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의 트레일 돌로미티
피우메 산장의 아침은 젖소들의 목에 건 워낭소리로 시작한다. 산장 뷔페식을 기다리면서 주변을 돌아보았다. 앞으로 펠모 봉이 백운석의 흰 자태로 우뚝 솟아 뽐내고 있다. 평화롭다는 말은 이런 풍경에 쓰라고 만든 단어가 아닌가 생각되는 아침이다.
어제 이탈리아 아줌마 4분과 함께 걸어왔는데 그중 한 분이 일찍 길을 나선다. 오늘 꼴다이 산장에서 남편을 만나서 티씨 산장에서 오늘 묵는다고 한다. 우리와 같은 일정이라고 하니 다시 보자고 하며 손을 흔들고 서둘러 길을 떠난다.
피우메 산장에서 기념티셔츠를 팔고 있어 파란색으로 1개 샀다. 지난번 산티아고 순례길에서도 티셔츠를 샀는데 입을 때면 그때 생각이 솔솔 난다. 기념품은 추억을 더듬기 좋은 끄나풀이 된다. 7시에 식사를 하는데 대부분의 산장이 그러하듯 빵과 하몽, 시리얼에 우유, 쥬스가 있고 달걀과 후식으로 커피나 차가 있다. 그런데 우리가 보기는 시답잖은 식사 같아도 그걸 먹고 걸어 보면 허기가 지지 않으니 칼로리는 높은 것 같다.
상쾌한 알프스의 산 공기를 마시며 472번 길을 따라 걸으면 도로변에 있는 스타울란자 산장을 만난다. 여기서 차를 주차하고 트레킹을 시작하는 당일치기 트레커가 많은 곳이다. 도로를 버리고 472번 산길을 계속 따라 진행하면 펠모 산장이 있는 도로에 들어서는데 여기에 캠핑장이 있다. 어제 티씨 산장이 풀이면 이곳에 오려고 했다. 캠핑장 앞의 바에서 이른 아침인데도 맥주 주문이 가능했다. 수제 맥주라고 칭찬하는 주인아주머니의 말대로 맥주 맛이 진하고 목 넘김이 좋다. 돌로미티 지역에서 마시는 맥주 특유의 향이 내 입맛에는 잘 맞는다.
꼴다이 산장까지는 온몸으로 햇볕을 받고 올라야 하는 구간이기에 물통에 물도 채우고 맥주로 미리 갈증을 풀고 차량통행이 가능할 정도로 넓은 길인 564번 길에 들어섰다. 길은 그리 가파르지 않은데 햇살이 워낙 강해 땀을 줄줄 흘렸다. 그나마 가끔 산바람이 있어 다행이었지 따가운 햇살이다. 1,816m에 있는 여름농장인 말가 포이다(Pioda)는 문이 굳게 닫혀 있고 영업을 하지 않는다. 너무 더워 그늘에 앉아 간식을 먹고 꼴다이 산장까지는 320m의 된비알을 올라야 한다. 여기까지는 차로 진입이 가능한 곳이지만 이제 트레킹 길로 바뀐다.
꼴다이 산장도 이 길에서 리프트를 이용하여 산장까지 물품을 운반한다. 함께 오른 이탈리아 꼬마도 아버지와 함께 오르는데 잘도 걷는다. 그만큼 자주 트레킹을 했다는 증건데 우리네 아이들은 공부에 찌들어 마음 놓고 자연을 즐기며 산길을 걷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게 느껴진다. 어떻게 사는 게 제대로 잘 사는 건지 곰곰이 생각해 볼 문제다. 이 길은 1차 세계대전 때 노새의 등에 전쟁물자를 실어 나르던 노새 길이다.
꼴다이 산장은 2,132m의 높이에 위치한 산장으로 산바람이 차갑게 느껴져 금세 땀이 식으니 으슬으슬 춥다. 다들 실내로 모여드는데 7월 중순의 꼴다이 산장은 난로 불을 피우고 있다. 산이라 그렇게 기온이 많이 내려간다. 점심으로 옥수수 치즈로 만든 수프를 주문했는데 맛이 좋았다. 여기는 다른 산장과 달리 Apple Strudel이란 사과 담금주를 판다. 이곳만 파는 술이라 마셔보니 그리 독하지 않고 사과의 달콤함과 향이 우러나는 달달한 맛의 사과주다.
