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의 트레일 돌로미티
산속의 가르데나치아 산장에서 포근히 잘 잤다. 목조 산장이라 나무향도 좋았고 산 중턱이라 전망이 좋아 창밖으로 보는 라 빌라 마을도 주변 풍경도 안갯속에 아름답게 보이는 좋은 곳에 자리한 산장이다. 산장 뷔페식으로 아침식사를 하고 계산을 해 보니 어제 마신 와인이 좀 과했던 탓에 300유로나 된다.
나그네는 아침이면 길에 선다. 7시 40분에 또 길을 나선다. 아랫마을인 라 빌라 마을까지는 1시간 반이면 내려갈 수 있는 거리인데 줄곳 내리막길이다. 내리막이 끝날 때쯤 늑대 함정을 발견했다. 예전에 이곳에는 사슴, 곰, 늑대 등이 살았는데 마을 사람들이 이 동물을 잡으려고 함정을 깊이 파고 수풀이나 나뭇가지를 덮어 마을로 내려오던 동물이 빠지면 잡는 동물 함정인 셈이다.
무리 지어 사는 동물들의 특성상 내려오다가 한 마리가 빠지면 다른 동물도 길을 가지 못하고 서성 거리다가 다시 빠지는 그런 일이 많았단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함정에 빠진 동물을 잡았다고 하니 이런 게 당시 이곳의 사냥 방식이었던 것이다.
아침 안개가 자욱한 라 빌라 마을은 조용한 알프스 자락의 작은 동네로 라 빌라(La Villa / 라일(La Lla)로 부르며 해발 1,416m의 산골마을이지만 유일하게 라딘어를 사용하는 지역으로 이탈리아야 돌로미티 지역에서 사용되는 레토 로만어의 한 종류인데 로마시대에 유렵지역을 물론 알프스 지역도 로마인들에게 점령되어 로마 문화가 전해졌는데 현지 토착 문화와 융합되면서 생겨난 것이 라딘어와 문화라고 한다.
현재 라틴어 사용인구는 3만여 명으로 이탈리아 정부가 인정한 공용어 중 하나이며 현지 학교에서는 정신교육과 일상 대화뿐만 아니라 관공서의 공문서와 거리 표지판에 이탈리어와 독일어와 함께 사용되고 있다.
고요한 산골마을 라 빌라를 11번 길을 걷다가 12번 길을 걸어 목장 축사 옆을 걸어 고도를 높였다. 점점 발아래로는 라 빌라 마을이 멀어져 가고 침엽수 산길을 걷다가 개울에서 수통에 물을 채웠다. 이곳을 지나면 물길이 끝난다. 돌로미티 지역은 계곡을 자주 만나게 되는데 그 물을 정수하지 않고 마셔도 배탈이 나지 않는 식수로 사용해도 되는 깨끗한 물이 다.
이른 시간에 산을 올랐다고 생각했는데 앞에서 중장비 소리가 들려와 올라보니 등산로를 정비하는 중장비가 일찍도 올라와서 훼손된 등산로를 정비하고 있다. 삽을 든 인부도 2명이나 있다. 어디를 가나 수고로운 분이 있어 안전한 트레킹을 즐길 수 있는 것이다.
누운 잣나무 지역을 통과하니 식물생장 한계점을 넘어 마사토 길을 지그재그로 올라 가는데 이 고개가 라 바렐라 고개(Lavarella-Sattel/이; Forcella Medesc/2,533m) 마루에 도착하게 된다. 고개를 오르면 중간에 쉴 곳이 마땅하지 않아 초입에서 간식을 먹고 바람이 부는 라 바렐라 고개를 향해 천천히 발걸음을 더했다.
어제까지는 가끔 내림이나 오름에서 케이블카나 곤돌라의 도움으로 쉽게 오르고 내릴 때도 있었는데 오늘부터는 오직 두 다리로 고도를 높여야 한다. 라 빌라 마을에서 라 바렐라 고개까지는 1,300m 고도를 높이는 게 쉽지 않은 높이다.
