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므 고개 넘어 락 블랑 가는 길

탠트 메고 뚜르 드 몽블랑 동그라미 그리기

by 산달림


이 지역은 비가 자주 내리는 것 같다. 간밤에도 비를 뿌렸다.. 아침식사는 누룽지로 밥을 짓기를 했는데 물이 많았는지 죽밥이 되었다. 그래도 한식을 먹을 수 있는 것에 감사하며 맛있게 먹었다. 6시 20분에 길을 나섰다. 오늘은 스위스에서 다시 프랑스로 돌아가는 날로 두나라의 국경인 발므 고개를 넘는다.


길은 넓고 걷기 좋은 길인데 오르막 길은 마냥 편하지 만은 않다. 발므 고개도 해발 2,191m로 2,000m가 넘는 국경 고개로 Tmb코스에서 마지막 고개이다. 고개 아래는 안개가 없어 시야가 좋았는데 고도를 높여 갈수록 안개가 진하게 끼여있다. 이슬비가 내리는 잔뜩 흐린 날씨다. 이곳은 전망이 좋은 곳인데 아쉽지만 보여주는 것만 보라는 뜻으로 생각하고 걷는다. 이곳에도 알프스의 봄꽃 꽃 알펜 로즈가 온산을 붉게 물들이고 있다. 고도가 높은 탓에 봄이 천천히 오는 알프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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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에서 프랑스로 넘어가는 발므 고개 가는 길의 야생화 초원(좌) 르 쁘티 마을 계곡을 덮고 있는 안개(우)

스위스에서 프랑스로 넘어가는 발므 고개 직전 능선에 안갯속으로 큰 건물이 보인다. 여기가 발므 산장인데 모든 문이 굳게 닫혀 있다. 아직 이른 계절인가? 문을 열지 않았을 리는 없는데 무슨 연유에 굳게 닫혀 있는지 알 수가 없다. 맥주 한잔이 그리웠는데 그냥 가야겠다.


발므 고개는 안개가 진하게 끼여 있어 주변의 풍경은 볼 수 없어 아쉽다. 국경을 넘는 기념사진은 남기고 포젯고개로 내려간다. 안개가 너무 진하에 끼여 방향감각을 찾을 수 없어 오직 이정표만 보고 걷는다. 가끔 방목한 젖소의 워낭소리가 이곳이 알프스 임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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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와 프랑스의 국경인 발므 산장(좌) 국경 경계선인 발므 고개의 표지석과 이정표(우)

포젯고개 가는 길이 알프스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목초지 구간인데 안개가 진하여 사진도 찍지 못하니 오직 걷기에 집중한다. 모든 게 안갯속에 갇혀 있으니 보이는 게 없고 오직 길만 보고 걷는다. 트레르샹으로 가는 길은 점점 고도를 낮추니 그제야 안갯속을 탈출하여 뭔가 좀 보이기 시작한다.

안개에 젖어 이슬방울이 대롱대롱 매달린 초롱 같은 야생화

점심은 트레르샹에서 먹고 오후에 락 블랑으로 오르기로 하고 레스토랑에 도착하니 아직 문을 열 시간이 되지 않았다고 기다리라고 한다. 시간 하나는 정확하게 지키는 이곳 사람들의 문화다. 12시가 되어 식당으로 들어가니 전통 알프스풍 실내 장식이 이채롭다. 치즈로 된 음식을 주문했는데 그런대로 먹을 만한데 좀 짜다. 치즈는 먹을 때는 약간은 느끼하고 짜지만 속이 든든해 오후에 허기를 느끼지 않고 걸을 수 있으니 칼로리는 높은 음식이다.


이곳의 하우스 와인은 1L에 20유로인데 0.5L는 12유로로 0.5L 두 번 주문하는 것보다 1L로 한번 주문하는 게 싸게 마시는 방법이다. 와인은 몇 잔 했더니 알딸딸한 취기를 느끼며 락 블랑으로 향했다. 여행에 적당한 알코올 로딩은 기분을 업 시켜주는 묘한 마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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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르샹의 알프스풍 레스토랑(좌) 점심식사로 먹은 치즈가 가득한 음식(우)

샤모니의 최고의 전망 좋은 곳 중 하나인 락 블랑을 오른다는 기대감에 부지런히 발길을 재촉해 본다. 발아래 샤모니 마을이 고스란히 내려 다 보이는 락 블랑 가는 길이다. 다시 고도를 높이니 금세 안개 지역으로 들어간다.


