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 라이프> directed by 후카다 코지
최근 일본 영화의 기세는 자타공인 무시무시하다. 2020년 칸과 베를린에서 돌풍을 일으켰던 하마구치 류스케를 필두로 미야케 쇼, 가타야마 신조 등 재능 있는 신진 감독들의 작품이 차례로 국내에 소개되고 있다. 이런 일본 영화계의 흐름을 논할 때 후카다 코지라는 이름도 빠지지 않는다. 그는 일본 내에서는 구로사와 기요시의 제자 출신으로 유명하며 칸과 베니스를 동해 국제적인 명성을 쌓아가고 있는 감독이다. <러브 라이프>는 후카다 코지 개인과 일본 독립영화계 전체가 차근차근 쌓아 올린 또 하나의 공든 탑이다. 영화는 마치 작은 부피에 큰 질량을 지닌 어떤 물체를 연상케 한다. 가정이라는 사적인 공간을 내밀하고 미묘한 토로로 가득 채운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재혼으로 새로운 가정을 꾸린 ‘타에코(키무라 후미노)'는 아들 '케이타(시마다 텟타)'의 보드게임 대회 우승을 축하하려 집 안을 장식한다. 같은 시간, 남편 '지로(나가야마 켄토)'는 집 앞 공터에서 직장 동료들과 아버지 생일 축하를 준비한다. 언뜻 안팎이 축복으로 가득해 보이는 이 가족은 한 꺼풀 벗겨보면 문제로 가득하다. 집 안에서는 타에코의 시부모가 타에코 모자를 식구로 받아들이길 거부한다. 집 밖에서는 지로와 그의 전 애인이 직장 동료로서 불편한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영화는 초반부에 간결하고 함축적으로 이 ‘모두가 아는 비밀'을 관객에게 전달한다. 인물의 관계도가 그려지면 그다음은 관계 한가운데 돌을 던져 파장을 일으킬 차례다. 모두가 잠깐 한눈판 사이 케이코가 집 안에서 사고로 숨지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리고 이를 계기로 오랫동안 생사도 알 수 없었던 케이코의 친부 ‘박신지’가 이들 앞에 나타난다. 검은 상복 무리 가운데 노란 셔츠 차림의 박신지는 명백하게 경고의 이미지다. 이제 집은 더 이상 내면과 외면의 문제를 감출 수 없는 사건 현장이 된다.
<러브 라이프>는 사랑과 가족에 내재하는 아이러니를 밀도 높은 이미지로 풀어낸다. 이를테면 영화 초반 등장하는 오셀로는 타에코 가족을 닮았다. 오셀로 칩은 흑백이 동전의 양면처럼 붙어 있다. 이는 인물들이 서로를 향해 품고 있는 양가감정, 또는 현 남편 지로와 전남편 박신지 양자의 대비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야기를 이해하기 위해 각 색깔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언제든지 뒤집어질 수 있는 위태로움, 그리고 흑백이 옳고 그름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오셀로의 이미지는 비둘기를 쫓기 위해 베란다에 걸어둔 CD로 이어진다. 마찬가지로 빛은 상황에 따라 비둘기를 쫓아내기도, 전남편 박신지를 불러오기도 한다. 또한 무의미한 인서트처럼 보이던 CD는 타에코와 지로의 갈등이 고조되는 순간 눈에 띄는 그림을 만들어 낸다. 단순한 은유를 넘어 잘 장전된 한 정의 '체호프의 총'이었던 셈이다. 이외에도 초반에 잠깐 등장한 수녀들은 시어머니와 타에코가 종교적인 대화를 나누는 계기로 이어지는 등 <러브 라이프>는 이미지를 허투루 쓰지 않아 관객이 영화 속 모든 것에 집중하도록 만든다.
또한 영화는 일본의 좁은 아파트를 이리저리 조명하며 타에코 가족의 이미지를 만들어 간다. 협소한 공간은 사방에서 인물을 조이고 숨을 공간을 내주지 않는다. 가전제품에 반사된 얼굴이 불쑥불쑥 튀어나와 표정을 감추기도 어렵다. 사건과 감정이 고조되는 중반부에 이르면 집의 내부가 창문에 어린 바깥 불빛과 겹치도록 촬영한 샷이 등장한다. 영화는 이처럼 집이 바깥과 다름없고 가족이 남과 다름없어진 상황과 심상을 한 컷에 실어 보낸다.
<러브 라이프>는 타에코가 박신지를 돕고, 그 과정에서 그로부터 도움을 얻으려 하는 과정을 담은 이야기다. 타에코는 선의와 박애로 행동한다. 세상 사람들이 비난해도 그에게 박신지는 ’사랑하는 남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야기는 타에코를 아름다운 곳으로 데려가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현 남편 지로 또한 타에코와 케이타를 사랑하는 마음에 거짓은 없다. 그러나 진심만으로 좋은 결과를 가져오기엔 역부족인 건 이쪽도 마찬가지다. 아픔을 이겨내고 가족을 지켜내려던 인물들의 갖은 노력은 하나의 진실로 귀결한다. 사랑은 선(善)을 보장하지 않는다. 사랑만으로 선을 이루기에 우리는 너무 가증스럽다. 무수한 여진을 뒤로 하고, 두 사람은 따로인지 함께인지 모호하게 걸어 나간다. 우리는 그들을 응원해야 할까, 걱정해야 할까. 엔드 크레딧 속 인물들의 뒷모습이 객석을 떠나는 관객의 뒷모습과 닮은 탓에 고민은 깊어진다.
아트나이너 17기 강탄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