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나를 만나는 까미노

5월의 눈 내리는 피레네 산맥을 넘어 론 세스 바에스

by 산달림

유럽 동쪽에서 서쪽까지 길게 이어진 '까미노 데 산티아고'는 천여 년 전 야고보 성인이 걸었던 순례의 길이다. 예전에는 카미노 길은 종교적인 의미로 걸었던 길이었지만 지금은 종교적 의미가 아니라도 자신의 성찰을 위해 걷기도 하고 힐링을 위해 걷기도 하며 그 목적이 다양해졌다. 도심을 떠나 자연 속에서 배낭 하나 달랑 매고 자신의 속도로 걷는 도보 여행은 신앙인이 아니라도 내 안의 나를 만나러 가는 길이다.


진작 그 길에 서고 싶었지만 한 달 이상 걸리는 긴 시간을 낼 수 없어 은퇴를 하면 제일 먼저 찾고 싶은 곳이 이 길이었다. 그런 이유로 오래전부터 나의 버킷 리스트 상단에 산티아고 길이 적혀 있었고 그 길을 걸으며 지금 끼지 살아온 시간을 되돌아보고 앞으로 남은 시간들을 어떻게 보낼지 고민해 보는 '생각의 시간'을 갖고 싶었다.


순례자의 필수품인 지팡이와 물을 담아 마실수 있는 표주박과 순례자임을 표시하는 가리비 조개

그 길에서는 오롯이 나의 시간으로 나를 볼 수 있고 나와 대화를 할 수 있다. 제2의 인생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해보는 데는 산티아고 길이 최선의 길이 될 거라 생각을 했다. 인천을 출발하여 바르셀로나에 도착하여 설렘과 기대감을 가지고 순례 준비를 끝냈다.


오늘 산티아고 길을 걷는 첫날이다. 어제는 바르셀로나 산츠역에서 팜플로나까지 기차를 타고 와서 다시 프랑스길의 시작점인 생장 피드 포드까지 버스를 타고 왔다.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이 순례자 수첩을 만드는 일이다. 순례자 수첩은 여행자에 비유하면 여권과 같은 것이다. 순례자 수첩에 찍힌 세요(스탬프)를 확인하고 완주증을 받을 수 있으며 순례자 숙소 이용 시 반드시 확인하는 게 순례자 수첩이다.


순례자 사무실을 찾아가는 길은 쉬었다. 세계 각국에서 온 순례자를 따라가면 언덕 위로 올라가는 길에 순례자 사무실이 있다. 벌써 대기줄이 길다. 이렇게나 순례길을 걸으려는 사람들이 많나 싶다. 마음씨 좋은 나이 지긋한 아저씨 앞의 의자에 앉으니 어디서 왔냐고 한다. '사우스 코리아"라고 하니 놀란다. 오늘만 자기가 발급한 순례자 수첩(Carnet de pelerin)이 8번째 란다. 다섯 분의 자원봉사자가 순례자 수첩을 발급하고 있으니 평균해서 약 40명? 한국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산티아고 길을 걷고 있나 싶다. 이 길을 걷는 목적이 무엇이냐 물었을 때 영적인 이유라 답했다. 그 질문서에는 종교적 이유, 영적인 이유, 문화적 이유, 스포츠, 그리고 기타가 있었다.


순례자 수첩을 발급해주는 순례자 사무실

내일 걸을 순례길을 설명해 주시는데 피레네 산맥을 넘어가는 방법과 기상이 좋지 않을 경우를 대비하여 찻길을 따라가는 방법까지도 꼼꼼히 설명해 주셨다. 왜 그리 세세히 설명해 주시나 했더니 설명을 들었을 때는 이해를 하지 못하였는데 다음날 그 이유를 저절로 알게 되었다. 여기서 꼭 챙겨야 하는 것은 순례길의 순례자가 묵을 숙소가 빠짐없이 적혀있는 알베르게(순례자 숙소) 목록이다. 거기에는 거리, 마을 이름, 알베르게 이름, 전화번호, 침상수, 열린 기간, 요금, 식당 유무, 난방 유무와 예약 가능 정보까지 상세히 적혀 있다.


