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렛고개 넘어 스위스 땅 샹페

탠트 메고 뚜르 드 몽블랑 동그라미 그리기

by 산달림

알프스라 하면 스위스를 떠 올리지만 뚜르 드 몽블랑은 몽블랑산을 한 바퀴 도는 일주 코스로 프랑스, 이탈리아, 스위스 3개국을 걷는다. 6일 차인 오늘은 이탈리아에서 스위스로 넘어간다. 그 경계가 페렛 고개다.


간밤에도 밤새 비가 내렸다. 다행히 출발할 때는 비가 그친다. 6시 15분 출발하여 계곡 다리를 건너는데 '샬레 val Ferret'은 숙박도 가능하고 바도 있으며 식사도 가능한 곳이다. 쿠르마이유에서 이곳까지 버스가 들어오는 곳이다.


이곳 계곡 주변은 캠핑하기 좋은 곳이라 트레커들의 탠트가 여러 동 보인다. 물도 있고 그늘도 있으니 캠핑하기 딱 좋은 조건이다. 페렛 계곡에서 페렛 고개로 오르는 오르막길은 이탈리아에서 스위스로 넘어가는 페렛 고개다.

무척 큰 엘레나 산장

오르막 초입에 엘레나 산장(Rif Elana)의 트레커들은 이제 막 아침식사 중이다. Tmb 산장의 특징 중 하나는 대부분 산장까지는 차랑의 진입이 가능하다. 트레커들에게 제공되는 식자재 운반이나 그들의 이동수단이 필요하기 때문에 산장은 차량의 진입이 되는 곳이거나 케이블카 라도 있다.


페렛 고개를 오르면서 생각의 시간을 가져 본다. 홀로 걷다 보면 주변 경치에 묻혀 행복감을 절로 느끼게 된다. 아름다운 자연에 절로 동화되는 시간이다. 뒤를 돌아보면 멀리 세이뉴 고개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많이 걸았다는 생각에 뿌듯함이 느껴진다. 응달에는 여전히 눈이 쌓여 있고 아침 공기가 차갑게 느껴진다.


아침에는 휴식이 주는 여유로 힘이 솟는다. 무거운 배낭 무게로 그리 땀을 흘리지 않고 오를 수 있어 좋다. 더울까 봐 오늘은 반팔을 입었는데 바람이 차갑게 느껴진다. 그도 그럴 것이 페렛 고개는 2,537m이나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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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렛고개로 올라 가는 길(좌) 야생화가 가득한 페렛고개 가는 길(우)

때마침 먹구름이 지나가나 했더니 진눈깨비를 뿌린다. 갑자기 겨울 속으로 들어선 것 같다. 고개 정상 표지석에 사진만 남기고 서둘러 내려섰다. 페렛 고개는 이탈리야와 스위스의 국경임에도 어디 하나 국경이란 느낌이 없다. 거기가 거기고 다 똑같은데 말이다. 이젠 지구촌이란 말이 잘 어울리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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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와 스위스 경계인 페렛 고개(좌) 페렛 고개 목초지 풍경(우)

고개를 내려서니 바람이 잠잠해져 추위는 덜하지만 여전히 진눈깨비는 뿌린다. 곱게 피었던 야생화들은 추위를 견디기 위해 꽃봉오리를 스스로 오므린다. 모든 생물은 스스로 자연에 적응하는 법을 알고 있는 것 같다.


산 중턱에는 라 쁘르(La Peule) 산장이 있다. 많은 트레커들이 추위를 피하기 위해 양지쪽에 삼삼오오로 모여 쉰다. 몸도 녹일 겸 커피 한잔을 마시기로 했다. 그때 어제 보나띠 산장 (Rif Bonatti)에서 잠시 만난 한국인 젊은 친구를 여기서 다시 만났다. 대학을 졸업하고 이제 막 군대를 제대하고 앞날을 진로를 생각하는 시간을 갖기 위해 Tmb트레킹을 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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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국기가 펄럭이는 라 브르 산장(좌) 등산화에 흙을 채워 만든 화분(우)

S대 세계사 학과를 졸업했다는데 막상 취직을 하려니 쉽지 않아 로스쿨을 갈까 고민 중이라 한다. 이번 여행경비도 전액 부모님께 타서 왔다고 했다.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공통으로 겪는 고민이 아닌가 생각된다. 캥거루족이 되지 말고 이제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할 때가 된 것 같다. 언제까지 그렇게 살려고 하느냐 더 좋은 스펙을 쌓는 것도 좋지만 이제는 현실을 인정하고 내 앞가림은 스스로 해야 될 때가 아닐까?


그의 얇은 주머니 사정을 생각해 커피와 샌드위치를 같이 먹으며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들 꿈과 이상은 높은데 그런 양질의 일자리는 늘 부족하니 조금은 눈높이를 낮추어 살아가는 것도 한 방법이 되지 않을까? 누구나 다 홈런을 치고 싶지만 홈런을 노리다가 삼진 되는 확률이 높고 성공확률이 높은 안타를 치는 게 바른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소는 누가 키우냐고?" 말이다.


