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의 트레일 돌로미티
어제까지는 남에서 북으로 진행하였는데 오늘부터 서쪽에서 동쪽으로 진행을 한다. 호텔의 식사는 산장의 식사보다 풍성해서 맛있게 먹었다. 어제 호텔 입실 때 우여곡절이 많았던 주인 할머니와 아쉬운 이별의 정을 나누면서 기념사진도 한 장 찍었다. 멀리서 온 동양인을 따뜻이 살펴주시고 간다고 하니 불편한 몸으로 입구까지 나오셔서 인사를 나누었다. 만남은 반가운 것이지만 헤어짐은 아쉬운 게 동서양을 떠나 한결같다. 배낭을 메고 다리를 건너 세체다 곤돌라 승강장으로 향했다. 세체다는 해발 2,456m로 남한의 한라산보다 훨씬 높다. 오르티세이에서 표고차 1,200m를 높여야 한다. 케이블카로도 워낙 길어 중간에 한번 갈아타야 한다. 1,786m 지점에서 갈아타고 2번에 걸쳐 세체다에 올려 준다.
바로 눈앞에는 오들레 산군(Gruppo Delle Odle)이 펼쳐지고 건너편에는 푸에즈 산군(Gruppo Puze)과 셀라 산군(Gruppo di Sella)이 장관으로 다가온다. 오들레(Odle)는 이탈리아어로 바늘이란 뜻이다. 침봉이 바늘 같이 뾰죽하게 솟아있다.참 전망이 좋은 곳이다. 2B길을 따라 오들레 산군 아래를 지나면서 작은 산장인 피알롱기아(pieralongia) 산장을 지나는데 이 산장에 키우는 당나귀가 참 귀엽게 생겼다.
그간 그렇게 보고 싶던 꽃이 있었는데 여기 길가에 지천으로 깔린 꽃이 산악인의 상징꽃인 에델바이스다. 국내에서는 가끔 설악산 공룡능선과 천화대 부근에서 보긴 했지만 알프스에서 만난 에델바이스는 남달랐다. 에델바이스(Edelweiss)는 일명 솜다리란 꽃으로 스위스 국화로 고귀한 흰빛이란 뜻으로 '알프스의 영원한 꽃'으로 알려져 있다. 별처럼 생긴 벨벳 같은 하얀 꽃은 순수의 상징으로 '에델'은 고귀한 '바이스'는 흰색을 뜻하며 그 기품 있는 모습은 산악인의 동경의 대상이다.
에델바이스 꽃을 지나니 가파른 고개가 떡 하니 버티고 있다. 오늘도 어김없이 큰 고개를 하나 넘어야 한다. 2,505m인 Forces de Sielles 고개를 넘어야 한다. 고개 아래까지는 그리 고도를 높이지 않더니 갑자기 고도를 높인다. 지그재그로 난 길을 따라 오르는데 숨이 턱에 까지 찬다.
앞서 가는 한 팀이 있었는데 가벼운 배낭을 메고 오르는데도 진행속도가 느리다. 거북이걸음으로 한바탕 땀을 솟고 오르니 길은 능선으로 이어지는 게 끝이 끝이 아니다. 다시 바위에 설치해둔 철제 난간을 잡고 오르니 널찍한 고갯마루 정상이다. 뒤이어 올라온 독일인 커플과 서로 사진을 찍어 주었다. 그들이 먼저 출발했는데 먼저 올라 오니 엄지를 치켜세우며 원더풀을 연발한다.
이곳에서 보는 전망이 압권이다. 특히 셀라 산군은 작은 그랜드 케년을 연상하듯 협곡과 바위가 뛰어난 전망을 자랑한다. 바람이 강하게 불어 양지쪽에서 준비해온 과일과 빵으로 점심을 먹었다. 이제 알타비아 2코스를 걷게 되며 푸이즈 산장으로 길은 이어진다. 셀라 산군의 정취에 흠씬 빠져 걷다 보니 푸에즈 산장에 13:30에 도착하였다. 한낮의 맑은 날인데 바람이 있어 으시시 춥기 조차하다. 알타비아 2코스의 산장이라 트레커들이 많이 모여 있는데 겨울 복장에서 여름복장까지 각양각색이다.
점심식사는 하였고 여기서 맥주 한잔은 피로를 풀어준다. 1번 길을 따라 몬티젤라로 향했다. 몬티젤라는 마치 달나라에 온 듯 백운석이 넓게 깔린 바위 평원으로 좀체 접하기 어려운 풍경으로 빨강과 흰색으로 칠한 길을 따라 이어지는데 이곳의 최고 높이는 2,660m로 멀리 내일 걸을 크로이츠 코펠 산군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고 그 아래로 라 벨라 마을이 자리 잡고 있다.
돌로미티 산군은 고개 하나를 넘을 때마다 새로운 신세계가 펼쳐지는 풍광이 그간 힘들었던 것을 만회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오늘은 당초에는 라 빌라 마을까지 걷기로 했는데 도시 내음이 있는 호텔보다는 산중의 산장이 더 좋은 것 같아 가르데나치아 산장까지 걷기로 하였다.
내리막길은 바위 사이 계곡을 걷는 길로 양쪽이 바위로 둘러 쌓인 골짜기를 따라 걸었다. 전망이 없어 갑갑하기는 했지만 계곡을 집중해 걷는 것도 색다른 경험이었다. 좀 일찍 산장에 도착해 코인을 사서 샤워도 하고 좀 여유를 부려 본다. 이곳 산장은 담금주도 있는 7월의 햇살이 좋은 가르데 나치아산장이다. 이런 길은 걸어도 걸어도 지루하지 않은 즐거움이 가득한 길이다. 그 길을 걷는 주인공이 된 게 축복을 받은 것 같다. 양지쪽 햇살을 받으며 돌로미티 풍경을 보며 들이키는 화이트 와인맛이 감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