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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인의 정원 Sep 11. 2024

2화: 헬기 좀 불러주세요

2화: 헬기 좀 불러주세요

목을 절대 움직이지 마세요

어떤 이유에도 좌우로 움직여선 안됩니다.


의료진은 나에게

보호기구를 차고

가만히 누워만 있으라고 했다.


단순한 목 부상 정도라고 생각했던 나는

목 움직임을 강력하게 제한하는

의료진의 명령을 듣고서야

뭔가 심각한 일이 내 몸에 벌어졌음을

미약하게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응급실에 실려온 지 몇 시간이 지났을까.

얼떨떨함 속에

여전히 현실감이 떨어진 채로

엑스레이와 CT결과를 기다리던 나에게

응급실 레지던트 의사가 다급히 뛰어왔다.



어.. 이거 생각보다 큰일인데요.

경추가 부러진 것 같아요.

여기서는 치료 못합니다.

육지로 올라가셔야해요.

수술을 해야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네???? 골절이라고요?

여기서 치료가 안된다고요?

저희 지금 울릉도 온지 하루도 안 됐는데….


심해봤자, 울릉도에서 몇 주 입원치료 후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나는

난생 처음 들어보는 ‘골절’이라는 말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뭔가 단단한 무언가로

머리를 세게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랄까.


이 몸으로, 다시 육지를 가야한다고?

경추 골절이 확인되자마자 간호사들의

손과 발걸음이 빨라졌다.


수시로 내 침상에 들러

팔다리에 저림과 마비 증상이

있지는 않은지 체크하기 시작했다.


애초에 사고 당시에도

극심한 목 통증만 있을 뿐

내 발로 목을 잡고 차 밖으로 걸어나왔었기에

경추 골절이 가져올 수 있는

숱한 위험 요소에 대해서는 생각조차 하지 못한 상태였다.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섬에

뱃멀미를 견디며 도착한 지 6시간만에

목이 부러진 채로 육지로의 이송을

기다려야 하는 이 기상천외한 상황


순간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 건

단 하나, 이 문장이었다.



어떻게든 살아야겠다


작은 일에는 삼일 밤을 설치며

고민을 하지만, 정작 아주 큰 일 앞에서는

무서우리만큼 침착하고 대담해지는 나


나를 잘 알고 지내던 친구들이

하나 같이 입 모아 말하는 나의 특징이

툭 하고 고개를 내밀었다.

응급실 의사를 급히 불러 물었다.


그럼 저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요?

오늘은 이미 늦었고,

내일 점심 때나 출발하는 배를 타셔야 할 것 같습니다.


내일 점심이요?


당장 수술이 필요할 수도 있다는

위급한 상황이라면서도

내일 점심까지 기다리라는 의사의 말은

납득하기 어려웠다.


오늘 밤이라도 바로

육지로 호송할 수 없을까요?


배가 없어요.


그럼 헬기라도 띄워주세요.


헬기는 너무 위험해요.

경추 손상이라

배로 가는 것이 오히려 안전합니다.

지금은 최대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안정을 취해야해요.


무섭고 절망적인 상황에서

어떻게든 하루 빨리 이 연고 없는 섬에서 벗어나

서울로 가고 싶었던 나는

헬기를 띄워달라는 말을 끊임없이 반복할 수

밖에 없었다.


1분 1초가 급한 상황

심지어 수술까지 해야 한다면서도

헬기를 굳이 띄워주지 않고

배를 고집하려는 의료진의 의도를

도저히 당시에는 이해할 수 없었다.


(물론, 지금은 십분 이해한다. 그리고

그때의 그 결정이 지금의 나를

살렸다라고도 생각한다.)


그렇게 어쩔 수 없이 결정 된

익일 배편 호송.


사고 당시 시각은 저녁 6시 전후

저녁을 먹고 난 사고라

다행히 배는 고프지 않았지만

다음날까지 걱정 속에서 뜬 눈으로

밤을 보내야한다는 사실이

오히려 나와 남편

모두에게 더 큰 고통으로 다가왔다.


