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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인의 정원 Sep 13. 2024

3화 : 살아있는 것 자체가 기적입니다.

3화 : 살아있는 것 자체가 기적입니다


고대 안산병원 응급실에는

친동생과 사촌동생이 마중나와 있었다.

익숙한 얼굴을 보고서야

어쩌면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 라는

미약한 희망이 생겼다.


응급실에 들어가자 마자

의사들은 내 주변을 둘러싸고

맥박과 호흡을 체크함과 동시에

입고 있던 옷을 가위로 잘라내고

서둘러 환자복을 입혔다.


감각 있으세요?
손 다리 힘 주고 한번 번쩍 들어보세요

경추 골절이 가져올 수 있는

가장 무서운 후유증 중 하나,

전신마비의 유무를 끊임없이

확인하는 과정이 이루어졌다.


곧바로 CT와, X-RAY, MRI까지

할 수 있는 모든 검사를 마치고 나는

밤 10시가 넘어서야

NYCU,  신경외과 준중환자실로 옮겨졌다.


폭풍우처럼 지나간 24시간,

친동생과 사촌동생은 하루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한 나와 남편이

걱정된다며 편의점에서 간단한

음식들을 사다주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담당교수님으로부터

검사결과를 들을 수 있었다.


살아있는 것 자체가 기적이네요.

경추 1번 2번이 골절된 상태인데

경추 2번은 호흡중추라 잘못 부러지면

그 자리에서 사망합니다.

경추 1번은 심하게 부러져 뼛조각이

뼈 안으로 들어간 상태고요.

그런데 이렇게 살아계시고

마비가 없으신거 보니

하늘이 도왔네요. 천운입니다.

마비가 없으니,

우선 수술을 피하고

자연 유합을 기다려보지요.

수술을 피할 수 있다는 것 만으로

행운입니다.

아찔했다.

누구에는 정말

그 무엇도 아닐,


찰나같은 2분의 시간이

나의 생사를 좌지우지한

중대한 순간이었었다니...


순간 머리 위로 번개를 맞은 듯 했다.

예상치 못한 무시무시한 검사 결과에

가슴이 쿵 내려앉는 것 같았다.


앞으로 당분간은 보조기를 착용한 채

아무것도 하지말고 누워만 계세요.

최소 일주일은 버티셔야합니다.


교수님이 자리를 뜨자 마자

나와 남편은 약속한 듯이 서로를 쳐다보았다.

우리 두 사람 눈가에 모두 눈물이 맺혔다.


사고 당시에는 전혀 몰랐지만

차 안에서 눈을 떴을 때,

내 두 발로 차 밖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는 것

그 자체가 엄청난 기적이었다.


주르르 눈물이 흘러내렸다.


살았다는 안도감도 안도감이었지만

그것보다 목숨을 돌려받은 댓가로

치뤄야 할 앞으로의 시련이

너무나 예상되고 두려워서였다.


가까스로 목숨은 구했지만

지금부터 펼쳐질

감히 상상할 수도 없을 고난을

내가 무슨 수로 헤쳐나간단 말인가....


죽음을 미루고 연장된 삶은

기적과 같은 축복인 동시에

나에게 무시무시한 두려움과 공포로 다가왔다.



그렇게 사고가 난 지

3일째 되던 날인 5월 30일을 시작으로

나에겐 24시간

똑바로 누워서만 지내는

고목나무 같은 삶이 주어졌다.


목을 자유롭게 가눌 수 없기에

몸을 옆으로 누일 수도 없고

앉을 수도 일어날 수도 없었던 나는

밥도 물도 모두 누워서 먹고

소변도 대변도 모두 누워서 해결해야했다.


남편이나 요양사의 도움이 없다면

단 1초도 보낼 수 없는 일상….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오직

병실 천장에 박힌 전등을 쳐다보는 일 뿐이었다.


그것이 그날,

단 2분의 사고가 가져온,

목숨을 건지고 받은

혹독한 대가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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