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말수가 적은 아빠기에 상견례 자리에서도 형식적인 말 몇 마디와 함께 적당히 자리를 지키다 오시려나 싶었다. "그래요~ 편하게 있으면 돼요" 짧게 답변해드린 후 약속 장소로 향했다.
조용히 식사만 하겠다던 아빠는 어색한 인사가 끝나기 무섭게 대화의 포문을 열기 시작했다. 키워오며 기쁘고 아쉬웠던 일, 학창 시절 교육을 위해 아낌없이 지원했던 일, 애 엄마와 계획해 나를 10월에 태어나게 했던 일까지 끊임없이 얘기를 이어가는 게 아닌가. 뭐 이렇게 자세하게 우리 가정사를 다 얘기하나 싶을 만큼 아빠는 나와의 일과 교육 철학에 대해 예비 시부모님께 조근조근 말씀하셨다. 어떤 마음으로 딸을 키워왔는지 그리고 이제 다 키워놨는데 뺏기는 기분도 든다며 농담조로 한마디 덧붙이셨다. 웃으며 말했지만 아빠 말속에 아쉬움이 꽤 짙게 느껴졌다.
남자친구와 오랜 연애로 가족들과 왕래가 잦았지만 다 같이 모이는 자리는 처음인지라 다소 어색하고 조심스러웠다. 혹시 실수하지 않을까 긴장은 이어졌지만 좋은 날인 만큼 애정 어린 덕담이 오갔고 화기애애한 대화가 이어졌다. 남자 친구와 내가 준비해 간 선물과 소소한 이벤트로 그날의 모임은 마무리되었다.
다음 날 눈을 떠 어제의 일을 생각해봤다. 오가던 말에, 그냥 툭툭 내뱉었던 말속에서도 아빠의 사랑이 느껴졌다. 엄마는 늘 애정을 표현하기에 새삼스럽지 않았지만 아빠가 날 얼마나 사랑으로 키웠는지 갑자기 확 와 닿았다. 결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엄마 아빠가 안 도와줘도 스스로 잘할 수 있다 큰소리치며 지금까지도 나 혼자 잘해왔던냥 의기양양했었다. 근데 아빠의 이야기를 곰곰이 짚어보니 얼마나 많은 사랑과 희생이 모여 지금의 내가 만들어졌는지 새삼 깨닫게 됐다. 결코 혼자 이 자리까지 온 게 아니었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고 알아차리지 못했던 순간에도 부모님은 내 앞날의 번영을 위해 희생하고 인내해왔다. 젊은 날의 청춘을 날 위해 아낌없이 쏟으셨다는 게 왜 이리 고맙고 미안하던지.
이제는 엄마 아빠 품을 떠날 준비를 하며 뒤를 돌아보니 이제야 그 수고와 애정이 와 닿아 느닷없이 눈물이 났다. 결혼식날 양가 부모님께 인사하며 눈물 흘리는 신부들의 마음이 이런 의미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