한국은 겯기 열풍이 불고 있다. 제주도 올레길이 열린 후로 폭발적으로 늘어난 걷기는 지리산 둘레길, 북한산 둘레길, 서울 둘레길을 비롯하여 동해안을 연결하는 해파랑길과 각 지자체마다 걷기 길은 수도 없이 열린 게 큰 몫을 한 것 같다.


공립 알베르게는 벌써 만원이고 사설 알베르게인 30호 집을 소개받고 나오는 길에 저울 앞에서 배낭의 무게를 재어 보니 10kg이 조금 넘는다. 줄이고 줄인 무게인데 내가 살아온 삶의 무게인지 더 이상 줄이지 못하고 앞으로 짊어져야 할 무게다.

이 다리를 건너 순례자 사무실로 가는 길

저녁식사 전에 할 일은 내일 걸을 길에서 먹을 빵과 음료수 몇 개의 과일을 사는 일이다. 여기 상점은 칼 같이 폐점시간을 지키고 있어 서둘러 찾아가니 문을 닫을 준비를 하고 있다. 먹거리를 챙겨 나오니 이 가게의 마지막 손님이 되었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마을을 한 바퀴 돌았다. 참 평화로운 프랑스의 작은 마을인데 순례자로 늘 붐비는 곳이기도 하다.


옛 성문 입구는 파리 쪽에서 걸어오는 순례길 표시도 있다. 마지막으로 마을 성당에 들렸다. 신앙인은 아니지만 절로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게 된다. '이 길을 완주하게 해 주시고 걷는 동안 무지에서 깨어나 나를 바로 보게 해 주시고 이 길의 끝에 섰을 때는 좀 더 넉넉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지혜를 얻을 수 있게 하소서'


30호 숙소에서는 모두 오늘 '까미노 데 산티아고'를 걷는 세계 각국에서 온 순례자들과 함께 저녁식사를 하였다. 넉살 좋은 프랑스 주인아주머니가 서로 간 인사를 하도록 소개를 시켜 주었다. 그리고 "왜 산티아고 길을 걷는가?" 하는 것이었다. 나는 왜 까미노 길을 걷는 걸까?


내일부터 시작되는 순례길에 대한 기대감으로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햇살에 바짝 마른 뽀송한 이불의 감촉이 포근하게 느껴진다. 기대감 때문일까? 꼭두새벽 어둠이 걷히기 전 일어나 배낭을 메고 순례자임을 표시하는 조가비를 배낭에 달고 알베르게를 나섰다. 일행은 셋이다. 서울에서 함께 온 김형과 어제 팜플로나 버스터미널에서 만난 박처자는 양주에서 왔다고 한다. 셋이서 길에 섰다.


피레네 산맥을 넘는 순례길 초입에 만나는 목가적 풍경


프랑스와 스페인의 경계 산맥인 피레네 산맥을 넘는데 그 높이가 자그마치 1,450m나 된다. 출발할 때는 흐린 날씨로 걷기에 그리 나쁘지 않다. 목가적인 프랑스 마을을 통과할 때는 가는 비를 뿌린다. 첫날부터 우의를 꺼내 입고 걷는다. 차분한 마음으로 한걸음 한걸음 내딛는다. 이렇게 800km를 걸어 콤포스텔라 산티아고까지 한 땀 한 땀 이어갈 것이다.


오늘 여정이 전체 여정 중에 가장 힘든 구간이지만 몸도 마음도 용기백배다. 기대감과 설렘 속에 낯선 프랑스 농가 풍경을 보고 오르는데 점점 빗방울이 굵어진다. 아침식사도 못한 터라 피레네산의 중턱에 있는 오라손 알베르게에는 18명이 묵을 수 있고 바르를 겸하고 있어 아침식사로 따끈한 커피 한잔과 햄이든 빵을 먹을 수 있었다.

