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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돌이빵 Mar 13. 2020

홋카이도에 가면 꼭 이걸 드세요

그건 바로 징기스칸

삼겹살, 소고기, 참치, 양고기, 곱창.. 등 여러 가지 음식 이름 말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음식 이름 대기는 아니고, 회식 메뉴를 정하는 중이다. 의견이 모아지지 않아 지지부진한 가운데

양고기는 냄새 나서 별로지 않아?

라는 소리가 들려온다. '아, 내가 양고기 진짜 잘하는 데 아는데' 가자고 할 수도 없고. 바로 일본 홋카이도 삿포로다.


대부분의 일본인들에게도 홋카이도는 예전에는 비행기로만 갈 수 있었고, 지금도 도쿄에서는 신칸센(고속철)으로 5시간이나 걸리는 곳이기 때문에 여행지의 느낌이 강하고 수학여행으로도 많이 가는 지역이다. 겨울에는 하얀 눈과 각종 해산물, 여름에는 라벤더 축제가 열리기로 유명하며 삿포로에서 가까운 오타루는 어릴 적 내가 좋아하던 만화 '미스터 초밥왕' 쇼타의 고향이기도 하다. 하지만 홋카이도에서 정말 유명한 것은 따로 있다. 바로 '징기스칸(ジンギスカン)'이라는 이름의 양고기 요리이다.


<홋카이도 비에이, 양들이 평화롭게 노닐고 있다>


응? 몽골도 아니고 왜 홋카이도에서 징기스칸이 유명하지? 여기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군복의 소재가 양털이었는데, 양털의 수입이 점점 어려워지자 자급하여 공급하기 위해 홋카이도에 양목장을 설치했고 패전한 뒤 남는 양고기 처리를 위해 만들어졌다는 것이 시작이다. 양고기를 굽는 불판이 몽골군 철모에서 유래해서 동그랗다던가, 몽골군이 철모에 고기를 구워 먹었다는 소문도 있고 역시 양고기 요리하면 몽골이어서 징기스칸이라고 이름이 붙었다는 얘기도 있다. 선선하고 넓은 평야지대가 있는 홋카이도는 일본의 양축 산업의 시작을 열기에 적합한 곳이었으며, 경제가 성장하며 일본인들이 새로운 식도락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점점 양고기 문화가 퍼져나갔다. 그런 이유로 삿포로에 가면 양고기를 구워서 파는 징기스칸 요리점을 많이 만날 수 있다.


<동그란 반구 모양이 특징인 징기스칸 양고기 불판>


우리나라의 경우 서늘한 기후와 넓은 목초지가 필요한 양축 산업이 어울리지 않았고, 경제 개발 계획에 따라 60~70년대에 섬유 공업이 활성화되었을 때 서양 양들이 유입되었지만 털을 얻고 남은 성체 양을 도축해 먹었기 때문에 그 시대 분들은 지금도 양고기 하면 누린내를 떠올린다. 20개월 이상의 늙은 양(Mutton)은 성장하면서 지방질에서 카프릴산, 펠라르곤산이 축적되며 야생동물에서 나는 특유의 누린내가 나지만 12개월 이하의 어린양(Lamb)은 연하고 부드러우며 소고기보다 깔끔한 깊은 맛을 낸다.


그러니까 이게 얼마나 맛있냐면 말이다. 아 벌써 침이 나오려고 하네. 먼저 동그란 불판 위에 양 기름으로 불판을 코팅 한 뒤, 불판 주변에는 양파와 파, 마늘을 올리고 그 외의 부분에는 양고기를 올린다. 구워지면서 나오는 기름에 코팅되어 적당히 익은 달달한 양파를 한 두 개 집어먹고 나면 어느새 고기가 다 익는다. 미디엄 정도로 익은 양고기를 고춧가루와 고추가 들어있는 간장에 살짝 찍어 윤기 나는 쌀밥과 함께 입안에 넣고 우물우물 육즙을 느끼면서 삼키자마자 맥주를 한잔 캬! 하면 정말이지 이런 맛있는 음식을 내가 다 먹어보다니, 인생 성공했다는 기분이 절로 든다. 내가 처음 홋카이도에 갔던 때에는 우리나라에 징기스칸 양고기 집이 전무했고 나에게 양고기란 양꼬치가 경험의 전부였다. 하지만 한 번 먹어본 이후 집에 돌아가기 전까지는 이걸 매일 먹어야 한다며 배에 매일 기름칠을 했고, 지방을 가득 안고 집에 돌아왔다.


<지글지글 익어가는 양고기와 맥주>


양꼬치를 먹고 입맛에 맞지 않다고 절레절레하던 사람을 어느 날 목적지를 알려주지 않고 몰래 양고기 집에 데려갔다. 맛있는 걸 먹자면서 양고기 집에 데려왔다며 볼멘소리를 했지만 그래도 이건 정말 맛있으니 한번 먹어보라며 권했다. 반신반의하면서 입에 양고기를 넣던 그의 눈이 반짝하며 내가 처음 양고기를 먹었을 때와 같은 반응을 보였다. '거봐? 맛있지?' 어느새 우리는 3인분을 먹어치우고는 지금도 가끔 맛있는 게 먹고 싶을 때면 '양고기?!' 하며 손뼉을 치게 되었고 그 가게의 단골이 되었다. 순수한 마음은 돼지고기까지고 소고기 사주면 흑심이라는 말이 있다.


 양고기 사주면 트루 러브, 찐사랑이다.


<삿포로의 가장 유명한 징기스칸 양고기집, 다루마>


일본에서 내가 본 징기스칸 양고기는 셀프로 굽는 곳도 있었고 양은 조금 적지만 1인분에 800~1500엔 정도로 조금은 저렴한 편이어서 혼자 오는 사람도 많고 가족, 친구들 모두 다 같이 흔히 즐기는 마치 삼겹살집 같은 분위기다. 홋카이도 마트에서는 징기스칸 불판을 판매하고 홋카이도 대학에서는 전통적으로 잔디밭에서 징기스칸 파티를 할 정도로 향토적인 음식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홋카이도에서도 현지에서 자란 국내산(일본산) 양고기는 비싸서 보통 호주산, 뉴질랜드산을 쓰고 있다는 거.


다행히 지금은 우리나라에  손가락을 셀 수도 없이 많은 징기스칸 양고기 집이 등장했고, 홍대, 강남 등 번화가를 중심으로 퍼져나갔다. 하지만 한국은 고급진 분위기를 추구해서 그런지, 항상 직원이 구워주는 시스템이어서 그런지 꽤나 비싼 가격이 책정되어 있어 자주 가기에는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게다가 징기스칸 양고기 요리의 인기에 힘입어 우후죽순 생긴 곳이 많아 모든 곳이 황홀한 맛을 주지는 않으니 잘 골라서 가자. 내 경험에는 같은 이름을 가진 체인점이라도 직원 응대나 고기를 굽는 스킬에 따라 맛이 달라지기도 했다. 하지만 확실한 건 맛난 이 양고기를 입에 넣으면 이런 말이 절로 나올 것이다. '캬 진짜 내가 이 맛에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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