라 쁘르 산장은 스위스 땅이라 갑자기 물가가 2배로 뛴 것 같다. 스위스 답게 낡은 등산화에 흙을 채워 화분으로 장식해 놓으니 볼만하다. 꽃을 사랑하고 자연을 잘 가꾸는 민족이다. 라 풀리(la Fouly)로 내려서는 길은 그 젊은 친구와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며 내려왔다.


많은 트레커들이 이 구간은 좀 인기가 떨어져 점프하는 구간이기도 하다. 주변 풍경이 우리네 국내 풍경과 많이 흡사한데 단지 눈을 돌려 주변 경치를 둘러보면 역시 스위스 풍을 느낄 수 있다. 샬레로 대표되는 스위스의 전통 농가 가옥과 목가적 모습을 보여 주고 주변 산들이 스위스 답게 삐쭉하게 솟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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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플리로 가는 트레킹 길(좌) 목초지에 스위스 집들(우)

라 풀리(la Fouly) 마을에서 잠시 다리 쉼을 하고 캠핑장으로 들어간다는 게 무심코 걷다 보니 캠핑장이 있는 댐을 지나고 작은 공원을 지나쳐 지도를 보고 확인하니 많이 지나쳐 왔다. 다시 돌아갈까 하다가 시간도 일러 다음 캠핑장이 있는 샹페까지 걷기로 했다. 여기서 반나절 거리로 오늘 걸으면 하루 여유가 생긴다.


물길을 따라 걷는 지루한 길이다. 길만 보면 한국과 별반 다른 풍경이 없는 심심한 길이다. 피곤할 때 지루한 길을 걷느니 라 풀리(la Fouly) 캠핑장에서 쉬고 내일 걸을 걸 하는 생각이 드는 구간이다. 늘 무거운 배낭으로 오후가 되면 피곤이 짓누르니 힘이 더 든다.


샹페 가는 길은 오래된 시골 동네를 지나게 된다. 세월이 느껴지는 목조 주택은 스위스 답다는 느낌이 든다. 그러나 여기도 농촌은 노인들만 남아 있고 젊은이 들은 도시로 나간 지 오래되는 것 같다. 꽃을 사랑하고 인형을 좋아하는 할머니는 창가를 온통 빨간 화분으로 장식하고 집 안마당은 스위스풍 인형으로 가득하다. 할아버지는 텃밭을 손질하는 모습은 어느 농촌과 다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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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귀와 스위스 전통가옥(위) 어느 집 앞의 스머프 인형과 꽃(우)

스위스 답게 닭장도 나무로 고급스럽게 꾸몄고 양들과 당나귀가 조화롭게 살아가는 평화로운 마을이다. 이곳은 집들이 많지 않아 그 흔한 가게조차 없다. 샹페 고개 오르기 전 큰 길가까지 가야 작은 바가 있는데 주인은 70대의 할아버지다. 와인 0.5L가 44프랑이나 한다. 비싼 물가로 주머니가 허전해지는 스위스다.


샹페 고개 초입에는 생뚱맞게 산양 목각인형이 처음으로 반갑게 맞이해 준다. 고개는 점점 오르막으로 이어진다. 오늘은 라 풀리(la Fouly) 캠핑장까지 걷는 일정이라 식사를 하지 않고 간식만 먹고 걸었더니 허기가 밀려오는데 가는 빗방울마저 뿌린다. 길을 걷는 나그네가 제일 초라해 보일 때가 배가 고플 때이다. 금방이라도 끝날 것 같던 샹페 마을은 생각보다 거리가 멀었고 오름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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샹페 호수로 기는 길의 목각 동물상(좌) 맑고 깨끗한 상페 호수(우)

호수가 아름다운 상페 마을은 언덕의 가장 높은 곳에 자리 잡고 있다. 추적이는 비로 쌀쌀하게 느껴지는 샹페 호수가에는 노인네 몇 분이 겨울 외투를 입고 호수에 송어 낚시를 하고 있다. 안내소에 들려 캠핑장 위치를 알아보니 마을 끝나는 지점으로 10여분 더 걸어야 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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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폐 호수의 급수대(좌) 에메랄드 빛의 상페 호수(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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샹페에 위치한 별3개 캠핑장(좌) 숲속의 상페마을(우)

샹페는 이 부근에는 꽤 큰 마을로 트레커들에게 식량을 보충할 수 있는 큰 마을이다. 마을 중앙에 대형 마트가 있어 쌀을 비롯한 가스와 부식을 살 수 있는 곳이다. 캠핑장에는 Tmb트레커들이 속속 도착을 한다. 나무판에 15번이라 쓰인 패를 받았는데 위치를 말하는 게 아니고 15번째 손님이란 뜻이다. 캠핑장 내에 원하는 곳에 탠트를 칠 수 있다. 오늘 하루를 벌었으니 내일은 Tmb의 휴식일로 푹 쉬면서 샹페 호수를 둘러봐야겠다.


트레커에게 길에서는 빠름 빠름이 필요하지만 하루를 쉬면서 밀린 빨래도 하고 마음도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 장소로 샹페는 안성맞춤인 마을이다. 에메랄드빛 고운 호수가 있고 캠핑장이 있으며 먹거리가 풍부한 대형 마트가 있는 샹페다. 여기 쇠고기 스테이크는 싸고 맛이 있어 최상의 먹거리다. 먹을 게 있고 쉴 수 있으면 행복해지니 점점 단순하게 살아 가는 게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