다행히 날씨가 그다지 덥지 않고 바람이 불어 땀을 흘리지 않고 걸을 수 있어 체력소모가 적어 많은 도움이 되었다. 어제 크로이츠 코펠 산군을 맞은편에서 볼 때 어디에 고개가 있을까 했는데 그래도 그중 제일 낮은 곳에 라바 렐라 고개가 있다. 앞서 가던 프랑스 할아버지 두 분이 걷다 쉬다 하는 틈이 그분들보다 먼저 고갯마루에 오르니 뒤에 올라서 대단하다고 엄지 척을 한다.
그런데 이 영감님들은 프랑스어 외에 영어는 완전 꽝이다. 프랑스 사람들도 영어를 못하는 분이 많다고 한다. 그들과 대화는 더 이상 어렵다. 고갯마루의 바람이 금방 체온을 떨어트려 바람막이 옷을 입어야 했다. 여기는 여름 속에 늦가을 날씨다.
12시가 넘어 빵으로 점심식사를 하는데 바케트 빵이 가죽 씹는 맛이라 입맛이 없다. 그래도 몇 조각 뜯어먹고 12번 길을 걷는데 배낭이 버거운 울타리님은 침낭 커버를 주겠다고 한다. 얼마를 더 가서 쉬는 시간에 새치 약을 가지고 왔더니 무겁다고 치약을 짜서 버린다. 얼마나 무거웠으면 치약까지 짜서 버리나 싶다. 트레킹의 최대의 적은 배낭의 무게다. 배낭을 꾸릴 때는 그곳의 날씨와 기후를 감안하여 꼭 필요한 장비를 신중히 결정해야 한다. 무게를 줄이기 위해 칫솔 자루를 잘라 사용했다는 이야기는 두고두고 생각해 볼 일이다.
알타비아 1코스의 라 바렐라 산장으로 가는 길에는 산중 연못을 지난다. 주변 풍경도 8코스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눈이 즐겁다. 물길을 지나고 작은 목장을 지나 연못 옆에 자리 잡은 라 바라렐라 산장을 찾아가니 "Full"이란다. 여기가 Full이라면 건너편 파네스 산장도 그럴 것이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주말이네. 주말은 나들이가 많은 날이라 자리가 없어 난감하다.
길을 따라 좀 내려가면 숙소가 있다고 하여 걸어가니 삼거리가 나오고 그곳에 개인이 운영하는 작은 산장이 있는데 이곳은 방이 1개 남았는데 2명만 가능하다고 2명은 탠트를 치라고 한다. 음식도 2인분만 된다고 한다. 지금 보관 중인 음식이 그것뿐이라 하니 난감하다. 2인실에 비좁게 4명이 잘 수 있느냐고 하니 절대 안 된다.
그 아래에도 민박집이 있는데 숙박이 가능하다고 한다. 1인 55유로이고 아침 제공이다. 이렇게 침대가 부족한 이유는 오늘이 휴일의 시작인 금요일이다. 내일이 토요일이라 산장이 만원일 것 같아 내일 도착거리에 있는 산장에 예약을 부탁했더니 모두 Full이라 하고 간혹 2명만 가능하다고 한다.
오늘은 숙소를 해결했지만 내일이 걱정이다. 내일 도착지 주변의 캠핑장을 찾아보니 스코토니 산장 부근에 캠핑장이 있다. 그곳을 목적지로 정하고 코스를 짜 봐야겠다. 돌로미티 지역은 뚜르 드 몽블랑 지역과 달리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이라 탠트 설치가 금지된 지역이다. 그래도 탠트가 있으면 주변 캠핑장을 이용할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민박집 2층 도미토리 룸은 10여 명이 묵을 수 있는 큰방이지만 우리 팀과 이탈리아 부부팀과 2팀만 묵었다. 이곳은 알타비아 1코스가 지나는 곳이라 차량으로 진입을 할 수 있는 넓은 길인데 풍광은 알타비아 8코스에 비하면 밋밋한 느낌이 드는 곳이다. 내일부터는 알타비아 1코스 따라 남진을 할 계획이다. 그간 눈을 너무 높여 놓아 어디로 코스를 잡아야 눈이 즐거울지 고민이 되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