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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인의 정원 Sep 06. 2024

1화: 죽음에서 돌아오기까지 단 2분

나는 로보트가 되었다.


전국 방방곡곡,

해외 각지를 누비며 자유롭게 살던

여행 크리에이터가 단 2분 만에 교통사고로

중증 경추 골절환자가 되었습니다.


사망과 전신마비의 가능성을 천운으로 피하고

죽음과 장애의 문턱에서

기적적으로 살아 돌아왔습니다.


전치 24주 입원 판정을 받고,

머리와 목 상체를 모두 압박하는

고강도의 보조기를 착용하며 지내는 24시간.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병상 위에서 펼쳐지는,

지금까지와 전혀 다른 맛의

나 자신과 떠나는 180일간의 이상한 여행

그 이상하고도 슬픈

여행 일지를 여러분들과 나누고자 합니다.




<1화: > 죽음에서 돌아올 때까지 단 2분


단, 2분이었다.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기적적으로 돌아온 시간이


올해 초, 유산의 아픔을 잊기 위해

전국 방방곡곡을 여행 다녔다.



첫 아이를 잃은 슬픔을 서툴게나마

자신의 방식으로 위로해주고 싶은

남편의 자그마한 플랜이었다.


월미도, 속초,제천 가평을 거쳐

머나먼 나라 중국까지

국내 해외 가릴 것 없이

발길이 닿는 곳이라면

어디든 갔고,

놀 수 있는 만큼 놀았다.


맛있는 것을 먹고,

아름다운 것을 보는 것을

좋아하는 우리는

여행의 과정 속에서

신혼의 즐거움을

충분히 만끽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때는 전혀 몰랐다…


그 원대한 플랜의 마지막 목적지에서

나의 생사가 갈릴 줄은….




울릉도였다.


남편과 나, 모두 초행이었던 그 곳




사실, 떠나기 전날 이상하리만큼

그 곳에 가기 싫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번이고 여행을

미루거나 무를까

고민을 했지만,

나의 회복을 기대하고

나의 위로가 되어주고 싶어하는

남편의 마음을

존중해주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컸다.


3시간 넘는 뱃멀미를 하고

겨우 도착한 그 곳은 생각보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곳이었다.



너무 아름답지만, 도달하기까지

극심한 뱃멀미로 인한

구토욕구를 참아내야했었기에

다음에 다시 이 곳에 오게 된다면

그것은 반드시 울릉도에 공항이 생긴

이후가 되리라 다짐했다.


렌터카를 빌려 숙소로 돌아가는 길

한달 가까이 지속된 여행으로 인해

켜켜히 쌓인 여독,

그리고 고단한 뱃멀미로 인한 피로가

순식간에 온 몸을 감쌌다.


“나 너무 피곤하다…

조금만 눈 좀 붙여도 될까요?”

“그래요. 숙소는 금방이니까 잠시 자둬요”


말이 끝나자마자 깊은 잠에 빠져든 것 같다.

도저히 이겨낼 수 없는 졸음이었다.

그리고….2-3분 지났을까?


다시 눈을 떴을 땐, 터널 입구

공사 잔해로 보이는

돌덩이 앞이었다.



앞 좌석 에어백이 모두 터져있었고

렌터카 앞뒤로 사정없이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렌터카 사고로 자동 접수된 119

잠에서 깬 내 귓가에 제일 먼저

들린 목소리는 남편의 것도 나의 것도 아닌

119 구급대원의 목소리였다.




“거기가 어딘가요?”

“많이 다치신 분 있나요?”

“차량 접수 됬으니 119 금방 갈겁니다.

기다려주세요”


태어나서 아주 가벼운

접촉사고 조차 겪어본 적 없는

나로써는 너무나 당혹스러운 상황이었다.


어찌 된 일인지

설명해달라는 나의

간절한 응시에도 남편은 넋이 나간채

운전석에서 황망히

나를 쳐다보고만 있었다.


“이게 뭐에요?”


내가 사고 이후 뱉은

첫마디였다.


목에서부터 정수리까지

뒷통수를 관통하는

극심한 고통이 느껴졌지만


그럼에도 그것보다

도대체 내가 깜빡 잠들어버린

그 2분 간에

무슨 일이 일어나게 된 건지

그것이 미치도록

궁금해서 던진 말이었다.


“너무 미안해요.

잠깐 졸았어요”


떨리는 목소리로 남편이

간신히 대답했다.


“얼른 밖으로 나와요.

폭발할 것 같아”


내가 잠시 눈을 붙였던 그 2분 간,

단 2분간의 시간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는

지금도 정확히는 모른다.


(사고의 트라우마로 인해 남편은

그날의 일을 입밖으로 꺼내는 것을

아직도 힘들어한다)


아픔을 뒤로하고 붙잡은 정신

차량 앞뒤로 피어오르는 연기를 보며

금방이라도 폭발해버릴 것 같다는 두려움에

차량 밖으로 급히 빠져나왔다는 기억 밖에는...




그렇게 부서지고 망가진 차 밖으로

도망치듯이 나와 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차와 119가 도착했다.


단 1초도 목을 세울 수 조차 없는

극심한 고통 속에 나는 한 손으로

뒷통수를 잡으며 소리쳤다.


“저 목이 너무 아파 죽을 것 같아요...

어떻게 좀 해주세요”


나의 외침을 들은 119 구급대원은

서둘리 차량으로 돌아가

목보호대를 들고 왔다.



시간이 갈수록 고통은 심해졌다.

내 머리가 이토록 무거운 존재였던가.


태어나서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무시무시한 무게감이

내 어깨를 짓눌렀다.


그렇게 목보호대를 찬 채

119 차량으로

어디론가 이송이 됐다.


울릉도에 온 적도,

울릉도에 관심도 없었던 나는

사고 당시만 해도 울릉도가 정확히

어떤 위치에 자리한

어느정도 규모의 섬인지 알지 못했다.


그래서 당연히 앰블란스를 타게 되면

의례 그렇듯, 육지처럼

대학병원 정도의

상급병원으로  안전히

후송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상급병원에 도착하면

모든 것은

마법처럼 안정을 찾을 것이라고

내 자신을 위로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참 미련했다.

하지만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을지도.


그때는 울릉도가 어떤 곳인지

전혀 몰랐으니까.


울릉도에서 사고가 나면

갈 수 있는 병원이

단 한군데 밖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젼혀 몰랐으니까 말이다.


애초에 나는 어떤 선택지도

없었던 것이었다.


울릉도에는 다치면 달려갈 곳이

 단 한군데 뿐이다.


나는 그렇게 ‘보건소급’으로 분류되어 있는

‘울릉의료원’으로

2024년 5월 28일, 6시경 후송되었다.



브런치북
 <나는 로보트가 되었다>는
매주 수,금요일에 연재됩니다.
많은 관심과 응원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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