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을 사려면 배 타고 이정도는 가줘야지
"주말에 뭐해?"
"쇼핑 좀 하려고"
"어디로 가는데?"
"배 타고 외국 가서 술 좀 사려고. 술 창고가 바닥을 보이네."
"나도 사러 갈 때 됐는데."
이게 무슨 얘기냐고? 핀란드 사람들의 흔한 대화를 상상해서 각색한 이야기다. 실제로 여러 나라들이 붙어있는 유럽사람들이 외국으로 쇼핑 간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겠지만 말이다.
북유럽의 물가가 높다는 것은 많이 알려진 사실이다. 북유럽은 사회적 지출이 큰 복지국가들이다. 스웨덴의 개인소득세 최고세율은 60%가 넘으며 덴마크는 55% 이상으로 OECD 평균보다 훨씬 높다. 이렇게 높은 세금이 있기 때문에 북유럽 기업들은 소비자들에게 더 높은 가격을 부과해야 이익을 남길 수 있고, 결론적으로 물가가 상승할 수밖에 없다. 그래도 유로화를 사용하는 핀란드의 물가는 노르웨이나 덴마크 등에 비해 낮은 편이지만.
발트 3국 중 하나인 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은 핀란드 헬싱키에서 발트해를 사이에 두고 매우 가깝다.
쾌속선을 타면 2시간 정도면 도착이다. 지도를 봐도 제법 가깝다는 것이 느껴지지 않는가?
탈린의 면세 주류 가격은 헬싱키의 2/3 수준이다. 다만, 2011년 에스토니아가 유로화를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과거에 비해 헬싱키와 탈린과의 물가 차이가 줄어들기는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탈린행 배 안에는 면세 주류를 많이 판매하고 있고, 배를 타고 다시 헬싱키에 내리면 술 쇼핑을 마쳐 마음도 손도 무거운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
페리 요금이 비싸서 손해가 아니냐고? 대략 3만 원 정도면 왕복이 가능하며, 평일 할인 특가 등을 노리면 만원 대로도 왕복이 가능하다고 한다. 하지만 한 번 가는 데에 왕복 4시간 정도를 투자해야 하므로 사람들은 저렇게 술을 궤짝으로 사 올 수밖에 없다. 뽕을 뽑는 것이다. 술 쇼핑을 제외하고도 탈린의 조금 저렴한 물가로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즐기기도 하고, 탈린의 옛 시가지는 올드타운이라고 불리는 중세시대 건물들이 원형 그대로 보존되거나 복원되어 있기에 관광하기도 매우 좋다.
페리를 타고 2시간만 가면 새로운 나라를 만나 볼 수 있으므로 헬싱키에 방문했다면 꼭 한번 탈린을 들러보자. 헬싱키와는 다른 분위기에 빠져들지도 모른다. 또한 핀란드보다 위도가 더 낮은 에스토니아에서는 더 일찍 일몰을 구경할 수도 있다. 여름에 방문했던 핀란드에서는 10시가 되어도 밝았던 반면에 에스토니아에서는 그보다는 조금 이른 일몰을 보며 지구의 신비로움을 체험했던 기억이 난다.
이렇게 매년 800만 번의 여정이 페리로 이루어지기에 헬싱키와 탈린을 잇는 해저터널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해상 이동을 하지 않고 육로로 이동시에는 러시아를 거쳐 800km 나 걸리지만 해저 터널을 통하면 100km로 기차를 타면 30분이면 도달한다고 한다. 2030년 개통을 목표로 추진되고 있다. 1994년에 개통된 유로스타로 유명한 영국과 프랑스를 잇는 채널터널이 50km인 것을 보면 2배의 길이이며, 세상에서 제일 긴 해저터널이 될 것이다. 다음번에 가보고 싶은 발트 3국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여행을 할 때에는 해저터널로 핀란드에 방문해보길 바라본다.
아, 사람들이 많이 사길래 술 쇼핑은 나도 해왔다. 아직도 먹지 못했지만 말이다.
참고 문헌 : 위키피디아 https://en.wikipedia.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