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의 트레일 돌로미티
라 바렐라 산장 아래 민박집에서 7시에 먹는 아침식사는 빵과 쥬스와 달걀 등인데 반숙한 달걀이 6개다. 어젯밤 함께 잠을 잔 사람이 6명이다. 일행 중 1분이 1개를 더 먹으려 한다. 1개씩 먹으라는 의미인 것 같은데 그럼 누군가 1개를 먹지 못하게 될 것이고 그분은 슬퍼질 것 같다. 여행을 해보면 그 사람의 평소 마음을 알 수 있다. 타인을 배려하는지 나만을 생각하는지 은연중에 나타난다. 함께하는 여행은 서로 간 배려가 없으면 힘들어진다. 오죽했으면 여행은 가까이서 보면 개고생이라 했을까. 내가 편해지는 만큼 누군가는 그만큼 불편하고 힘들어진다. 함께 하는 여행은 서로가 퍼즐을 맞추듯 자기의 역할을 해줄 때 즐겁고 재미나는 시간이 된다.
해발 2,000m가 넘는 지역이라 아침 기온이 차갑다. 마땅히 점심을 먹을 곳이 없어 민박집 아주머니에게 점심식사를 부탁하여 빵과 음료수 그리고 과일로 점심을 싸 주신다. 혹시나 저녁을 대비해 파스타용 면도 필요하다고 하니 집에 있던걸 꺼내 주신다. 참 정이 많은 아주머니다.
어젯밤에 오늘 거리인 스코토니, 누보라우, 에버라우, 지아우, 라가주오이 산장의 예약 가능 여부를 아주머니에게 전화를 부탁드렸는데 일일이 전화하여 확인해 주었다. 오늘이 토요일이라 산장이 모두 'Full'이란다. 이곳 말이 잘 통하지 않아 궁금했는데 7월 중순임에도 숙박에 여유가 없다. 앞으로의 일정이 걱정이 된다.
토요일이라 산장 숙박은 글렀고 캠핑장을 찾아야 한다. 오늘부터 걷는 길은 알타비아 1코스다. 많은 트레커가 가장 즐겨 걷는 길이다. 지도를 보니 길이 너무 밋밋하고 눈이 즐거운 길을 찾다가 17번 길을 찾았다. 이 길을 걸어 봐야겠다.
파네스 산장을 지나 오름을 오르니 넓은 초원이 펼쳐지는데 이른 아침인데 애견과 함께 트레킹을 나서 여성 두 분이 앞서 걷는다. 들판에 목각으로 제작한 우주인이 길옆에 있다. 이곳이 우주와 비슷한가? 길에는 배가 잔뜩 부른 당나귀가 길을 막고 있는데 이곳에 목장이 있다.
통상 11번 길을 따라 알타비아 1코스를 걷는데 우린 왼쪽 길인 17번 코스로 들었다. 양쪽 산군 속에 계곡으로 오르는 코스가 백운석으로 험준하면서 장엄하게 느껴지는 코스다. 고도를 높여 가니 산 위에 부는 바람이 장갑을 낀 손이 시릴 정도로 손이 차갑다. 길은 점점 정상으로 향하고 있다.
이런 험한 산중에 이른 시간에 트레커 한분이 내려오고 있다. 어디서 자고 오는 걸까? 된 비알을 힘들게 올라 오니 바위 아래에 대피소 같은 게 있다. 목조로 지은 집인데 맨 오른쪽 문이 잠겨져 있지 않다. 너무 추워 간식을 먹으며 쉬려고 안에 드니 포근해서 좋다. 여기에 이런 집은 조난을 예방하기 위해지어 놓은 일종의 대피소인 것 같다.
여기서부터는 다시 바위 능선길을 걷는데 길 양 옆으로는 수천 길의 낭떠러지다. 전망하나는 기가 차게 좋은데 그만큼 위험부담이 있는 길이다. 최고봉은 카발로로 2,912m로 3,000m에 조금 부족이다. 길은 이제 이 능선을 넘이 내려서는데 건너편엔 토파나 디 덴트로 산군이다. 그 산군은 협곡과 기묘한 바위가 생전에 처음 보는 멋진 백운석으로 이루어져 있다.
여기서 협곡으로 내려가는 길이 장난이 아니게 깎아지른 가파른 곳을 특별히 길이 있는 게 아니고 적당히 알아서 내려가는 길인데 만약 미끄러져 구른다면 상상하기 싫은 사고가 발생할 수 있는 험악한 길이다. 푸석 돌을 조심해서 발디딤을 만들어 조심스럽게 조금씩 조금씩 높이를 낮추어 내려가야 하는 길이다.
위에서 보면 길이 없을 듯 한 길인데 자세히 보면 길의 흔적이 있다. 그때 아래에서 한분이 이 길을 거꾸로 올라오고 있다. 그러고 보면 이 길도 마니아들은 가끔씩 이용하는 길이다. 다리가 후들거리는 상단을 내려오니 건너편 토파나 디 덴트로 산군을 보면서 짜릿한 풍경을 즐기면서 내려오는 나를 본다.