목을 가눌 수 없으니 대소변은 당연히

침대에서 해결할 수 밖에 없었다.

영유아 시절 이외에는 차본 적도 없는

기저귀를 찼다.


30년 가까이 착용해 온 생리대와는

차원이 다른 묘함이었다.

누워서 기저귀에 소변을 본다는 행위가

익숙하지 않아 몇 번이고

소변보기를 실패했다.


나의 투덜거림에 간호사는

경추 골절로 인해 신경이 마비되면

소변 조절을 하지 못해

참지 못하고 새는 경우가 있는데,


지금은 누고 싶어도

소변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은 오히려

신경이 살아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며

나에게 이상한 위로를 건네주었다



그렇게 10년 같은 밤을 보내고

다음날 아침이 되었다.

눈을 떠보니 처음 보는 아저씨 한 분이

내 옆을 지키고 계셨다.


안녕하세요. 제가 울릉의료원 병원장입니다.

간밤에 헬기이송 요청하신 내용 들었습니다.

저희도 마음 같아선 헬기 불러드리고 싶지만

지금 제 판단에는 돈과 고생을 떠나

배가 훨씬 안전할 것 같아요.

헬기는 택시가 아닙니다.

목숨을 걸고 타는 운송수단이에요.

지금은 누워서 배로 가시는게

혹시나 발생할 수 있는

신경손상을 막을 수 있는

제일 나은 방법입니다.

그렇게 이해하시고

마음 편히 기다려주세요.

대신, 부족하지만 배편으로

저희 쪽의 의료진을

한 명 붙여드리겠습니다.

육지까지 안전하게

만의 하나 발생할 수 있는

위험상황에 대비할 수 있게

저희도 노력하겠습니다.




1시가 되어서야 나는

운반차에 온 몸이 결박된 채로

강릉으로 향하는 배에 몸을 싣었다.


인생지사 새옹지마라는 옛 말이

바로 이런 상황을 뜻하는 거였나?


앞으로 3시간 반

분명 앉아서 도착한 울릉도였는데

다시 육지로 돌아갈 땐 이렇게

누워 꼼짝달싹 못하는 상태가 되다니


그 순간,

경추가 골절되었다는 사실보다

목을 감싸는 극심한 고통보다

나를 더 두렵게 만들었던 것은


강릉에서 울릉도로 오는 배편에서 느꼈던

미칠듯한 뱃멀미였다.



제정신으로 몸이 멀쩡했을 때야

어떻게 꾸역꾸역 구토감을 참으며

왔겠지만, 이렇게 사지가 결박된 채로

양쪽 고개를 돌릴 수도 없이 누운 상태로

다시 또 그 고통을 이겨내야 한다니...


그것이 더 무서웠다. 정말 두려웠다.


3시간 반이 훌쩍 넘어서야 도착한 강릉항

강릉항에 도착하기까지 걸린 3시간 반의

운항 시간동안 느꼈던 뱃멀미는

지금까지의 인생을 통틀어

가장 고통스러운 기억으로 남아있다.


고개를 돌릴 수 없어 내 얼굴 위에다

구토를 해야 했고 그것을 옆에서 연신 닦느라

정신이 없었던 남편…


그 뱃속에서 남겨진

처참했던 장면은 사고 3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사라지지 않고 내 뇌리에

단단하게 남아있다.


가까스레 도착한 육지

강릉항에는 미리 섭외한 사설 앰블란스 차량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도착하자마자 다시 한 번 더 나는

구급차량을 타고 강릉에서 고대 안산병원으로

이송되었다.


3시간 반의 뱃멀미에 이어

또 다시 시작된 1시간 반의

구급차량이동...


그렇게 울릉도에서 출발한지

장장 5시간이 넘어서야

육지로 도착할 수 있었다.


나는 그렇게

2024년 5월 29일 저녁 7시경

울릉도에서 교통사고를 당한지

꼬박 24시간만에

고대 안산병원 응급실로

후송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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