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비싼 유리잔을 대하는 태도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읽고 마음에 남은 것들
온라인으로 외국인에게 책을 파는 일을 부업으로 하고 있다. 한국어 교재가 제일 잘 팔리고 한국의 베스트셀러 소설이나 에세이도 구매하신다. 외국어로 번역되어 있는 유명한 한국 소설들 중에서는 방탄소년단이 추천한 한국 책 ‘아몬드’가 인기가 좋다. 김영하의 소설이나 윤동주의 시집 등, 외국인이게 추천할 만한 책도 구색 맞추기 삼아 올려놓았다.
종종 손님들과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윤동주의 시집 같은 것을 물어보는 사람이 귀하긴 한데, 그런 기회를 만나면 하지 않아도 될 찬사를 팔불출처럼 풀어놓는다. 제일 문의가 많은, 읽지도 않은 책 ‘아몬드’에 대해선 제법 알은체 할 만큼 대강의 내용을 인지하고 있다. “한국에서 인기가 좋아요. 다들 재미있데요.”하고 말할 때는 읽지도 않은 사람이 책만 팔려는 수작인 것 같아 ‘빨리 읽어봐야지.’ 하고 생각하지만 금세 돌아서면 잊는다.
며칠 전 한 손님이 ‘채식주의자’가 재미가 있는지 물어왔다.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맨부커상을 수상한 후 호기심에 도서관에서 연작소설이라는 것을 모르고 한 편만 읽었다. 살아있었던 것을 먹지 못하게 된 아내 때문에 겪는 남편과 가족들 간의 갈등을 다룬 작품이었다는 정도만 두리뭉실하게 남아있었다. 읽을 당시 제법 재미가 있었던 기억이 나서 “저는 재미있게 읽었어요.”하고 답을 했는데 영문판, 한글판 모두 구입하셨다.
이 일이 있었어도 이 책을 다시 읽어봐야지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반납일에 맞춰 도서관에 책을 반납하러 갔던 참이었다. 자료실 마감 시간에 겨우 맞춰 온 터라 반납만 하고 갈 생각이었다. 집에 읽을 책이 가득해도 도서관 책들은 또 항상 나를 유혹하고 나는 거기 넘어가고 만다. 신데렐라의 마감 시간에 쫓겨 내게 선택된 책 중 한 권이 한강의 ‘채식주의자’였다.
책이 세 편의 연작으로 이루어진 소설이라는 것을 빌려온 날 알았다. 첫 편 ‘채식주의자’는 읽으니 내용이 선명하게 되살아났다. 이상한 것은 ‘몽고반점’ 역시 어디선가 따로 읽은 적이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검색해보니 2005년도 이상 문학상 대상 수상작이다. 15년 전에 읽은 소설이 기억날 정도인 것을 보면 예술로 에둘렀다 하더라도 형부와 처제의 근친상간은 내게 쉽게 받아들여지는 소재는 아니다. 다시 읽어도 그 몰입도가 과하다 싶게 사람을 몰아붙인다. 더욱이 독립된 단편들로만 알던 이야기가 하나로 이어지며 갖게 되는 그 시너지는 가히 폭발적이었다.
연작이 아닌 단편으로 처음 읽었을 때의 ‘채식주의자’는 생명, 여성성, 부자연스러움에 대한 거부 등 나의 독서 키워드는 다분히 페미니즘에 치우쳐 있었다. ‘몽고반점’ 은 예술을 통한 근원으로의 회귀를 다루는 소설이라 읽었다. 마지막 편인 ‘나무 불꽃’까지 읽고 책을 덮었을 때, 내 머릿속에 남은 단어는 ‘미쳐가는 영혼들’이었다.
나는 미쳐가는 사람을 가까이서 지켜본 적이 있다. 그는 말은 할 수 있나 의문이 들 때 즈음 한 두 마디 말을 했다. 새벽에는 신문을 돌리고 저녁엔 공장에 다니며 공부를 했다. 아르바이트를 도대체 하루에 몇 개를 해요? 잠은 언제 자요? 하고 물으니 한참 뜸을 들이다 고항에 계신 어머니한테 돈을 보내야 한다 했다. 선한 눈매에 튀지 않았고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을 성큼 돕기도 했다. 누구나 낯선 땅에선 서로를 의지하게 되지만 나이가 우리 또래보다 많았던 그 오빠를 학우들은 대체로 좋아했다.
갑자기 부어진 뜨거운 물에 노출된 유리잔은 순식간에 쩍 금이 가며 손 쓸 틈도 없이 산산조각 나듯 부서졌다. 한 번 깨어진 이성의 조각은 다시 잘 붙지 않는 것일까? 그는 매일 다니던 곳에서 종종 길을 잃었다. 빵공장에서도 뭔가 잘못하여 일자리를 잃은 후 하루 종일 잠만 자는 일도 잦았다. 망치로 못을 박으려는 친구를 보고 발작을 일으킨 그는 그날 밤 모습을 감추었다. 간절함과 헌신으로 그 파편들을 다시 찾아보려 애썼던 지인들도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았다. 그때 우리는 다들 그를 미쳤다고 단정 지었지만 그는 자신만의 어떤 공고한 세상에 있었던 것일까. 결국 그는 주검으로 돌아왔다.
가진 것을 모두 놓아버리고서라도 본래의 나로 돌아가고 싶은 본능, 미친다는 것을 치매와 비슷하다 생각했다. 미치지 않고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은 자신을 괴롭히는 것, 다 놓아버리고 나면 주변인이 괴로워지는 것이라고. 미쳐버린 영혜와 아직은 미칠 수 없는 인혜. 자신이 제일 큰 피해자라며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라도 영혜와는 더 이상 같이 살 수 없다는 영혜의 남편과 모든 것을 다 잃을 것을 알면서도 욕망에 이끌리는 대로 몸과 정신을 놓아버리는 인혜의 남편. 안쓰럽지 않은 존재들은 누구인가. 제대로 미치지도, 어린아이로 돌아가지도 못하게 하는 정상적인 인간들의 자기 중심주의가 왠지 간담을 서늘하게 한다.
평범해 보이는 사람들, 착하고 여린 사람들, 나만 생각하며 이기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말할 수 없는 다양한 폭력의 흔적을 감추고 있는 사람들, 끝나지 않는 경쟁에 내몰려 온갖 스트레스를 감내해야 하는 사람들, 현대인은 누구나 금 간 둑 하나는 가지고 있을 것이다. 가두어두었던 억압의 봇물들이 새어 나오다 작은 압력에 의해 둑이 터지면 더는 주워 담을 수 없는 상황에 맞닥 뜨리게 될 것이다. 값비싼 유리잔이 혹여나 깨어지지 않을까 삼가고 귀히 여기는 마음으로, 인간을 대할 때는 말 한마디, 눈빛 하나, 허투루 해서는 안 되는 것이라 마음에 새긴다.
이십 년도 더 되어가는 아픈 인연을 소환한 탓에 몸도 고달팠던 것일까. 책을 덮고 12시간을 내도록 자고서도 마음은 개운해지지 않았다. 다시 이 소설에 대해 물어오는 손님이 있을까. 기대하는 마음과 더불어 거리낌도 남는다. 분명 제대로 모르던 때만큼 열심히 책을 선전할 순 없을 것 같다. 이렇게 말할지 모르겠다.
“손님, 한 번 손에 들면 놓을 수 없을 정도로 재미있는 소설입니다. 묵직한 우울감에 며칠 마음이 아플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