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견과 가을 나기
지난 주말 클로이가 가을맞이 미용을 했다. 나이가 열세 살이나 되고 보니 미용실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손님이 되었다. 지난 봄에 미용실을 옮겨야 할 사정이 생겨 전화를 돌려 보니, 클로이 나이가 너무 많다며 의사가 있는 미용실로 가라고 했다. 생각해 보니 그전에 다니던 미용실은 동물병원과 연계된 곳이었다. 다행히 한 곳에 예약이 되어 갔는데, 나이를 알고도 흔쾌히 받아주었다. 나이 많다고 차별도 하지 않고, 미용도 예쁘게 해 주셔서 이 미용실에 단골을 트고 일 년에 두세 번 미용을 시키고 있다.
풍성한 이중모를 가진 클로이는 다양한 스타일로 미용이 가능하지만 늘 3mm 클리퍼 컷을 고수해 왔다. 가위컷은 가격도 비싸고, 미용사의 솜씨에 따라 결과가 크게 달라질 수도 있고, 클로이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것 같다는 핑계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일정하게 3mm만 남기고 털을 싹 민다. 이렇게 알몸을 만들어 놓으면 클로이는 전혀 다른 강아지가 된다. 털이 풍성할 때는 여우 같다는 소리를 많이 듣지만, 미용을 하고 나오면 디즈니의 사슴 캐릭터인 밤비 같다는 소릴 많이 듣는다.
털이 길거나 짧거나 상관없이 클로이는 늘 예쁘다. 심지어 눈곱을 떼지 않아도 예쁘다. 타고 난 미모의 위력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클로이를 통해 깨닫는다. 길을 가다 마주치는 사람들 중에 미소를 띠고 바라보거나, 예쁘다고 한 마디 건네거나, 고개를 돌려가며 한 번 더 쳐다보는 사람도 많다. 나 자신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반응이다. 예쁘게 타고 난 사람들은 평생 이런 대접을 받는 것인가. 사람이라면 이런 관심이 부담스럽기도 하겠지만, 클로이는 이런 관심을 온전히 즐기는 것 같다. 말 그대로 관종이다.
미용을 하고 알몸이 되면 클로이의 몸짓과 표정에서 부끄러움이 느껴진다. 순전히 내 생각이겠지만 말이다. 그래서 미용을 할 때마다 옷을 한 벌 사 입힌다. 마트에 갔더니 마침 패딩 조끼가 색깔별로 나와 있다. 흰색도 예쁘고, 네이비도 예쁘고, 빨강도 예뻤지만, 이번엔 노랑으로 골랐다. 때는 좀 타겠지만 한 번쯤은 노랑을 입혀보고 싶었다. 노란 패딩을 입고 곱게 물든 낙엽이 수북이 쌓인 길을 걷는 클로이는 보호색이라도 입은 듯 풍경 속에 녹아든다. 클로이를 보고 감탄하는 사람이 유난히 많은 것 같다.
클로이가 건강한 편에 속하기는 해도 열세 살이라는 나이를 아주 감출 수는 없다. 가만히 서 있으면 뒷다리가 후들거리고, 뒷다리에 힘이 없어서인지 아주 가끔이지만 소변 실수도 한다. 어제는 배탈이 났는지 밤사이 구토 설사를 하는 통에 심야 -새벽 산책을 세 번이나 나갔다. 대소변을 집 밖에서 하도록 훈련받은 덕에 자는 사람을 깨워서 밖에 나가자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남편은 피곤에 절은 중년 아저씨의 전형적인 모습, 즉 미생 1화에 나오는 오상식 차장 같은 몰골로 출근을 했다. 아픈 노견을 혼자 두고 나갈 수 없어 오늘은 집에서 일을 보고 있는데, 클로이는 하루 종일 잠만 잔다. 상태는 많이 좋아졌는지 방금 나갔던 짧은 산책에서는 변 상태도 괜찮았다.
반려견의 수명도 천차만별이어서 클로이와 동갑인데 벌써 고관절이나 백내장으로 고생하는 아이들을 많이 만난다. 사람도 그렇지만 개들도 나이가 들면 오늘 멀쩡하다고 내일을 장담할 수는 없다고 한다. 클로이가 아프면 외출에서 돌아올 때마다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우리가 자주 걷는 산책로에 낙엽들이 많이도 쌓여 있다. 클로이, 오래오래 건강하고 앞으로도 여러 해의 가을 산책을 함께 하자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