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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승희 Oct 16. 2023

간절히 외롭고 싶을 때, 부산역

나의 사적인 부산 여행기 2

"희야, 나 임신했어. “

토요일 저녁 6시, 한 옥타브 올라 간 목소리로 전하던 M의 말을 기분 좋게 떠올리며 그녀를 만나러 지하철을 타고 부산역으로 향했다. M은 '여자반쪽'이란 별칭으로 핸드폰에 저장되어 있는 고등학교 동창이다. 홀로 계신, 연로한 어머니를 보러 M은 남편과 함께 가끔 부산에 온다. 이백 통이 넘는 내 편지함에 M에게서 받은 편지가 절반 이상이고 내가 M의 결혼식에서 축하편지를 낭송할 정도로 각별한 사이지만 둘 다 일정이 빠듯하다보니 약속을 잡고 만나기가 쉽지는 않았다. 임신 후의 첫 만남이라 M이 잘 지내고 있을지 더 궁금했다. 

     

M은 작년 초까지만 해도 골드미스였다. 대기업 사원으로 커리어도 착착 쌓았고 다양한 취미 생활을 즐기며 자유롭게 살아왔다. 그녀는 세상 곳곳을 돌아다니길 좋아해서 황량한 사막, 로키 산맥, 독일의 성이 담긴 사진 뒤편에 이국적인 우표가 붙은 엽서도 종종 보내오곤 했다. 호기심이 많았고 정도 많은 사람이 으레 그렇듯 외로움도 잘 탔다. 외동처럼 자란데다 타지에서 홀로 생활한지 오래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M이 다양한 연애경험에도 불구하고 결혼은 좀처럼 쉽지 않았다. '아, 내 사람이다'는 확신, 운명을 기다리는 로맨티스트였다. 오랜 기다림 끝에 만난 M의 남편은 요리, 청소 등 가정일도 솔선수범하는 성실하고 다정한 사람이었다. 40대 중반에 만난 그들은 '아이가 없어도 괜찮아'하며 둘만의 신혼을 즐기는가 싶었는데 결혼 후 몇 달 지나지 반가운 소식을 전해왔었다. 둘 다 어찌나 기뻐하고 안도해하던지 '아이가 없었으면 어쩔 뻔 했어'란 말이 저절로 나올 정도였다. 추억은 시간을 거슬러 오르고 내리며 나를 이리 저리 데려고 다니다 '다음 내리실 곳은 부산역입니다'란 소리에 얼른 나를 문 앞에 서게 했다. 도시철도와의 연결통로를 나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1층 대합실로 향했다.      


기차를 타는 일은 일 년에 한 번 정도 있을 법한 특별한 일이지만 결혼 후에는 확실히 그 빈도가 줄었다. 혼자서 기차나 비행기를 타고 어디로든 가야만 했던 명절날 이제는 시댁에 갔다. 일 년에 두 번 있는 학원 방학 역시 가족이나 친구들과 함께 할 시간으로 비워두게 되었다. 부산역 광장에 이렇게 혼자 서 보는 것도 참 오랜만이었다. 그 사이 부산역은 제법 세련된 중년부인이 되어 있었다. 지금 부산역이 있는 곳도 100여 년 전에는 다 메우지 못한 바다였다는 걸 생각하면 '상전벽해'란 말도 과장은 아니지만 다른 도시의 역에 비한다면 변화가 더딘 편이었다. 서울역이 현대식 옷으로 갈아입고 복합문화공간으로 단장할 때도, 유동인구가 많지 않은 소도시의 신생역이 깨끗하고 널찍하게 손님맞이를 할 때도 부산역은 시골에서 상경한 젊은이처럼 촌스러운 멋이 있었다. ktx열차가 운행되며 20여 년 동안 조금씩 바뀌어 오다가 2019년 9월 19일, 광장을 정비하고 유라시아 플랫폼으로 이름을 바꾸는 것으로 단장을 마쳤다. 이제 노숙자도 사라지고 분수대도 사라졌다. 묘하게 설레면서도 중요한 것을 잃어버린 듯한 느낌이 동시에 들었다.  