이 길은 바위지대를 통과하기 때문에 10여 개의 철사다리를 오르는 곳으로 암벽 하기 좋은 바위가 많다. 암벽장비가 있다면 암벽을 즐기고 싶은 곳이다. 부모와 꼬맹이 두 명이 암벽을 배우는 모습이 정겹다. 어릴 때부터 암벽을 배우면 호연지기와 어려움을 스스로 극복하는 힘을 길러 주는 데는 암벽등반이 좋은 스포츠 활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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락 블랑을 가는 길에 만나 록 크라잉을 하는프랑스 가족(좌) 철사다리로 올라 가는 락 블랑 가는 길(우)
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샤모니 마을 풍경

엄마가 확보를 보고 아이들이 바위를 기어오르는 모습은 한국에서는 좀체 보기 힘든 풍경이다. 강하게 키우고자 하는 프랑스 엄마들의 지혜가 엿보인다. 지식이 부족하면 무식하다는 소리를 듣고 지혜가 부족하면 어리석다는 소리를 듣는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는 지식보다 지혜가 더 필요한 이유다. 그런데 우리네 사회는 지혜보다 지식만을 가르치려고 하니 그게 문제다.


어제 르 쁘티 캠핑장에서 만났던 아저씨를 다시 만났다. 통성명을 하고 보니 영국에서 왔다고 하며 올해 52세라고 하는데 장기간 트레커 생활을 하다 보니 수염이 많이 자라 나이가 좀 들어 보인다. 그러나 마음만은 참 편해 보인다. 그러고 보니 샹페 캠핑장에서도 만났으니 3일을 같이 걷고 있다.


그는 1인용 비비색으로 잘 때만 그곳에 들어가고 평상시에는 밖에서 책을 읽거나 맥주를 마사곤 했다. 비비색은 침낭 외피만 있는 것과 같아 안에 공간이 없어 배낭도 비닐주머니에 넣어 밖에다 둔다. 비라도 오면 옴짝달싹도 못하고 그 속에 죽쳐야 하는데 이런 걸 탠트 대용으로 사용하는 이유는 가볍기 때문이다. 장거리 도보여행에서 최대의 적은 무게 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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락 블랑 가는 길에 만난 10m나 되는 철사다리(좌) 바위길에 노니는 아이벡스 무리(우)

락 블랑(Lac Blant) 주변에는 세계적 보호종인 아이벡스가 많이 서식을 하는데 소과의 염소 속에 속하는 종으로 유럽의 알프스 산악지대에 주로 서식을 하며 멸종 위기종으로 보호를 받고 있는데 사람이 해치지 않는다는 걸 아는지 근거리에서 놀라지 않고 다가 가도 경계를 하지 않고 사람을 그리 겁내지 않는다.


어느 누구도 해치지 않고 사진만 찍을 뿐 위협하는 사람이 없으니 알프스는 사람과 자연이 공존하는 산이다. 가파른 바위산도 인공물을 최소화하여 철사다리만 있지 우리와 같이 철계단을 설치한 곳은 한 군데도 없었다. 긴 철사다리는 10여 m가 되는 곳도 있지만 안전시설은 철사다리 밖에 없다. 자연과 조화되지 않는 철계단을 많이 설치하지 않은 이유를 우리나라 국공은 생각을 해봐야 할 것이다.


이런 높은 산 곳곳에 호수가 있어 알프스의 눈 녹은 물이 가득가득하다. 눈과 바위 사이를 걷다 내려다보면 펼쳐지는 목초지 그것들의 어울림이 알프스다. 락 블랑(Lac Blant) 산장에 도착하니 산장 앞에 커다란 호수가 아래 위로 두 개나 있다. 2,352m나 되는 높이에 이런 큰 호수가 있다는 게 신기하기만 하다. 이곳이 전망이 좋고 케이블카를 타면 비교적 접근이 쉬워 선호하는 이들이 많아 Tmb길에 가장 예약하기 힘든 산장이 락 블랑 산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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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전망을 자랑 하는 예약하기 가장 어려운 락 블랑 산장(좌) 락 블랑에서 내려다 본 몽블랑 연봉과 샤모니를 운해로 가득 채운 모습(우)

탠트가 있기에 여유롭게 올라 오니 아르뻬데 고개에서 만난 춘천 부부팀이 먼저 와 계신다. 그분들도 탠트를 치신단다. 락 블랑의 탠트 명당자리는 산장 뒤 바위를 오르면 샤모니가 발아래로 내려 다 보이고 몽블랑이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이곳이 최고의 탠트 명당자리다.


호수에 내려가 물을 길어 오는데 산의 높이가 높은 탓에 호흡이 가쁘다. 그렇다고 고소를 느낄 높이는 아닌데 평지보다 숨이 차는 곳이다. 아이벡스란 놈이 탠트 근처까지 와서 풀을 뜯으며 서성인다. 전혀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그간 그들은 그렇게 길들여져 있어 인간과도 그만큼 친숙해져 있는 것 같다.


이제 Tmb 일정도 샤모니가 보이는 락 블랑까지 왔으니 종반으로 간다. 늘 생각했던 알프스의 풍경을 보면서 두발로 동그라미를 그려 왔는데 이제 그 동그라미를 거의 완성해 간다. 이곳에 보는 일출이 최고라고 하는데 내일은 일출과 호수에 반영되는 몽블랑을 담아 볼 수 있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