800m의 높이의 피레네 산중에 있는 오라손 알베르게

곧 그 칠 비가 아니기에 우의를 입고 나섰는데 해발 800m가 넘으니 비가 진눈깨비로 바뀌더니 조금 더 오르니 싸락눈으로 바뀌면서 바람도 거세게 불어 치니 몸도 가누기 힘들 정도로 세차다. 자전거 순례자들은 아예 내려서 끌바를 하고 있다. 기상변화가 심한 피레네 산맥이라지만 첫날 순례길 신고식 하나는 제대로 한다. 옷이 젖지 말라고 우의를 입었더니 바람이 어찌나 거세게 부는지 찢어질 듯 펄럭거려 제대로 발걸음 옮기기도 힘든다. 체감온도는 -10도 이하로 내려가니 손도 시렵고 귀도 시리다.


내리던 비가 급기야 눈으로 변해 퍼붓는 순례길


이런 일이 자주 있는 듯 바람이 덜 부는 모퉁이에는 자동차에서 순례자에게 먹거리를 파는 프랑스인 아저씨가 기다리고 있다. 따끈하고 달콤한 핫쵸코 한잔과 빵으로 몸을 좀 녹이고 순례자 수첩에 세요를 받았다. 순례길에서 세요는 알베르게뿐만 아니라 식당, 바르, 성당, 시청 등에서 세요를 받을 수 있다. 프랑스와 스페인 국경은 나라 간 경계의 금이 없다. 이곳은 국경이란 개념이 무의미하다.


국경지대를 넘으니 예전에 국경초소로 쓰이던 건물에 순례자들이 추위를 피해 가득하다. 건물 밖에서 간식을 먹고 출발하는데 한국에서 온 12살 되는 어린이와 엄마의 모자팀은 오라손 알베르게에서 묵고 피렌네 산맥을 넘는 다는데 힘든 날이 될 것 같다. 이제 12살 된 어린이에게 산티아고 길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어른의 욕심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눈길을 헤치고 걷는 12살 아이와 엄마의 순례길


흙길은 콜 데 레푀데르(1,450m) 정상까지 이어지는데 그사이 내린 눈으로 주변은 완전 겨울인 백색의 세상을 꾸며 놓았다. 피레네 산은 높이만큼 기상변화가 심한 산이다. 여기 갈림길이 생장 순례자 사무실에서 순례자 수첩을 발급해 주면서 직선으로 내려가는 길은 가팔라 위험한 길이니 오른쪽 완만한 길을 걸으라고 설명해 준 곳이다.


순례길에서 만난 가족과 친구들이 만들어준 브라질 순례자의 무덤


한국의 산에 비하면 그리 위험해 보이지 않아 급경사길로 론세스바예스로 향했다. 금방 고도가 낮아지고 눈이 사라지고 숲길이다. 국내 산을 걷듯 가볍게 걸어 오늘의 알베르게는 예전 수도원 건물로 순례자를 위한 병원으로 사용하다가 알베르게로 바뀌었다고 하는데 180명이 이용할 수 있는 곳이다. 여기서 순례를 시작하는 순례자도 많아 접수하는데 오래 기다림 끝에 침대를 배정받았다.


여기는 워낙 많은 인원이 이용하다 보니 동시에 저녁식사를 할 수 없어 19:30과 20:30 두 개의 시간을 선택하는데 19:30을 선택했다. 저녁에도 비가 내려 숙소에서 식당을 찾아 가는데 거리가 있다. 저녁이 되면서 추운 날씨에 비를 맞으며 식당 앞에 줄을 서서 기다리는데 19:30은 좌석이 다 찾다고 다음 시간까지 기다려야 한다. 자리가 부족해 1시간을 기다렸더니 춥고 배고프고 힘든 하루다.


근 200여 명이 숙소로 쓰다 보니 자원봉사자들도 힘들고 순례자도 힘든 것 같다. 눈보라 속에 피레네 산맥을 넘는다고 추위에 너무 떨었다. 차분히 생각하면서 여유 있게 걷는다 생각과 현실은 너무 동떨어져 있다. 험악한 날씨에 다들 순례자란 공통분모가 있기에 서로 동질감을 느끼며 힘든 피레네 산맥을 넘었다. 오늘 걸은 길은 내가 그리던 그런 순례길인가 싶다. 배낭의 무게로 어깨도 뻐근하고 다리도 묵직하고 손이 시리고 허기에 지치며 추위에 떨며 걷는 길이 순례길이었다. 순례란 겉멋이 아닌 혹독한 시련을 견디어 내면서 얻는 황금알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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