2,191m의 꼴다이 고개로 가는 길은 야생화가 지천으로 깔려 있고 고개를 넘으면 꼴다이 호수가 내려다 보인다. 2,000m가 넘는 곳에서 천상의 호수를 만나니 신기하다. 호수도 작은 게 아니라 무척 큰 호수인데 오늘 마침 이탈리아 청소년들의 행사가 있는지 호수 주변에 청소년들로 가득하다. 파란 하늘과 하얀 백운석 그리고 에메랄드빛 꼴다이 호수 거기에 녹색 초원이 펼쳐지는 꼴다이호수 주변 풍경은 천국이 따로 없고 여기가 천국이다.
티씨 산장으로 가는 길은 오후가 되니 서서히 몸은 지쳐 오고 그간 긴 트레킹 생활로 몸이 많이도 무겁다. 티씨산장은 2,250m의 산 위에 있다. 오후의 열기를 온몸으로 받으며 묵직한 배낭을 메고 가파른 길을 오르는 것은 고행의 길이다. 티씨 산장 오르기 전 그늘에서 다시 한번 마음을 추스르고 길을 걷는데 추모비가 있다. 추모비에는 "이곳을 지나는 트레커들은 지금 천상의 낙원에 있는 산을 오르고 있을 마르코를 위해서 기도하여 주세요."라는 비문이 있다.
된비알 끝인 코리안 정상에 있는 티씨 산장은 마지막까지 입에 단내가 나도록 험한 자갈길을 올라야 했다. 티씨산장까지는 좀 먼길이지만 예약을 해둔 터라 오후 4시까지 좀 많이 걸었다. 티씨(Tissi) 산장은 이곳의 유명한 등산가인 그를 기리는 의미 있는 산장이다. 1959년 트레치메 등반 중 영원한 산악인이 된 아리오 티시를 추모하기 위하여 1963년 치베타 산군의 콜리안 정상에 세운 산장이다.
산장을 나서 산정에서 내려다보는 알레그( Alleghe) 마을을 둘러싼 알레그 호수는 마치 그림 속에 나오는 풍경 그대로다. 콜리안(Col Rean) 정상부에서 둘러보는 주변 풍경은 백미 중에 백미로 치베타 서벽의 백운암과 호수와 초원이 잘 어울려 전방이 뛰어난 곳이다
저녁 메뉴는 파스타와 쇠고기 스테이크를 주문했는데 고기가 좀 질겼다. 후식과 하우스 와인으로 식사를 끝내고 15호 도미토리로 들어가니 6인실로 이탈리안 아빠와 아들이 들어와 함께 잤다. 산정의 밤은 급히 내려가 일찍 잠자리에 들었는데 일행이 새벽에 잠꼬대가 심해 잠을 깼다. 평소 잠시 잠시 보던 사람도 24시간 40여 일을 같이 생활하다 보니 시시콜콜한 것도 들여다보게 된다. 잘하는 것은 당연하고 못하고 눈에 거슬리는 것은 더욱 크게 느껴지니 아직도 마음을 내려놓지 못한 나의 마음을 본다.
피로의 누적으로 연일 입술이 메말라 부르트고 거칠어 립스틱 연고를 바르는데도 소용이 없고 물집이 잡히려고 간질거린다. 좀 여유 있게 다녀야 하는데 막상 길에 서면 그날 거리를 걸어야 하니 피로가 누적된다. 다들 피곤하니 마음의 여유가 없고 신경이 날카로워진다. 에휴, 이제 돌로미티 트레킹도 종반으로 간다. 그래도 돌로미티 풍경 하나만은 단연 엄지 척이다. 각본도 없는 현장에서 살아 있는 이야기가 있는 도전적인 여행이 트레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