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그리드 May 03. 2022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자부심 따위

장투하듯 삽니다 - 16

좋아하는 일을 해야한다는 감각

"당신의 심장이 뛰는 일을 하세요. 좋아하는 일을 하세요."

라는 주장은 지금 들으면 너무나도 교과서적인 말이다. 한편으로는 좋아하는 일을 하지 않는 사람들은 그렇다면, 열정이 없는 사람들인 걸까?  '아프니까 청춘이다'처럼 굉장히 올드하고 뻔한 얘기처럼 들린다.


물론 나는 그간 남들이 보기에 혹은 나 스스로도 좋아하는 일을 해왔고, 그렇기에 누군가는 '너는 그러니까 배부른 소리를 할 수 있는 것이다'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한다는 강박을 가지고 살았고, 그런 삶을 살고 있다는 이유로 오만하게도 자부심을 느끼기도 했다. 그렇기에, 충분히 그 지적을 이해한다.

다만, 이제야 드는 생각은 이렇다.

일을 하는 이유는 각자 다른데, 스스로 정한 기준에 갇혀 다른 이들의 일까지 감히 판단한 것이 아닌지. 또한 내 일에 대해서도  한치도 의심하지 않았으나 사실은 좋아하는 일을 한다고 '믿고 싶었던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게 된다.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라는 믿음이 시작부터 잘못된 것은 아니었을까.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자부심 따위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자부심 같은 것이 있었다.

나는 일을 '일'로만 생각하지 않아.

그리고 이 정도면 괜찮은 거지

전혀 좋아하지도 않는 것과 관련 있는 일을 매일 해야 한다면 얼마나 하루하루가 노잼일까?

좋아하는 일이니까 언제나 행복해야 하고, 감사해야 해, 만족해야 해.


그런데, 이 '좋아하는 일'이라는 것은 모든 희생을 용인하기 마련이다. 내가 이런 대우를 받고, 이런 근무 환경에서 일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는 일이라고 만족해버리는 것이다.


나는 일이 좋기도 했지만 미울 때도 많았고, 더 잘하고 싶었고, 더 버티고 싶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정말 그 일들이 좋아하는 일이 맞았을까?


이십 대 초반에 내가 좋아하는 것이라 땅땅 정의 내린, 그 분야에서 일을 한다는 것 자체를 그냥 '좋아하는 일을 한다'라고 생각했던 것이 아닐까? 분야(대상)와 직무를 뭉뚱그려서 생각한 것이 문제였던 것이다. 그 분야에서 일할 수 있다면 무슨 일을 해도 오케이라는 그런 마음. 애초에 앞이 아니라, 뒤에 방점을 찍고 보았어야 했는데 그땐 그런 것들이 보이지 않았다.


영화 마케팅은 영화의 가장 재밌는 요소들을 관객들에게 알려주고, 극장으로 유도하는 일이자 많은 사람들과 함께 결과를 이끌어내는 일이다. 창의적인 일부터, 정산을 위해 디테일하게 숫자를 보는 일도 잘해야 하고,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조율하며 커뮤니케이션하는 일도 해야 한다.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잘하려면 큰 그림을 '디테일'하게 보는 능력이 필요하다. 관객들의 반응을 최전선에서 접하고 즉각적으로 반응해야 하며, 언제 발생할지도 모르는 상황에 따라 언제든 변할 수 있다는 마음을 먹는 것이 중요하다.

나의 경우, 내가 설계한 일을 통해 반응을 즉각적으로 느낄 수 있다는 점이 영화 마케팅을 하면서 즐거웠던 부분이었다. 물론 영화가 흥행한다면 더 좋았지만, 영화의 흥행 여부만이 보람의 이유가 되지는 않았다.


이직을 하고 깨달은 것

이직을 할 때는 방점을 앞에 찍었다. 분야를 바꾸고 싶었고 직무는 그대로였다. 영화가 이제 좀 지겹다는 생각마저 들었고, 꼭 영화가 아니어도 된다고 생각했다. 영화를 벗어나려면, 최소한 직무 경력을 살려야 했다.


이직한 회사에서 우연히 팀 이동이 있었고, 마케팅이 아닌 사업 쪽 관련 다양한 일들을 하며 넓혀갔다. 그동안 겪어본 적이 없었던 새로운 일이었지만, 이 일에서의 중요한 역량도 '의견을 조율하는 것'에 있었다. 마케팅에서 배운 것들이 도움이 되었다. 다른 일이었지만, 근본적인 역량은 같은 구석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다른 일을 해보며 확실하게 깨달았다. 무언가를 조율하는 업무, 마케팅에서 수년간 해왔던 이 일들이 나를 지치게 했었구나. 내 것이 없는 상황, 성장할 수 없는 감각 자체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거구나. 문제는 영화가 아니었다.


내가 정확히 무엇을 하고 싶은지 고민하지 않고, 그냥 분야만 바꾸면 모든 것이 해결 될 줄 알았던 나의 성급함 때문이었다. 회사를 벗어나고자 이직을 서둘렀던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었을까? 시작부터가 문제였다. 내가 정말 좋아하고 잘하는 것을 찾아볼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전 06화 퇴사의 이유 고찰 : 자율성, 인정 그리고 성장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