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과 술

뻔한 술 이야기 - 18

by 시그리드


행복하기 위한 3가지 조건

얼마 전 사람이 행복하기 위한 3가지 조건에 대한 글을 읽었는데, 그 조건들은 다음과 같다.


내가 스스로 선택하는 ‘자율성’

배워가면서 더 나아졌다고 느끼는 ‘성취감’

마음 맞는 사람이 나를 알아주는 ‘연결감’


곱씹어볼수록 너무나도 맞는 말이어서, 마음속에 저장하고 또 저장했다.

나의 경우는, 이 3가지 조건이 충족이 되지 않을 때마다 불행함을 느꼈고 충족되는 것이 불가능함을 깨달았을 때 회사를 떠났으니까. 특히 내가 스스로 선택하는 행위의 중요성은 꽤 컸다. 누군가가 시켜서,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내 의지에 의해서 하는 것들은 대체적으로 성취감으로 이어질 때가 많다. 그 와중에 운이 좋으면, 좋은 동료들 혹은 상사를 만나 인정을 받고 더 충만한 마음을 갖게 되기도 하고.


문득, 이 조건들을 술에도 접목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요에 의해 마셔야 한다면, ‘온갖 진귀한 열매를 끓이고 끓여서 세계에서 세 개만 남아있는 구리 증류기로 수백 시간을 기화와 액화를 반복한 후에도 한 잔 정도가 나오는 술’을 먹더라도 불편하다. 어쩔 수 없이 마셔야 하는 술은 사회생활의 연장이자 폭력이 될 수도 있다. 술 자체를 즐길 수 없는 건 당연하다.


이에 반해, 내가 원하는 시간과 장소와 인원 구성으로 마시는 술은 다음날 썰물처럼 숙취가 밀려오더라도 수백 배는 좋다. 아래 3가지 조건이 충족되기 때문이다.


내가 마시고 싶어서 마심(자율성)

알코올에 젖어가는 뇌가 주는 즐거움, 느슨함, 만족감 (성취감)

함께 마시는 사람들과 쌓는 유대감, 친밀감(연결감)


선택과 술

물론 선택에는 언제나 책임이 따르기 마련이다. 선택만 하고 책임감은 없어도 그나마 용서가 되는 시절은 10대로서 끝났다.

스무 살 때의 술은 어른이 되면 도전해야 할 퀘스트였다. 당연한 통과 의례로서, 합법적으로 허용되는 일탈 같은 것이었다. 여기서 핵심은 술은 언제나 선택이었다는 것이다. 학기초 부어라 마셔라 하는 술자리를 제외하고서는, 온전히 자유의지에 의해 술을 마셨다. 마음대로 되지 않는 많은 일들과 고민들은 술 마시는 것을 선택해야 할 재료가 되었다. 그리고 선택의 결과는 온전히 내가 책임져야할 몫이었다. 행복을 얻는 만큼, 대가는 지불해야했다. 그렇기 때문에 술이 주는 행복감에 그저 도취될 수는 없었다.


스스로 선택할 수 있지만, 책임감의 무게도 느껴야 하는 지독하지만 달콤한 것.

선택을 통해 얻을 수 있는 행복과 그 행복의 크기만큼 감당해야 하는 책임감을 술을 통해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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