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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호티브 Jan 16. 2019

#9 보고 싶어

그리운 것들

별 유난이야

참 유별나다. 몇 년도, 몇 개월도 아니고 고작 몇 주일뿐인데 한국 음식이 이렇게 생각날 수가 있었다니. "그 나라에 가면 그 나라 음식에 집중해야 돼!"라는 내 신념은 산산이 부서졌다.

요 며칠간 나는 내가 고추장과 초고추장을 얼마나 사랑했었는지 절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일본과 우리나라의 식문화는 큰 차이가 있지 않아 대부분 입에 잘 맞는다. 하지만 가장 큰 차이점은 일본은 평소에 짜게 먹는 나도 짜다고 느낄 만큼 짠 음식이 주를 이루고, 한국의 경우는 매콤한 음식이 주를 이룬다. 그러다 보니 맛은 있지만 짠 음식이 물리기 시작했고, 그것들을 중화시킬 수 있는 매콤한 맛이 필요했다.

더 이상 마른안주에 마요네즈만 찍어먹을 수 없었고, 매콤한 고추장에 푹 찍어먹고 싶었다. 또 떡볶이 생각은 왜 그리 나는지. 


그래서 나는 집 근처 LIFE 마트를 찾았다. 근방에서 가장 큰 마트인데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봐도 고추장과 초고추장은 찾아볼 수 없었다. 눈에 띄는 건 신라면뿐이었다.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다. 마트에 1인분 짜리 맛있는 회들이 즐비했지만 초장 맛으로 회를 먹는 나에게는 그저 그림의 떡일 뿐이었다.

그래도 많이 샀네?

그 뒤로도 여러 마트나 편의점에서 틈 날 때마다 고추장과 초고추장을 찾았지만 교토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원래 이런 건지 내가 못 찾는 건지. 추측컨대 일본의 식문화가 매운 음식을 기피하기 때문에 고추장과 초고추장에 대한 수요가 적어 수입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아닐까? 이치란 라멘의 경우 매운맛 강도를 5배로 설정해도 덜 맵다고 느끼는 수준이니까.


한 번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가실 줄을 몰랐다. 아마 이 갈증은 돌아가는 그 날까지 이어지지 않을까. 진짜 그리워.


아, 그것보다 더 그리운 게 한 가지 더 있다.



복희야

집에서 내가 돌아오기 만을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을 복희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복희의 털 감촉이 너무 그립고, 숙소에 들어설 때마다 집에 돌아오면 가장 먼저 꼬리를 흔들며 반기는 복희의 모습이 겹쳐 떠올라 마음 한편이 시렸다. 

하루 종일 돌아다녀 피곤해진 몸을 이끌고 버스 정류장에 서 있을 때, 누가 성질 급한 한국인 아니랄까 봐 15분 정도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을 견디기 힘들어하던 와중, 문득 복희 생각이 들었다. 나는 고작 이 15분을 기다리는 것조차 견디기 힘든 데 하루 종일 집에 누군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는 복희는 어떠한 심정일까? 


집에 내가 가장 먼저 돌아오면 복희는 문 앞까지 달려 나와 빨리 열라며 문을 긁어댄다. 그리고 문이 열리는 순간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며 꼬리를 세차게 흔들어 댄다. 얼마나 기다렸으면. 얼마나 보고 싶었으면.

무언가에 기약이 없다면 우리는 얼마나 혼란스러울까? 만나기로 한 날 약속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다면, 그 기다림은 얼마나 지루하고 답답한 일이 될까? 면접을 본 곳에 합격 발표가 기약이 없다면, 얼마나 많은 초조함과 불안함 속에 그 시간을 견뎌야 할까?


그리고 그 기약 없는 기다림을 매일매일 반복하는 복희는 얼마나 많은 어둠 속에서 불안함과 초조함이 뒤섞인 감정을 끌어안고 견디며 살아가는 것일까? 그리고 그것을 평생 반복해야 하는 그 아득함을 복희는 아는 것일까? 나는 그것을 헤아릴 수 있나?

반려견들이 잠이 많은 이유는 아마 그 무던히도 길고 아득한 시간을 견디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 아닐까? 그리고 그런 고민과 물음들이 나를 휘감을 때, 복희가 너무나도 보고 싶었다.


미안했다. 우리는 대화할 수 있고, 정할 수 있고, 약속할 수 있다. 나는 그렇다. 그렇지만 복희에게 그럴 수 없다는 것이 너무 미안했다. 내가 30일 뒤에 돌아가니 걱정 말고 푹 쉬고 있으라고. 그렇게 말할 수 없다는 것이 너무 슬펐다. 매일 밖에서 나는 발자국 소리에 귀를 기울일 복희를 생각하면 심란한 마음이 가시질 않는다.

 

곧 돌아갈게!

조금만 더 견뎌줬으면 한다고 말하고 싶다. 곧 돌아간다고. 네가 너무 보고 싶다고. 품 안에 안겨서 편히 잠들 수 있도록 팔을 내어주겠다고. 


돌아가면 복희와 하루 종일 함께하며 산책하고 장난치고 같이 잠들고 싶다. 그 아득한 기다림의 순간들을 복희가 머릿속에서 지울 수 있을 정도로 정신없는 하루를 선물하고 싶다.


오늘은 유난히 네가 너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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