이기에 크게 문제가 되지 않으리라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부정적인 면이 오랫동안 선명한 기억으로 남아버리기 시작하면, 나중에는 선입견으로 완전히 굳어버려서 뜯어고치기가 어렵다. 이는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 생각하는 것보다도 훨씬 큰 영향을 끼친다.


내가 아는 사람의 '단점'이나, 그가 '잘못한 일'이 아무리 박박 문질러도 흐릿하게 남아있는 연필자국처럼 눈앞에 아른거릴 때가 있다. 연필자국이 한 번 남으면 그 위에 새로운 글자를 써 내려가는 일을 꺼리게 된다. 마찬가지로 사람을 대할 때도 이 사람은 이랬었지, 하는 과거의 편린이 관계의 끈이 느슨해지도록 잡는 힘을 약하게 만든다. 여기서 힘을 뺄수록 끈의 한쪽이 손에서 스르르 빠져나와서는, 최악의 경우 다시는 찾지 못할 만큼의 깊은 바닥까지 떨어질 수도 있다. 그와의 인연은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지경까지 가버리고 마는 것이다.


어쩌면 처음부터 찬란한 빛을 머금은 흰색의 도화지에, 티끌만 한 검은 점을 스스로 가감 없이 찍어버리는 과오를 무수히 저질렀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이 점은 다른 누구도 발견하지 못한다. 그저 찾으려고 집요하게 몇 번 시도한 끝에, 어쩌다 발견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설령 검은 점이 있다고 하더라도, 크게 거슬리는 것이 아니라면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점이 있다고 도화지에 그림을 그릴 수 없는 게 아니지 않은가?


다른 색깔의 물감으로 완전히 덮어버리는 것도 방법이지만, 이는 내 오만함에서 비롯된 과오를 지우는 것에 불과하다. 더 확실한 방법은, '검은 점이 있었다는 판단 자체를 망각'하는 것이다. 처음부터 없었던 일인 것처럼 말이다. 사실 대부분의 단점들은 상황에 따라 단점으로 작용하지 않을 수도 있다. 잘못한 일도 결과를 통감하고 책임감 있게 수습했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잊어버리지 말아야 할 것보다, 잊어버려도 괜찮은 것들이 훨씬 많다. 우리의 삶에는 검은 점을 찾아내거나, 지우려고 애쓰는 일에 쏟을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그러므로 때로 곁에 있는 사람에게서 무심코 검은 점을 찾아내게 된다면, 점이 언제 찍혔냐는 듯 깨끗이 잊어버리려 한다.

keyword
수, 토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