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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그리드 Apr 27. 2022

퇴사의 이유 고찰 : 자율성, 인정 그리고 성장

장투하듯 삽니다 - 15

보람과 의미와 성취감 사이에서 : 자율성과 인정 그리고 성장

나는 일에서 '보람과 의미'를 찾는 것이 확실하다. 그리고 성취감도 치킨무처럼 곁들여져야 한다. 의미와 보람과 성취감과 같은 감정들은 어디서 왔던 걸까?

갈구했던 그 감정들을 들여다본 후 이런 결론을 내렸다.

그 근원에는 자율성과 인정(나 자신과 남 모두)과 성장에 대한 기대(더 나아질 거라는) 가 있다는 것.



자율성 - 마이크로 매니징과 방치 사이에서

내가 스스로 선택하여 주체적으로 일을 할 수 있다는 감각은 때로는 부담스러운 책임감을 심어주지만, 그 부담보다도 얻을 수 있는 보람이 더 크다. 오래도록 시간을 들이고 고민하고 노력한 '내 프로젝트'를 끝내보았던 경험은 상당한 즐거움을 주기 때문이다.


이 자율성이 잘 작동하려면 이를 믿고 맡길 만큼 신뢰가 있는 상사 혹은 조직이 있다는 뜻이다. 내가 선택한 것들을 설득할 수 있는 능력도 필수적이지만, 이를 믿어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이다.

만약, 하고 있는 모든 일에 대해 누군가 마이크로 매니징 한다면 어떻게 될까. 세세한 것까지 관여하는 상사와 그것을 그대로 방조하는 조직 아래에서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항상 보고하고 체크하는 것이 반복된다면, 불타던 의욕은 차게 식게 된다.


마이크로 매니징과 반대되는 것이 모든 것을 떠넘기고 도움을 주지 않는 방치다. 마이크로 매니징과는 다른 의미로 고약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율을 줄 테니 알아서 하세요'는 것은 자유를 가장한 폭력이기도 하다.


이 경계를 잘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두 가지의 요소들을 각기 다른 회사에서 다 경험을 해보았고 양 극단으로 치달았을 때 회사를 떠나고자 마음먹었다.



인정 - 티 내는 것이 더 중요해질 때

"네가 무슨 일을 하는지 티 내야 해."

사회 초년생 때는 티 내는 것 = 나대는 것과 동일하게 생각했다. 애초에 조직문화도 공격적인 편이 아니었고,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연차가 쌓이면서 배운 것은 일을 묵묵히 해봤자 알아주지 않는다는 .   진가를  번에 알아봐 주는 동료들을 만날 수도 있겠지만, 그건 정말 운이 좋아야 가능하다. 그렇기에,  이것도  알아주지? 하고 서운한 마음을 갖는  자체가 소모적이라는 것을 점차 배웠던  같다. 그저  알고 있으리라고 믿는  자체가 사치스러운 일이라는 것을 말이다.


본인이 무슨 일을 했는지 어필하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생각하는 것보다 자기중심적이고 다른 사람에 관심이 없다. 그러므로, 내가 이런 일을 열심히 했습니다.라고 알리는 것은 필요하다.


문제는  자체보다  일에 대한 뽐내기가  중요한 것처럼 여겨질 때다. 실제  일보다 그것을 부풀리는  에너지와 시간을  쓰게 된다면? 모두 작고 사소한, ' 나지 않은 ' 맡으려 하지 않고 '크고  나는 ' 하게  것이다. 작은 일들은 아직 조직 내에 자리잡지 못한 말단사원들에게 돌아가고, 그들에게는 더 크고 중요한 많은 경험을 쌓을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런 조직은 미래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성장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있었다면

위 두 가지가 충족이 되지 않더라도 회사에 남아있을 수 있다.

성장에 대한 가능성이 있으면 된다.


내게 성장에 대한 가능성이란, 이 조직에서 일을 한다면, 회사와 함께 더 성장할 수 있다는 믿음, 혹은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말한다.


얼마 전 갭이어를 다룬 김진영의 <아직 우리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를 읽었다.

책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리베카 솔닛은 『어둠 속의 희망』이라는 책에서 “희망은 문이 아니라 어느 지점엔가 문이 있으리라는 감각”이며, “길을 발견하거나 그 길을 따라가 보기 전이지만 지금 이 순간의 문제에서 벗어나는 길이 어딘가 있으리라는 감각”이라고 말한 적 있다. 리베카 솔닛의 말처럼 어떠한 대안은 꼭 그 일을 선택하지 않더라도, 존재 자체가 안심을 주기도 한다.


뚜렷이 보이지 않더라도, 나아갈  있다는 가능성(그것을 사람들은 희망이라는 거창한 말로 포장한다) 자체만으로 계속할 이유가 된다. 지금 존재하진 않지만, 일단 믿고 보자는 것이다.  가능성조차 없을  우리는 포기하게 된다.


 위를 보았을  나의 미래가 그려지지 않고,

회사의 비전이  이상 빛나지 않고 허울로만 보일 ,

 사람처럼 되고 싶다' 롤모델이 존재하지 않을  나는 회사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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