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혹한과 맞짱
올 겨울 들어 가장 춥다는 영하 13도 혹한의 아침이다. 일본의 달리는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끼는 "계속 달려야 하는 이유는 아주 조금밖에 없지만 달리는 것을 그만둘 이유는 한 트럭 가득히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추워서, 눈이 내려 길이 미끄러워, 바람이 불어, 어제 친구와 술자리가 있었어, 피곤한 것 같아서, 늦잠을 잤어. 여름날에는 비가 와서, 날이 더워서,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이유가 있다. 이유는 이유일뿐 그냥 대문을 열고 나가면 달리게 된다.
영하 10도 이하로 기온이 떨어지면 복장을 단단히 챙겨야 한다. 장갑도 손가락장갑으로는 어림없다. 두툼한 벙어리장갑 정도는 되어야 버틴다. 오늘 같이 매서운 북풍이 휘몰아치는 날이면 목에 두르는 버프는 필수품이 된다. 상의는 바람막이가 꼭 필요하고 하의는 추위를 그리 타지 않으니 겨울 타이즈면 족하만 남자는 거시기 보호용 패드나 손수건은 필수고 신발도 열을 잘 내 보내려고 숭숭 뚫린 앞부분은 찬기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테이프로 봉해야 발가락이 시리지 않다.
알싸한 겨울 공기가 콧속으로 빨려 들면 그 맛이 청양고추 같이 매콤하다. 달리려면 숨구멍이 뚫어 놓아야 하니 마스크는 거추장스럽다. 그 콧구멍으로 들어오는 찬바람은 스스로 감내해야 한다. 지난번 내린 눈이 녹고 잔설이 남아 혹한으로 응달에는 빙판이다. 이런 구간은 천천히 달려 한강으로 나서면 시베리아 벌판이 따로 없다. 건너편 난지 열병합 발전소 굴뚝의 증기가 동남 방향으로 90도로 꺾였다. 이런 날은 한강의 북서풍이 강하게 분다는 표시다.
초반 6km인 노들길 나들목까지는 뒷바람을 받으면 달리니 추위는 느끼지 못하겠다. 잘 갖추어 입은 복장으로 달리니 열이 나서 등과 이마에는 땀이 베인다. 겨울 깡추위는 견딜만하지만 앞바람이 문제다. 이른 아침이고 춥다는 엄포성 예보로 한강 자전거 길과 산책로는 글자 그대로 고요와 적막이다. 그런 평화로움은 딱 노들길 나들목까지이다.
반환점을 돌아 서는 순간 앞바람이 파고든다. 까칠한 냉기는 어디 조그만 빈틈이 있으면 귀신 같이 알고 틈새를 노려 파고든다. 몸의 열기로 흘린 땀이 일순간 얼어붙는다. 연신 뿜어 나오는 입김은 버프에 그대로 언다. 체온이 닿는 부분은 녹고 먼 부분은 얼어 버린다. 입김이 올라 가 눈썹에 닿으면 눈썹도 얼어붙는다.
체온이 식으면 더 추우니 더 빨리 달려 보지만 앞바람이 막아서니 속도도 올라가지 않는다. 그래도 가야 할 길이니 달린다. 갈 때와 올 때는 양지와 음지 하늘과 땅, 천당과 지옥이 따로 없다. 그 길의 절정은 안양천 합류부 다리를 건널 때다. 사방이 터진 이 다리는 막히는 곳이 없으니 그대로 북서풍이 불어 제친다.
고통으로 줄이려면 빠르게 지나가는 게 최고지만 바람이 그냥 놔 둘리가 없다. 앙탈을 부리는 바람을 뿌리치고 나가면 양볼은 바늘로 콕콕 찌르는 듯한 고통을 감내하며 달린다. 다리만 건너도 휴 ~ 하는 안도감이 찾아온다. 남은 거리 3.5km는 바람길이다. 바람막이를 뚫고 찬기가 전해오니 배가 얼얼하지만 등은 후끈하다. 앞뒤 온도차가 심하다.
나만의 결승선인 가양대교를 향하여 마지막 힘을 솟아 영차! 영차! 힘들고 먼 길이라도 달리면 달려지고 피니쉬도 찾아온다. 늘 아침마다 만나 인사를 나누는 걷기 어르신도 오늘은 끝내 만나지 못했다. 안녕은 하시겠지. 기록은 좋지 않았지만 한강 혹한과 맞짱을 떠서 지지 않았다는 성취감으로 행복해지는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