그 내림이 끝나는 곳에는 초원으로 쉬기 좋은 곳이라 이곳에서 점심식사를 하였다. 아침 민박집 아주머니가 싸준 점심식사 시간이다. 이곳에서 내려온 길을 올려다보니 저런 곳에 길이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갈길이 멀어 서둘러 자리를 털고 건너편 토파나 디 로제스 산군의 웅장한 풍경을 감상하면서 401번 길을 따라 고도를 높여 갔다. 그 길의 끝에는 전망으로 유명한 라가주오이 산장 아래 라가주오이 고개로 가는 길이다.
라가주오이 산장은 케이블카로 오를 수 있는 산장으로 이곳의 일출과 일몰이 돌로미티의 최고의 전망을 자랑하는 산장이라 예약하기가 어려운 곳 중 하나의 산장이다. 올라가서 전망을 즐기고 맥주나 한잔하고 가야겠다.
고갯마루에서 올라다 보는 산장은 된비알이 기다리고 있다. 왼쪽 절벽으로는 1차 세계대전 때 참호가 촘촘히 그 모습 그대로 있다. 돌을 쪼아 만든 견고한 참호는 이탈리아와 오스트리아 간 격전지였던 곳이다. 당시에는 보급품 조달도 힘든 시기에 혹독한 겨울 추위와 싸우며 전쟁을 치른 당시의 열악했던 산악전에는 전쟁으로 죽은 병사보다 얼어 죽은 병사가 더 많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특히 이곳 산장에서 보는 일몰과 일출은 돌로미티의 백미이기도 하다.
산장 앞 전망대에 서니 360도 사방으로 조망이 되는 최고의 전망대다. 시원한 맥주 한잔과 마주하니 올라올 때 힘든 걸 보상받는 기분이다. 이곳 산장은 사우나를 즐길 수 있는 사우나 시설이 되어 있는데 산장을 예약할 때 같이 예약을 해야 한다.
내려오는 길은 20번 길로 스코토니 산장 방향으로 길을 잡았다. 거대한 바위 군인 병풍처럼 둘러싸인 치매 스코토니는 거벽에 가까이 다가 갈수록 마치 극장에서 아이맥스 영화를 보는 느낌이다. 그 거벽을 따라 라가주오이 호수까지 이어진다. 2,000m가 넘는 산중에 호수라니 놀라운 풍경이다. 이곳이 알타비아 1코스로 연결되는 길이다.
호수를 한 바퀴 둘러보고 나오며 길은 급격히 고도를 낮추는 경사길이 펼쳐지고 내리막길의 끝에는 넓은 초원이 펼쳐진다. 그곳에 그림 같은 스코토니 산장이 자리 잡고 있다. 힘들게 걸어온 길이라 갈증을 푸는 데는 시원한 맥주가 답이다. 시장기를 느껴 비프스테이크를 주문하니 저녁식사를 준비해야 하니 주문을 받을 수 없다고 한다.
지금 주문이 가능하게 뭐냐 하며 추천 메뉴를 물으니 '돼지갈비'를 추천해 준다. 주문하려 하니 옆에서 '재고 정리하려고 한다.'라고 한마디 건넌다. 왜 긍정적으로 생각하지 못하고 부정적으로 보는지 알 수가 없다. 이런 풍경 좋은 알프스 길을 걸을 때는 나를 좀 내려놓고 긍정의 힘으로 걸어도 좋겠다. 맥주와 함께 먹은 감자를 곁들이 돼지갈비는 이곳 풍경과도 어울리는 최고의 맛으로 모두가 인정해 준다.
다시 200여 m의 고도를 낮추어 오늘 목적지인 사소 델카 캠핑장으로 가는 길은 한참을 걸어야 자동차 길과 만나고 개울을 건너 숲길을 찾아 가는데 이탈리안을 만나 캠핑장을 물으니 그도 오늘 캠핑을 한다고 하여 따라오라고 한다. 그분을 따라가니 캠핑장이다.
이곳은 탠트를 치는 장소에 따라 가격이 다르다. 앞쪽은 좀 비싸고 뒤쪽은 싼 장소라고 한다. 여름철이지만 이곳은 1,700m의 산중이라 그늘보다는 햇볕이 그리운 곳이다. 좀 비싸도 캠핑카 옆에 햇볕이 잘 드는 앞쪽에 자리를 잡았다.
이곳의 캠핑장은 캠핑에 필요한 식재료뿐만 아니라 연료 등 캠핑에 필요한 물품을 판매한다. 빵은 아침에 그날그날 구운 빵을 팔고 있어 불편함이 없다. 전기도 사용할 수 있고 wifi도 되며 더운물 샤워도 되며 빨래를 할 수 있는 세탁기도 있다. 오랜만에 제대된 문화 해택을 받을 수 있다. 일상에 늘 접하는 사소한 것이 며칠 떠나 보면 그게 새삼 고맙고 소중한 일상임을 느끼게 된다. 이곳이 트레커에게는 천국이 따로 없다. 느긋이 즐기면서 쉬어가도 좋은 안락한 캠핑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