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곰돌이빵 Feb 12. 2020

배 타고 떠나는 고양이 사파리, 가봤니?

사람보다 고양이가 많은 섬, 마쓰야마 아오시마

일본 에히메현 마쓰야마에서 조금 들어가면 아오시마(靑島 : 청도)라는 외딴섬이 있다. 규슈 미야자키의 아오시마와 한자와 발음이 모두 똑같고 중국의 칭다오와는 한자가 같다. 푸른 섬이라는 뜻을 가진 아오시마에서는 푸른 하늘과 푸른 바다와  푸른 선을 만날 수 있다.


푸른 선은 마을 주민들의 생활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방문객은 그 구역 내로만 다니도록 되어있다. 인구가 적은 이 조용한 마을이 고양이 섬으로 알려지고는 방문하는 외부 사람들이 많아졌기 때문에 그려진 것이다.


말이 조금이지 고양이 사파리에 입성하는 길은 사실 꽤나 험난하다. 먼저 마쓰야마 역에서 기차를 타고 JR이요나가 하마 역까지 1시간가량 소요된다. 그곳에서 내려 아오시마 항구에서 배를 타고 30분.


하지만 항구에서 아오시마까지의 배는 오전, 오후 단 두 번뿐이다. 게다가 하루 들어갈 수 있는 인원도 34명으로 정해져 있다. 만약 오전에 많은 사람들이 방문한다면 오후 배는 거의 타지 못할 수 도 있다. 왜냐하면 돌아오는 배는 오후에 한 편밖에 없어서 34명이 모두 돌아와야 하기 때문이다.


항구로 돌아오는 배가 오전에도 한 편 있지만, 가자마자 10분 만에 돌아오는 것이기 때문에 관광객에게는 무의미하다.(이곳에는 자판기는커녕 음식점, 숙박 및 편의시설이 전무하다)


<19년, 5월 어느날, 아오시마로 향하는 배>

오후에 출발하는 배를 타러 갔다가 고양이를 볼 기회를 얻지 못할까 봐 오전 배를 타러 가는 길을 선택한다면 두 가지 가혹함에 직면한다.


첫 번째, 항구까지 가는 기차는  6시 첫 차 밖에 선택의 여지가 없다. 두 번째 차를 타면 오전 배보다 5분 늦게 도착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 돌아오는 배 시간까지 8시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고양이와 바다만 구경해야 한다. 둘레가 5km도 안 되는 작은 섬인 데다 식사를 할 곳도 없으며 쉴 곳도 마땅치 않고, 짧은 일정으로 오는 일본 여행 특성상 시간이 아쉬울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신이 이 어려운 여정을 통과해서 아오시마 섬에 온다면 귀여운 고양이들이 이렇게 마중 나와있을 것이다.

< 어서와, 아오시마는 처음이지?>

섬에 내리면 고양이와 소수의 주민이 살고 있는 집, 그리고 나와 같이 배를 타고 온 관광객. 이것이 정말 이 섬의 전부다.

도착하자마자 선착장에서부터 고양이들이 여기저기 펼쳐져 있는 모습이 장관이다. 사교성이 좋은 녀석들은 달려와 머리를 부비기도 하고 배를 보여주기도 한다. 하지만 고양이들이 귀엽다고 지금부터 간식을 꺼내서는 안 된다. 섬의 환경과 그들 나름의 질서 유지를 위해 먹이를 줄 수 있는 공간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바로 이 공터에서만 줄 수 있다.


<아오시마에서 먹이를 나눠주는 곳, 몰려드는 고양이들>

항구에서부터 본 한국분이 고양이 사료를 많이 사 왔다며 나눠주셨다. 방문객끼리 서로 간식을 나누어 고양이들에게 주는 광경은 이곳에서는 흔한 일이다. 그뿐만 아니라 선착장 앞에 있는 작은 마을회관에는 이곳에 왔던 사람들이 다음 사람들을 위해 두고 간 고양이 장난감이나 간식들로 가득 차 있어 혹시 간식을 준비하지 못했어도 괜찮다. 이곳의 고양이들은 늘 먹이를 바치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배가 부르다.


<나도 고양이들이 죽고 못산다는 츄르를 사왔다>

그런데 어쩌다 이 곳은 고양이가 가득한 사파리가 되었을까? 아오시마는 원래 어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사는 마을이었고, 그물을 갉아먹는 쥐들을 잡기 위해 육지에서 고양이를 데려왔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 점점 마을 인구는 줄고, 고양이들의 개체수는 늘어나게 된 것이다. 지금은 사람보다 고양이가 거의 10배나 많다고 한다.


이곳에서 태어난 고양이들은 자동차가 뭔지도 모르는 행복한 삶을 보내지 않을까. 이곳은 쌩쌩 달리는 차도 없고, 고양이들의 천적도 없다. 로드킬에 항상 노출되어 있으며 먹이를 찾아 헤매는 슬픈 운명인 육지의 고양이보다는, 그들끼리 고양이 마을을 이루고 끊임없이 집사들이 찾아오는 이들은 묘생으로 따지면 꽤 성공한 삶이다. 전생에 나라까지는 아니어도 뭔가는 구했을지도 모른다.

언제 내게 달려들었냐는 듯 배가 부르니 아무 곳에나 발라당 누워 자는 고양이들을 보니 떠나기가 아쉬워진다. 다음에 또다시 만날 날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또 다른 집사들이 놀러 와서 충성을 할 거야. 과연 내가 고양이 사파리에 놀러 간 것인지 고양이 마을에 가서 시중을 든 것인지 기분이 '묘(猫)'해진다. 이래서 고양이에게 홀렸다는 말이 나오는 것일까.

이전 08화 주말에 뭐해? 외국가서 술 사오려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