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길에서 무엇을 느끼고 생각할까?
어제는 프랑스 피레네 산맥을 넘었고 오늘은 스페인 땅에서 출발이다. 어제는 등산하듯 산을 넘었고 지금부터 순례길을 제대로 걷는 날이다. 새벽 5시 30분 어두컴컴한 시간에 배낭을 챙겨 나오니 호스피탈이 문 앞에서 과자를 내민다. 아침 식사도 먹지 못하고 길을 나서는 순례자에 대한 배려가 고맙다. 감사한 마음으로 두 개를 집어 들고 알베르게를 나서니 아침 바람이 제법 차갑게 느껴진다.
아직도 어두운 새벽길을 서두르며 아스팔트 길을 걸었는데 여러 순례자와 함께 걷는데 아무래도 길이 아닌 것 같다고 유럽의 순례자가 뒤돌아 간다. 함께 왔던 길을 500m나 다시 돌아가니 알베르게 앞에서 바로 오른쪽 숲으로 순례길이 보인다. 어두울 때는 카미노 길 표시를 잘 보고 출발해야겠다. 새벽부터 의욕만 앞섰나 보다.
첫 번째 마을인 부르게 테에 도착하니 이른 시간인데도 순례자를 위한 바르가 문을 열었다. 아침식사는 여기서 빵과 커피를 먹고 출발했다. 순례길에서는 알베르게를 일찍 출발하기에 아침식사를 첫 번째 만나는 마을의 바르에서 주로 하게 된다. 바르에 는 술도 팔지만 간단한 빵과 스네 그리고 차를 판다. 순례길에는 화장실이 없어 이곳을 많이 이용하게 된다.
이 마을은 헤밍웨이가 머물면서 송어 낚시를 즐기면서 "태양은 다시 떠 오른다"를 쓴 곳이라고 하는데 그의 흔적을 찾을 수는 없었다. 피레네 산맥 군은 흰 눈이 그대로 덮여 있고 그 아래로는 푸른 목초지가 펼쳐지는 게 마음에 평화가 온다.
스페인 시골마을 풍경에 취해 열심히 걷다 보니 어느 마을의 작은 마켓이 있다. 간식거리를 사서 나오니 피레네 산맥을 넘으면서 헤어졌던 양주에 산다는 박처자를 다시 만났다. 이렇게 순례길 위에서는 만남과 헤어짐의 반복으로 끝까지 걷기 위해서는 자기 속도에 맞추어 걷는 게 중요하다.
유럽의 순례자들은 체격만큼이나 체력이 좋아 힘차게 걷는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열심히 걷고 바르가 나오면 좀 길게 쉰다. 우리는 빨리는 걷지는 못하지만 꾸준히 걷고 긴 휴식을 하지 않는다. 결과는 거의 같다. 나름대로 걷는 방식이 다를 뿐 누가 맞고 틀리다는 것은 아니다.
그간 내 주장을 하면서 살아온 것 같다. 그래서 생겨난 말이 '목소리가 크면 이긴다.' 내가 맞고 네가 틀리니 내 말에 따라야 한다고 살아왔다. 이제야 생각해보면 그건 억지 주장이다. 내 말도 맞지만 너는 그렇게 생각을 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 사람 입장에서는 능히 그렇게 생각을 할 수 있다. 여기에 맞고 틀림의 흑백 논리가 아니고 너와 나의 다름이다. 그간 우리는 지금껏 이기는 교육만 해 왔지 배려하는 교육을 받아 본 적이 있었나? 지금도 교육현장인 학교에서는 점수 1점이라도 더 받아 이기는 경쟁 이서 살아남는 법을 가르치고 있지 않는가.
주비리에 도착을 하니 어제 피레네 산맥에서 만났던 대학생 두 명을 만났다. 점심때가 되어 가게에서 빵을 사서 치즈와 같이 공원에서 먹고 있다. 우리도 여기서 점심으로 스페인 바케트 빵을 물어뜯었다. 일어설 때쯤 박처자가 오더니 벌렁 들어 눕는다. "아이고 힘든다." 아직 걷는 게 익숙하지 않나 보다.
아직은 하루를 끝내기는 이른 시간이라 여기서 5.3km를 더 걸어 라라소냐까지 가기로 하고 일어섰다. 오늘 걷는 길은 내내 숲길이라 걷기가 좋고 숲을 빠져나오면 작은 마을이 나타나곤 했다. 라라소야는 순례길에서 다리를 건너 마을로 들어 서니 공립 알베르게가 있다. 좀 더 시설이 좋은 사설 알베르게를 찾는데 어린아이들이 놀고 있기에 이름을 알려 주면서 알베르게를 물으니 다섯 명의 아이들이 놀기를 멈추고 우르르 몰려오더니 따라오라는 손짓을 하며 앞장을 선다.
에스파니아어로 자꾸 말을 시키는데 영어 할 줄 아느냐고 하니 전혀 못한다고 한다. 그러며 자기들끼리 뭐라고 하며 연신 깔깔거린다. 이럴 줄 알았으며 에스파니아어를 조금 배워 올걸 그랬다. 그들이 알베르게 앞까지 안내해주고 사라진다. 그들에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말은 "그라시아스!" 밖에 모르는 내가 밉다.
그러고 보니 이곳은 올 때 길에서 명함을 주고 찾아오라고 한 빨간 스웨터를 입은 아저씨가 이 알베르게의 주인이다. 1층은 식당과 응접실이고 2층이 숙소로 먼저 침대 배정을 받고 먼저 양발을 빨아 건조대에 널어놓고 우의도 말렸다. 눈비에 젖었던 걸 널어놓으니 스페인의 햇살이 따갑도록 강열하여 빨래가 금세 뽀송뽀송하게 마른다. 양지쪽은 따뜻한데 음지는 썰렁하니 춥다. 그래서 실내 벽난로의 불을 지펴준다.
저녁식사는 알베르게에서 제공하는 순례자 식사를 주문했더니 여러 나라에서 온 순례자들과 함께 빵과 수프 그리고 스테이크가 나왔는데 넉넉한 식사량이다. 와인도 넉넉하게 준다. 이들의 저녁식사에는 꼭 와인과 함께 한다. 와인 인심 하나 좋은 스페인이다. 순례 2일 차는 27km를 걸었다. 시작이 좋으니 끝까지 잘 걸을 수 있을 것 같다. 순례길에서는 무엇을 느끼고 생각하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