     

'카톡' 진동과 함께 울리는 알림음에 핸드폰을 열어보았다. 파스쿠치 매장에 먼저 도착해 자리를 잡고 앉아 있으니 천천히 오라는 문자였다. 서둘러 발걸음을 재촉했다. 두 사람은 창을 통해 내가 오는지 살피다가 나를 먼저 알아보고 손을 머리 위로 치켜들고 깃발 휘졌듯 흔들고 있었다. 이제 안정기에 접어든 M의 얼굴과 몸에 살이 조금 올라 있었다. 생명을 잉태한 친구를 호들갑스럽게 축하하고 안부를 나누었다. 

"아이가 있어야 부부 사이도 지루해지지 않는 것 같아." 

임신한 친구가 들으면 좋을 만한 개론서 같은 덕담을 주고받았다. 자유형으로 몸을 풀었으니 잠영하여 더 깊은 대화를 나누고 싶어졌다. 아이가 태어나 손가락 발가락 열 개를 확인할 때까지, 일은 잠시 쉬어도 자신의 책상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할 때까지 불었던 몸의 살은 90%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온다는 것을 체감할 때까지, 아이와 함께라도 여행은 할 수 있다는 것을 실행할 때까지 흰 옷에 묻은 김치 국물 한 방울처럼 신경 쓰고 거슬릴 것이 분명한 문제들을 웃는 얼굴 속에 감추어둘 그녀였다. 마음마저도 미리 대비해야 직성이 풀리는 M은 분명 101가지 사항에 대한 답들을 찾아 헤매고 있을지도 몰랐다. M에게는 개론서보다 '시를 짓는 101가지 팁'같은 책이 필요하리란 생각이 들었다.       


"입덧이 심하지 않았다니 천만다행이야."

 강도 10의 출산의 고통은 4시간이고 강도 5의 입덧은 막달까지 이어졌던 나로서는 M의 입덧이 염려되어 가끔 안부를 묻곤 했는데 M은 매번 '괜찮아, 그럭저럭 참을 만 해' 하고 대답했었다.

"한 번은 길에서 토할 것 같아서 너무 난감했어. 정말 어떻게 해야 하나 싶고 하늘이 노래지더라니까. 레몬 사탕의 도움도 많이 받았어."

괜찮다더니 그렇지도 않았던가보았다. 

"요즘엔 다리가 저려서 밤에 자주 깨게 돼. 처음엔 마비 증상에 깜짝 놀라 옆에서 자던 오빠를 깨웠어. 오빠가 한참 주물러주니 고통이 서서히 가시더라. 책에서 읽긴 했는데 그렇게 아플 줄 몰랐어. 처음엔 응급실에라도 가야하나 무서웠는데 몇 번 반복되니 혼자 견디게 되더라. 그런데 며칠 전에는 한밤중에 깨서 일어나 있는데 뭔가 억울한 기분이 들었어. 자는 오빠를 깨워서 펑펑 울며 하소연을 했어.“

그러자 옆에 있던 M의 남편은 아직도 그 때를 생각하면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었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는 '마음을 편하게 가져'란 말이 그런 파장을 불러올지는 몰랐다는 말을 하며 내게 동조를 구하는 눈빛을 던졌다. 

 "아무리 다정하고 세심한 남편에게도 몸과 마음의 변화들을 다 시시콜콜 이야기 할 수 없어요. 그게 여자를 더 외롭게 하구요." 

여자는 변화와 고통에 직면하지만 남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위로밖에 없다는 게 나도 억울해 질 때가 있었다. 아내보다 더 긴 육아휴직을 계획하며 아내의 불안을 최소화하려 애쓰는 M의 남편이 제법 미더웠지만 나는 일부러 그에게 눈총을 던지며 M의 편을 들었다.


시간은 급류처럼 흘러갔다. 기차 출발 시각 10분을 남겨놓고 또 만나자는 인사를 나누고 우리는 헤어졌다. M은 B&C 빵집의 사라다빵*이 아직 남아 있어 네 개나 샀다며 샌드위치 두 개가 담긴 노란 봉투를 나에게 건넸다. 마지막으로 '남편한테 맡길 수 있으면 아이도 맡기고 자유 시간이 나면 최대한 너를 위해 마음 편히 즐겨'라고 M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그러나 나와 닮은꼴인 M에게도 혼자 하는 여행은 누군가에게 숙제를 대신 맡기고 땡땡이친 모범생의 일탈처럼 마음을 불편하게 할 것 같았다. 당분간 M에게 우아하고 여유롭고 자유로운 여행은 없으리란 생각에 마음이 짠해졌다. 괜찮니, 라고 물어보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기꺼이 더 자주 해야겠단 다짐이 꿈틀거렸다. 검은 백팩을 나란히 맨 친구 부부의 뒷모습이 천천히 멀어져 갈 때까지 힘차게 머리 위로 손을 흔들어 주었다.     

