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고학년과피해의식>
고학년이 되어가면서 그에겐 패턴이 생기기 시작했다.
학기초에 바짝 받은 관심으로 학기초 임원,
학기말엔 외로이 홀로 남거나,
의견이 강한 적이 생겨 관계에 문제가 생긴다.
그때부터 생겨나기 시작했다.
피해의식
자존감이 하늘을 찌르며 학기초를 맞이하고,
급하강 후 바닥을 치며 학기말을 맞이한다.
곁에 남아있는 친구는 불행 중 다행인지, 단짝 단한명은 있다.
영역을 넓히려는 시도를 항시하지만, 쉽지 않다.
엄마가 보는 아들은 지극히 소극적인 성격임에도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고,
본인의 텐션이 올라가 있을때의 그것이 진짜 자신의 성격이라고 믿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면서
얼마남아있지도 않은 자존감을 셀프로 갉아먹는다.
그러고 와선, 집에서 풀어낸다.
이유없는 짜증은 없었다. 늘 그의 짜증에는 고난과 역경이라는 원인이 있다.
이런 아이들의 특징이라면 특징인데, 눈치없고 밀당못하고 융통성없다.
가장 못 하는게 역지사지
고학년이 되어갈수록 이부분이 부각되면서 친구들이 하나둘 떨어져 나가게된다.
아이들은 빠르게 자라고 우리아이는 더디게 자라난다.
전두엽이 너 참 중요하구나.
부모의 개입이 필요한지는 당사자만이 결정할수있다.
처음 몇번은 개입을 전혀 하지 않았다.
스스로 해결해나가길 바래서였고, 유난스럽고싶지 않았다.
모든문제는 선택의 연속이다.
어떤선택이 옳고 그른지는 아무도 알수없다.
무슨 선택을 하던 후회는 남기마련이다.
그러다, 아들이 원해서 개입을 하였고, 좋은 결과는 아니었지만 아들에게 힘을 주긴 하였던거 같다.
그런데, 내가 그런 선택을 했던건 엄마의 노력을 알고 느껴주길 바래서였고, 그에 따른 보람은 없었다.
그 후에도 몇번 반복되었다. 약간씩 결이 달라지긴하였지만,
비슷한 맥락에서 아이들에게 좋지않은 인상을 심어주곤했다.
이런 문제가 생길때마다 아들의 상황은 항상 억울했다.
학교에서 문제가 생겨 선생님한테 불려가 혼날때도 늘 자기만 억울하게 혼난다고 한다.
어떻게 늘 너만 억울하냐고 물어도 섭섭해한다.
원하는대로 (내 적성이 진짜 아님에도)
상대엄마한테 따져도 보고, 선생님께 부탁도 드려보고 다해보지만 그렇다고 상황이 좋아질리 없다.
아이가 바뀌려하지않으면 아무것도 바뀌는건 없다.
엄마가 아무리 아등바등거려봐야 아이가 꾸준하게 여전하면 상황은 늘 같다.
엄마는
정답을 줄수도 없고 해결도 못해준다.
원하는 도움을 주어도 돌아오는건 원망과 피해의식.
이런 일들의 반복은 부모에게도 타격감이 물론 있다.
여러가지 복잡한 생각들을 하게되고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게되며 걱정이 한가득된채로 마무리되어진다.
이 아이의 넘칠 듯 찰랑찰랑하던 고학년의 마무리는 이렇게 되었다.
너무 많은 기대와 희망을 그에게 쏟았던 내탓이다.
니가 무슨 잘못이 있겠냐...
그렇게 아슬아슬한 초등학교를 졸업식을 마치고,
악마의 겨울방학을 보낸뒤였다.
그가 흑화되기 시작한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