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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돌이빵 May 11. 2023

우리 집엔 늘 '게'가 있다

게를 너무 사랑한 사람

5월의 황금연휴 시작이었던 날, 나는 5시 넘어 일어나서 부지런히 강원도에 갈 준비를 했다. 그건 바로 게를 먹기 위해서다. 동해에 있는 묵호항에 가면 갓 잡아 올린 신선하고 맛있는 게를 저렴하게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원래 겨울마다 잊지 않고 가는 데, 이번 겨울엔 잦은 해외출장으로 엄두를 내지 못했다.


대게의 철은 한 겨울이다. 12월~2월쯤 동해에 가면 맛있는 대게를 실컷 먹을 수 있다. 지만 지금 이 글을 보고 지금은 게를 먹을 수 없다고 너무 아쉬워하지 않아도 된다. 지금은 조금 아쉬운 데로 홍게를 먹을 수 있다. 홍게의 제철은 제법 길어서 한 여름 금어기를 제외하면 대부분 먹을 수 있다.


도대체 게를 얼마나 좋아하면 새벽부터 250여 km를 달려갈 열정이 있느냐고 물을 수 있겠지만 나는 정말로 게를 좋아한다. 주머니가 궁했던 20대 시절엔 누가 게를 사주거나 부모님이 게를 먹자고 하면 군소리 안 하고 달려갔으며, 돈을 벌고 나서는 세계 곳곳을 누비면서 게요리를 부수고 다녔다.


물가가 싼 동남아에 가도 게요리만큼은 제법 대단한 가격을 자랑한다. 말레이시아나 싱가포르의 칠리크랩도 주머니 가벼운 여행자가 먹기 힘들다. 의외로 호주의 브리즈번에서 우연히 저렴한 칠리크랩을 먹은 적도 있는데, 아, 침 넘어간다. 삿포로에서 무제한으로 먹겠다고 게 뷔페도 가보고 오사카에 큰 게 모형으로 유명한 카니도라쿠도 가봤지만 역시 나에게 게는 동해에서 갓 잡은 걸 쪄먹는 게 최고다.


이 아름다운 자태를 보라. 이만한 게 무더기가 5만 원이다. 물론 찜비와 상차림비는 별도다. 하지만 모든 것을 다 포함해서 3명 기준 10만 원이면 배 터지게 몇 주는 게먹으러가자는 말 안 나올 정도로 먹을 수 있다. 몇 달 정도는 아니고.


하지만 늘 동해에 가기는 수도권에 사는 나로는 쉽지 않은 일이다. 내가 아무리 여행을 많이 다녀도 매번 동해에 가서 게를 먹을 수는 없다. 그리고 저걸 파 먹는 일도 보통 일이 아니다. 그날 저 게를 남편과 둘이 먹고 집에 포장해 온 다음에 운전한 몸을 이끌고 얼리면 맛이 없어지는 내장을 위해 내장과 몸통을 게포크로 파면서 이게 무슨 짓인가 싶었다. 하지만 맛있는 걸 어쩐담.

 

이렇게 게를 먹는 일은 많은 노동력과 시간, 그리고 한번 먹으러 가면 끝을 봐야 하는 스타일이다. 하지만 퇴근하고 가볍게 게다리 몇 개 씹고 싶을 때도 있지 않은가? 그리고 동해에서 먹을 때의 아쉬운 점은 와인과 먹을 수 없다는 거다. 반입 가능한 곳도 있겠지만 쉽지 않다.


그래서 나는 냉동실에 늘 게를 쟁여 놓는다. 러시아 대게를 자숙 후 냉동해 파는 업체를 애용하는데, 엄청나게 큰 다리의 위용을 볼 수 있다. 식탁에 인덕션과 큰 냄비를 가져다 놓고, 게다리를 5개 혹은 10개씩 6~7분간 데쳐서 화이트 와인이랑 한입 먹으면 이게 사는 맛인가 한다.

냉동 게의 단점은 내장이 없고 조금 퍽퍽한 살 맛이 느껴질 수 있지만 큰 다리를 저렴한 가격에 먹을 수 있고 사시사철 아무 때나 조금씩 꺼내먹을 수도 있다. 계속 따뜻한 게살을 먹을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신 사진처럼 잘라져서 오기 때문에 몸통 살은 데치면서 물과 만나 싱겁고 맛없어지니 파서 모아놨다가 게살볶음밥이나 게살 수프, 게살 라면 등에 활용한다.


이렇게 게를 사랑하지만 나에게는 갑각류 알레르기가 있다. 심하지 않고 컨디션에 따라 발현 빈도가 다르기 때문에 그냥 먹어버리지만 가끔 입술이 붓거나 소화기 장애를 일으킴에도 불구하고 나의 게 사랑은 멈출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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