 

오후 8시 30분, 나는 대합실 광장에 홀로 남았다. 기차를 타든, 배웅을 하든, 마중을 나가든 역이란 설렘의 대명사다. 곧바로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가 않았다. 군중 속에서 서성이며 홀로움을 좀 더 만끽하고 싶었다. 노란 B&C 종이 가방이 현지인이 아닌 여행자처럼 굴도록 유도했다. 카카오 프렌즈 샵에 들어가 검수하는 사람처럼 꼼꼼히 물건들을 구경했다. 작은 가게들을 눈으로 쓰윽 훑으며 한 바퀴 휙 돌아 나오기도 했다. "부산 기념품 사가자."며 한 손에는 이미 어묵 가방을 손에든 여행객들과 함께 간이 가판대에 늘어놓은 엽서와 스티커들을 신중히 골랐다. 1층으로 내려왔다. 문을 닫은 상점들이 많아 2층보다 한결 조용했다. 곧장 야외광장으로 나와 화려한 역사를 올려다보았다.     


변화하고 싶을 때 성형수술과 화장, 옷 등의 도움을 받듯 건물도 마찬가지다. 부분 성형을 해 왔다고 해도 달라진 모습을 크게 느낄 수 없었는데 안하던 화장을 하고 커튼월이란 드레스로 옷을 갈아입으니 부산역도 영판 딴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요즘엔 기둥을 두고 벽 대신 유리를 커튼처럼 두르는 방식을 관공서나 역, 공항 등에서 주로 볼 수 있는데 부산역도 그러했다. 부산의 출입구이니만큼 현대적이고 세련된 이미지를 만방에 선전하고 싶었던 것일까. 꼭 그런 이유가 아니라도 역은 유리와 제법 잘 어울렸다. 유리는 낯선 풍경을 보여주며 어딘가로 떠나가고 싶은 방랑욕을, 때로는 낯익은 풍경을 보여주며 돌아왔다는 안도감을 불러일으킨다. 당장 기차를 타러 달려가고 싶다가도 내일의 의무를 떠올리게 하는 가림막이자 보호막인 존재다. 광장에는 'Busan is good' 이란 조형물이 반짝 반짝 빛나고 있었다. 행인들이 기념 사진을 찍고 있었다. 나도 부산역이란 글자가 함께 보이도록 공들여 사진을 찍었다.  

    

 우리의 손은 두 개라 쥐고 있던 것을 내려놓아야 새로운 것을 잡을 수 있다. 시인 김소연은 ‘유리는 세상을 비추고 거울은 자신을 비춘다.’고 했는데 누구나 유리 대신 거울을 좀 더 바라봐야 하는 시기가 있다. 멀리 떠나고 싶지만 집에서 멀어질 수 없는, 간절히 외롭고 싶어질 때 이렇게 혼자 부산역에 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1층 카페에 앉아 누군가를 기다리고, 떠나가고, 돌아오는 사람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야지. 한 모금의 커피가 낯선 행인들 속에 있는 나를 더 쓸쓸하게 할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쓸쓸해지는 기분에 빠져 본다는 것은 꽤나 낭만적인 것이리라. 현지인으로선 다소 비싸게 느껴져 바가지 쓰는 기분에 젖게 만드는 고급어묵을 사서 역 광장으로 나와야지. 유리 궁전의 바깥, 내 세상을 향해 다시 여행을 떠나는 기분으로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올 테다. '아이들은 그가 그 가엾고 빈약한 우주에 완전히 절망하지는 않는다는 증거였다.'는 소설 등대로, 램지 씨의 말을 떠올리며 노란 봉투를 살랑살랑 흔들며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사라다빵 - 부산역에서는 샐러드빵을 사라다빵이라 부른다. 부산을 대표하는 빵집 중 하나인 B&C의 대표메뉴로 인기가 있어 늦게 가면 살 수가 없다.

*등대로 - 버지니아 울프의 장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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